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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Oct 22. 2024

덫에 빠진 아이들 2

아이들의 금전 거래에 관하여



도박문제만큼이나 심각한 덫이 있었으니(그 어떤 범죄, 비행 환경이 안 그렇겠냐만은) 그건 바로 아이들의 금전 거래 문제다. 돈의 가치나 의미는 몹시 주관적이고 또 가정별로 그 문화가 차별적인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어떤 한계(경계)나 규칙들은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들의 금전 거래를 보면서는 그 생각이 더 강건해졌다. 내 아이에게 돈과 관련한 교육을 이른 나이부터(유대인처럼 태어나서부터는 못 했지만)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앞서 이야기했던 도박부터 마저 이어보자. 이미 도박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 너머에는 또 다른 큰 산이 버티고 있다. 도박 사이트에 입금하는 돈을 제 수중에 있는 액수로만 충당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도박에 흠뻑 젖어든 아이들은 금단증상을 겪기도 하고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를 반복하게 된다. 문제는 통장이며 지갑이며 털 수 있는 자금줄은 모두 투자한 상황. 그때 한 아이가 접근한다. 

 

"야, 아무 때나 돈 빌려줄 수 있는 형을 내가 아는데..."

혹은

"나 전에 급할 때 돈 빌려줬던 형이 있는데, 내가 말해봐 줄까?"

 

귀가 솔깃한다. 돈을 빌려 한 번만 더 하면 재기에 성공할 것 같다. 한몫 당겨서 돈도 갚고 본전도 되찾으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될 것 같다. 앞뒤 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귀인을 영접할 차례다.

 

 

 

 

이미 예상하시다시피 빌린 돈으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한 아이는 없다.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빚더미에 올라앉는 꼴이다. 왜 그런가. 아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은밀하고도 어두운 금전 거래의 실체를 알면 단 번에 이해된다.

 

일주일 뒤에 갚기로 약속하고 내가 당신에게 만 원을 빌렸다고 치자. 일주일 뒤 당신은 내게 만 원을 돌려달라고 할 것이고 나는 얼른 약속대로 만원을 갚을 것이다. 여유가 된다는 갚을 돈과는 별개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커피 한 잔을 살 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개인 간에 돈을 잠시 빌린다는 것은 이런 모습에 가깝다. 내가 목격한 아이들의 금전 거래는 달랐다.  

 

일주일 뒤에 갚기로 약속하고 빌린 돈 만원은 그 사이 몸집을 불린다. 일주일 만에 당신은 상대에게 2만 원을 갚아야 한다. 제3 금융권 대출의 이자는 여기서 명함도 못 내민다. 일주일 만에 두 배라니. 이 무슨 해괴한 법칙이 다 있단 말인가. 당황한 아이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만 원을 못 들은 척 거부한다. 이번에는 주먹이 날아온다. 돈을 기한 내에, 그들이 원하는 액수로 갚지 못하면 폭력과 공갈, 협박 지옥이 펼쳐진다. 

 

때로는 솔깃한 제안(내가 아는 형이 있어)을 했던 친구가 금전 거래 중간 알선책인 경우까지 봤다. 돈이 풍부한 물주와 돈이 시급한 사정의 아이를 연결시키는 다리가 되어주는 대신 건 당 소정의 금액을 받거나 혹은 이미 자신이 빌렸던 빚을 차감하는 이득을 누리는 경우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돈거래다. 애초에 금전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약 위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고를 하거나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 꼭 도박 같은 금전 문제에 휘말려 돈을 빌린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원금은 물론 갚아야겠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근거 없는 이자까지 갚을 필요는 없다. 무엇이 더 나쁜가, 무엇이 더 먼저인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돈을 빌리는 쪽도 문제, 황당한 수준의 이윤을 갖다 붙이며 악질적으로 돈놀이를 하는 쪽도 문제, 그걸 알선하고 제 이윤만 챙기는 쪽도 문제... 모두 문제다. 내 아이를 지키려면 조금 냉정하고 차가워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돈거래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돈거래는 그냥 무조건 안 돼! 가 더 옳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꼭 '금전'이 거래되는 경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갈이나 학교폭력으로 입건되는 경우 중에 종종 보이는 사례는 '거래' 문제가 숨어 있다. 

 

친구들 사이에 물건 거래가 놀이처럼 퍼진 때가 있다. 유튜버들이 보여준 것처럼 말랑이 거래하기, 스퀴시 거래하기, 포카 거래하기 같은 귀여운 놀이문화를 떠올리면 된다. 금전 거래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덫이 아이들 주위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 

 

시작은 단순하다. 아이들 사이의 작은 당근 거래가 이루어진다. 가벼운 교환으로부터 시작한다. 예쁜 공책이 여러 개여서 그중에 하나를 보여주며 혹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구미가 당긴 다른 아이가 거래에 응한다. 보통은 비슷한 수준의 예쁜 학용품(펜이나 키링)으로 교환이 이루어진다. 서로가 기대하고 원하는 바가 정확히 딱 합치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슬아슬하긴 해도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나눔과 교환의 장이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이 거래의 물을 흐린다. 자신의 물건과 교환할 대상으로 돈을 지정한다. "저 공책이 2천 원이고, 어차피 사고 싶었으니까 문구점까지 가지 않고 필요 없다는 친구에게서 사지 뭐."라고 생각했는가? 문제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음을 위한 빌드업일 뿐이다. 

 

어느 날 카톡이 하나 날아온다. "나 이거 필요 없는데, 너 전에 이거 예쁘다고 했지? 교환하자!" 지나가듯 귀엽다, 예쁘다 말했던 곰돌이 키링 사진과 함께 거래 제안 톡이 떴다. 팔 천 원이면 된다는 말도 이어진다. 당신은 고민한다. 귀엽긴 하지만 필요하지도 않고 지금 당장 팔 천원도 없는데? 친구에게 거절 의사를 밝힌다. 이때 아무렇지 않게 거래가 끝나면 더 이상 문제 될 것 없을 텐데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 네가 갖고 싶다며! 너 때문에 내가 이거 갖고 나왔다고!" 다짜고짜 물건을 당신에게 던져주고는 사라진다. 돌려주려 하지만 받지 않는다. 대신 돈 독촉이 시작된다. 너 왜 돈 안 갚아? 

 

물건 거래에서 출발한 금전 거래, 돈 독촉은 왕따 가해의 위협과 협박으로, 친구들 사이의 이간질로 점차 몸집을 부풀린다. 귀여운 키링과 팔 천 원이라는 금액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학년이 올라가면? 물건과 금액도 더 커진다. 

 

 

 

 

아이들이 걸려 넘어지기 쉬운 덫이 너무 많다. 보란 듯이 판을 깔아 두고 친절하게 미소 짓는 가면을 쓴 도박에서부터 친구라는 이름을 악용한 사채놀이, 부지불식간에 금전 거래와 협박 놀이가 되어버린 물건 거래까지.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이 많다. 아이들에게 해 주어야 할 경계교육이 성교육에만 존재하는 개념은 아닐 듯싶다. 법적 사회적 강력한 제재를 통해 무수한 덫을 미연에 제거하고 솎아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개인의 차원에서 아이들이 덫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돌아갈 수 있는 요령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슬프지만 아이들은 너무도 많은 것들로부터, 심지어는 친밀했던 친구로부터도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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