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관한 오해와 진실
지난 8년 간 초등학생 자살률이 5배나 증가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이런 유형의 기사들에 처음에는 매번, 매 순간 강렬하게 저릿하던 마음이 이제는 더 이상 반응할 여력도 없다. 벌써 오랜 기간 전 세계 자살 1위의 왕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10대의 자살률은 거듭 고공행진 중이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고도, 질병도, 외부의 힘도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아직까지도, 여전히, 자살에 대해 잘못된 인식 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은 자살에 관해 얼마나 면밀히 알고 있나. 다음의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살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먼저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1. 정말 자살할 사람은 남에게 의도를 밝히지 않는다.
: 그렇지 않다. 자살자들의 심리부검을 해 보면 93.5%에서 사망 전 자살 경호를 보인 것으로 확인된다. 자기 비하 혹은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언급과 같은 언어적 신호일 수도, 수면상태 변화나 신체 불편감 호소 같은 행동적 신호일 수도, 감정상태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정서적 신호일 수도 있다. 밀접한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흘렀을 단서 조각을 놓쳤을 뿐이다.
2. 자살하는 사람은 꼭 죽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
: 한 번이라도 자살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철저히 계획을 수립하고 방안을 마련해서 자살을 실행하는 그 순간에도 골백번은 더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갈등의 소용돌이 끝에 순간적으로, 그리고 즉흥적으로 기운 마음이 성공하면 죽음, 실해하면 생으로 이어져 자살시도자로 생존할 뿐. 그러니까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 그들의 마음은 끝없는 갈등을 겪는다. 달리 말하면 주변에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는 끝의 끝까지 펼쳐져 있다.
3. 한 번 자살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자살하고 말 것이다. or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그것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 둘 다 틀렸다. 한 번 자살을 경험한 이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번 자살을 경험했어도 결국은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횟수로 그들의 결정에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은 늘 팽팽한 갈등의 양쪽 끝을 널뛰는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자살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고 해서 더 이상 자살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옳지 않다. 자살시도에 실패했다면 (삶에 대한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은 이상) 아마 다음번에는 더 확실하고 분명한 자살 방법을 찾을 것이다. 뛰어내리더라도 더 확실히, 약을 먹더라도 치사량을 훌쩍 넘겨서, 동맥을 끊더라도 정확한 위치와 깊이로, 목을 매달더라도 더 튼튼한 수단으로, 그리고 모든 경우에 나를 방해할 만한 이가 없는 환경을 찾아서...
4. 자살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누군가를 자살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
: 지금 글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벌써 몇 번의 자살을 언급했는지 모르겠다. 한 때 언론에서는 자살이라는 용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부적합한 용어를 사용했던 적도 있다.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의 자살. 자살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어떤 버튼이 켜진 것처럼 자살하게 되지 않는다. 물론 자살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 혹은 가족 중 누군가를 자살로 잃어본 이들은 그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 살아있는, 아직은 죽음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자살을 숨기거나 쉬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우리나라 성교육 환경에서 성관계에 대해 감추고 부끄러워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것에 대해 스스로도 교육받는 바가 없고 잘 모르기 때문인 것처럼 자살도 스스로 잘 아는 것이 없으니 일단은 덮어두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편하게 터 놓고 자살을 대화할 수 있기를. 그 속에서 흔들리는 상대의 감정을 낚아챘다면, 필요한 도움을 곧장 건넬 수 있기를.
5. 괴로워하던 사람이 갑자기 평화로워지면 자살 위험은 끝난 것이다.
: 제일 위험한 때이다. 상담 장면에서도 일시적으로 갑자기 회복한 (것처럼 보이는) 환자들을 특히 더 예의주시한다. 속된 말로 심각한 우울 증상의 중심에 있을 때는 낮은 에너지 수준과 무기력함에 붙잡혀 죽을 에너지조차 끌어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표현까지 들어봤다. 오히려 극심한 우울에서 조금 벗어나 에너지가 상승하는 그 때, 그 때 잠잠히 수면 밑에 숨어있던 자살 사고가 튀어나와 실행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평화로워 보이는 것은, 진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무턱대고 안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편이 좋겠다. 혼자 두지 말고 자살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폐기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6.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실패자들이다. or 자살은 정신병이다.
: 전형적인 2차 가해다. 비슷한 표현으로 "자살할 용기로 살지."가 있다. 그들에게는 유일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일하지만 끝까지 확신은 할 수 없는 불투명한 안개였을지 모른다. 또 다른 측면으로 자살 고위험군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우울증이나 기타 심리적 위기로 인해 의욕 저하, 집중력 감소, 생산성 저하, 잦은 실수 등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데 이들 곁에 있는 사람들은 책임감이나 의지가 부족한 문제아(나쁜 사람)로 오해하고 질책하기도 한다. 항상 누군가가 보여주는 것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정신 장애 편람에 자살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울이나 양극성 장애 등 정신 장애의 증상 중 하나로 자살 사고가 포함되어 있을 뿐, 자살은 정신 질환이 아니다.
7. 자살은 예방과 치료가 불가능하다.
: 아니다. 가능하다. 자진해서 입원도 가능하고 상태가 심각한 경우 강제 입원도 가능하다. 예방도 치료도 모두 가능하다.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살아만 있어 준다면.
* 정신건강위기상담 전화: 1577-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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