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친절한 불법 도박 사이트의 그림자
공교롭게도 오늘 만난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같은 범죄로 입건되었다. 그 이름하여 '도박'. 최근 들어 부쩍 도박으로 입건된 아이들의 수가 많다. 얼마나 오랜 기간 활동을 했느냐, 얼마나 많은 금액을 입금하였느냐 같은 정보는 전혀 중요치 않다. 단 한 번이라도 불법 도박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 및 이용한 적 있는 청소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줄줄이 잡혀오고 있는 실정. 사실 현장에서 도박이 문제가 된 건 최근 1, 2년 상간의 일은 아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에라도 일선에서 본격적으로 도박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은 적극 찬성할 만한 일이다.
현존하는 불법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경로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간편하다. 검색하는 순간 그와 관련된 정보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물론 검색 엔진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1차 방어막을 펼치고 있지만 그다지 효력이 없다. 하나, 성인 인증쯤은 우습다. 둘, 아이들은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보다 유튜브가 더 친숙하다. 사이트 경로는 물론 도박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굳이 검색할 필요도 없다. 지역 및 학교별로 다르지만 한 반에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는 아이들은 무조건 존재한다(생각보다 다수다). 그 친구들에게 경로를 받으면 문제는 훨씬 더 간단해진다.
가입 절차가 까다롭겠거니 기대를 걸고 싶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름, 전화번호(연락처), 본인 이름으로 개설된 계좌. 단 세 가지 정보만 입력하면 끝난다. 물론 본인 인증 같은 절차도 없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초등학교 1학년도 마음만 먹으면 가입 및 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로 친절하고 또 친밀한 도박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위험하다.
아이들의 도박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몇 년 전, 한 아이가 명의 도용으로 입건된 적이 있다. 입건 경위를 듣다보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미 도박을 한 지 오래 된 아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을 잃는 일이 잦아졌고 이용과 관련, 사이트 게시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끄럽게 한 전적이 있어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고 했다. 더 이상 자신의 정보로는 가입이 힘들어지자 이 아이는 꾀를 내어 다른 경로를 고안했다. 자주 가는 단골 식당 주인의 정보를 기입하고 가입한 것이었다. 잘 생각해보라. 마음만 먹으면 당신은 주변 식당 주인의 이름, 연락처, 계좌번호(보통 현금 이체 때문에 공개한다)를 습득할 수 있지 않은가.
가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아이가 그렇게 가입한 사이트에서 한몫 크게 챙긴 것. 아이는 욕심이 났다. 이익을 본 캐시를 현금으로 전환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아이는 단골 식당 주인의 정보로, 그러니까 그 주인의 계좌로 가입을 했다. 그러니까 전환한 현금은 식당 주인의 계좌로 들어올 것이었다. 아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당하게 식당 주인을 찾아가 자신의 돈을 찾아달라 요구했다. 식당 주인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또 황당했을까.
입건된 아이들이 도박을 하게 된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재미있어 보여서 즉, 호기심이었다. 일단 한 명만 시작하면 주변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로가 서로의 숙주가 되어 다음 아이, 또 다음 아이로 장을 펼쳐나갔다. 다른 이유는 돈이었다. 돈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한 번에 돈을 벌 수 있는 게 도박이라서, 친구가 했는데 재미 좀 봤다고 해서(돈을 땄다고 해서) 같은 이유 말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해 볼 수도 있고, 부모님 앞에서 기를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해서라도 비합리적인 용돈 체계를 개편할 수도 있을 일이다. 그런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아이들도 안다. 다만 좀 더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큰돈을 손에 넣고 싶을 뿐. 도박 사이트는 아이들의 이러한 취약점을 곧잘 이용했다.
그냥 재미로 한 번만 해 보고 빠져나오는 아이는 드물다. (간혹 있긴 하지만 이런 아이들도 모두 입건되고 있다.) 게다가 초반에는 서비스로 무료 캐시를 소정 충전해주기도 한다. 한 두 번 큰 돈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나면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 한 때 코인 시장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벌건 눈으로 빨간색과 파란색 그래프에 목숨 걸었던 일부 성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아이들도 머리로는 잘 안다고 했다. 도박의 중독성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지. 도박이라는 것이 결국은 득을 보는 사람보다는 실을 보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머리를 따라가지 않는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네모난 화면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발을 뺄 수 없었다. 참 지독한 덫에 걸린 셈이었다.
아이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도박 사이트에 입금했다. 만원, 오만 원, 십만 원... 그렇게 쏟아부은 총액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도박으로 출발한 문제는 아이들 사이에서의 금전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뒤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