요즘 아이들의 술과 담배
면담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꼭 물어봐야만 하는 질문들이 정해져 있다.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정보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질문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요령과 스킬을 십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물결을 따라 느긋하게 유영하며 진짜 궁금한 목적지에까지 도달하는 편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로 하여금 상대가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솔직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단단한 라포 형성만큼이나 질문을 던지는 요령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안 그래도 범죄를 저질러 경찰서에 입건된 마당에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학생이 몇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듯 자연스럽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오늘은 아이들의 술과 담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술과 담배에 대한 사회 규범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술, 담배 등 유해물질로 지정된 물품들은 청소년의 이용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이를 위반했다고 해서 해당 미성년자를 처벌을 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대신 그들에게 술, 담배 등을 판매하거나 공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는 판매자 및 공급자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경험적으로 획득한 정보에 의하면 이렇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손쉽게 술과 담배를 접한다. 위법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술과 담배를 제공하는 판매자, 공급자는 많다. (아래에 밝힌 정보들은 이미 경찰현장에서 다 알고 있는 정보로,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거나 처벌을 받게 마련이므로 시도하는 학생들이 없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가장 편안하게 접근 가능한 구매처는 컨테이너 박스형 매점이다. 보통 이런 판매처는 사방이 막혀있고 물건과 돈이 오가는 작은 구멍이 전부이므로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개개인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익명 처리된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이런 매점의 위치를 꿰고 있다. 문제는 경찰도 해당 매점들의 위치를 꿰고 있다는 점이다. 완벽범죄나 비밀은 없는 법, 우범소년으로 지정되는 지름길이다.
실패율이 높긴 하지만 아이들이 쉽게 시도하는 구매방법은 성인인 타인의 신분증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분증 검사를 형식적으로 하는 곳에서는 종종 통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거짓이 들통나고 만다. 이런 경우 점유이탈물횡령죄(길에서 습득한 신분증 사용), 공문서위조죄(직접 신분증을 제작), 주민등록법위반죄(타인이 만든 위조 신분증 사용) 등으로 입건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다.
아이들에게 들었던 정보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구매 대행 계정이었다. 기존 구매 금액보다 더 높은 금액을 제공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물품(술, 담배)을 구할 수 있으니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한다고 했다. 문제는 누구나 이러한 계정에 접속이 가능하고 또 쉽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들마저 이러한 루트를 이용한다는 사실 앞에 나 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놀랍게도 그들 사이에도 세대차이가 확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성공률은 낮다. 거짓 계정인 경우가 많아 사기를 당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양한 흡연과 음주 환경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고하게 자신의 지조를 지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흡연과 음주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흡연과 음주를 간구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대화의 방향은 결국 선택의 영역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모두 달랐다. 주변 친구들이 죄다 흡연자여서 곁에 있다가 결국 입에 담배를 물었지만 아찔한 첫 경험에 뜨악하여 다시는 시도하지 않는 아이, 분위기에 휩쓸여 우연히 담배를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주변 아이들이 더 이상 흡연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홀로 애연가의 길을 걷는 아이, 부모님의 허락 하에 맥주 한 두 모금을 마셔본 적은 있지만 도무지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 술이 맛있지는 않지만 다 같이 마실 때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주량보다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곤 하는 아이, 부모님이 술을 너무 많이 드시는데 취하고 하는 실수들이 너무 싫어 자기는 절대로 입에도 대지 않을 거라는 아이, 부모님은 애연가면서 자신한테는 담배를 금지하는 것이 마뜩잖은 아이, 흡연이든 음주든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아이까지... 무어라 집단을 나누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아이들이 존재했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만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묻는다. 너의 흡연과 음주(혹은 비흡연과 비음주) 이유는 무엇이냐고. 제각기 규범과 선택 사이에서 자신의 경로를 결정하게 된 연유와 계기를 듣는다. 미성년자의 흡연과 음주를 방관하거나 권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모든 행동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것이 변화의 출발임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의 술과 담배 앞에서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매 순간 고민한다. 비흡연자이자 애주가인 어른으로서 때로는 아이들의 (내가 모르는) 흡연 문화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아무리 술을 마시더라도 자신의 주량은 정확히 알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당부를 넌지시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꼭 마지막에는 진짜 전하고 싶은 말을 힘주어 뱉는다.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로서, 한 명의 학생으로서 자신의 신분에서 옳고 그름의 확실한 경계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니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가득 실어 전한다. 진정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은 강요나 강압에서 오지 않는다. 무조건 하지 마라, 하면 안 된다는 말보다 더 큰 힘을 지니는 다정한 공감과 관심의 힘을 믿는다.
더불어 많은 어른들에게 당부한다. 아이들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직시할 수 있기를. 더 나아가 무조건적인 강요와 금지 대신 그들 내면에 일렁이는 방황과 갈등을 먼저 읽어달라고. 진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