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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Oct 16.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


경찰서 번호로 전화가 울리면 느긋하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입건된 아이와의 면담 스케줄을 잡기 위한 형식적 전화임을 알지만 연락을 받는 그 순간부터 노력 가방을 꾸릴 준비를 하는 셈이다. 보통은 일정 조율이 전부인 통화가 그 날은 조금 달랐다. 

 

"그 .. 선생님, 단축형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면담만 해야 할지 제가 잘 몰라서 여쭤보려고요."

"네, 아이 연령이 낮나요?"

 

면담을 할 때 PAI 검사지를 실시하게 되어 있다. 때때로 초등학생이 입건되거나 문해력이 상당 수준 떨어지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청소년용 PAI를 실시할 수 없는 경우에 문항 수가 적은 단축형을 사용하게 된다. 담당 경찰관은 이번에 입건된 아이가 지적 장애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로는 중학생이지만 지적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실제 읽고 쓰는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검사를 실시할 때 곁에서 누군가 꼭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지 등 보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단축형을 사용하자고 결정했다. 노력 가방이 조금 더 부피를 불린다.

 

 

 

 

입건된 아이들 중에는 때때로 장애를 진단받은 아이들도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여성의 신체 일부에 덥석 손을 대는 바람에 입건된 아이는 지적 장애아였다. 비장애인 아이들과의 면담만을 해오던 나는 처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났을 때 평소보다 더 많이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행위 당시에 대해서도 어떠한 성적인 의도보다는 '예쁘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를 거듭 내세웠다. 지나가다가 들판에 핀 꽃이 예뻐서 꺾었다 정도에 훨씬 더 가까운 설명이었다. 문제는 비슷한 문제로 한 번 입건된 경험이 있다는 것. '얘는 뭘 잘 모른다' 라든가 '어린아이처럼 생각해야 한다' 같은 말로 납작하게 문제를 매듭지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별개로 아이가 사회를 살아가는 동안 꼭 알아야만 하는 약속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원래 들판의 꽃도 예쁜 모습을 감상해야지 마음대로 꺾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아이의 시선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설명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겠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아이가 저지른 문제 행동은 조금도 교정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문제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입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암수범죄가 끝없이 펼쳐졌다. 면담이 원활히 지속되지 않아 보호자와의 추가 면담을 요청해야만 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어머님 한 분이 면담실로 들어오셨다. 상황을 들어보니 그 분은 장애아동 돌보미였다. 직장 문제로 오랜 시간 부재하는 엄마 대신 이 분이 보호자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생활 전반에 대한 정보를 듣고도 해소되지 않는 지점들이 많아 경찰서를 통해 아이의 엄마와도 따로 통화를 해야 했다. (늘 이런 것은 아닌데, 필요할 때는 보호자 면담도 다양한 루트로 이루어진다.) 아이가 장애를 암시하는 증상을 보인 지는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엄마는 그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고, 인지하고 난 뒤에도 '장애아'라는 딱지가 붙는 것이 두려워 장애 진단을 차일피일 미루었다고 했다. 하루만, 일주일만 하던 것이 한 달, 두 달이 되었고 어느덧 일 년, 이년이 흘렀다. 최근에야 정식으로 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병원에서 돌아오는 답은 매몰찼다. 너무 늦은 시기에 찾아왔고 치료가 효과를 발휘할 만한 결정적 시기들을 너무 많이 놓쳤다는, 그저 현상 유지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엄마는 오랜 시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ADHD나 트라우마, 우울, 불안, 강박 ... 무수한 장애를 앓는 아이들도 종종 입건된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입건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장애 청소년들이다.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되지 않기를) 그럴 때는 이중고에 빠진다. 범죄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면담이 그 아이가 가진 내적인 문제와 오랜 생애 이력, 그와 관련된 가족 내 역동까지 더 폭넓게 아울러야 하므로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가정의 형태나 기능이 정상인가, 건강한가 와 관계없이 아이가 남들과는 다른 생을 걸어간다는 사실은 힘든 일임에 분명하다. 다만 몇몇 아이들을 만나면서 꼭 당부하고 싶은 지점들이 있다. 하나, 늦은 진단이 가져오는 폐해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므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긍, 부정) 특성들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인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무언가 다름을 인지했다면 지체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를 바란다. 필요하다면 상담 및 진료를 받고, 또 더 필요하다면 장애 진단을 받아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 (일찍 발견하면 할수록 좋다. 정상 범주 내라는 소견을 듣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필요한 다른 대안들을 찾고 필요한 지원을 해 주면 된다.) 아이의 생은 길고 내면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나의 망설임으로 결정적 시기들을 놓치지 말기를. 둘, 그 어떤 장애를 이유로 내밀어도 범죄는 범죄다. '잘 몰라서' 같은 변명이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거듭 반복해서 교육하고 지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태도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셋,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내 아이가 가진, 어쩌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지점들에만 얽매여 깊은 늪으로 빠지기보다는 그 속에서 아이만의 빛을 찾고 순간순간 필요한 것들을 찾아주는 힘은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랑 표현일지도 모른다. 

 

정신장애와 범죄를 이야기할 때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늘 함께 따라온다. '내 아이는 장애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먼저 포기하지 않기를 빈다. '내 아이는 장애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를 바란다. 항상 작별인사로 건네는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의 의미를 아이들을 모두 이해했다. 돌아서면 잊을 수도 있고, 다짐과는 달리 행동이 앞설 수도 있겠지만 나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은 모두 진심임을 안다. 부디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기를. 아이들보다 먼저 포기를 떠올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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