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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잘 치거든요

인정받고 싶은 아이들

by 밤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유 불문, 장소 불문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유쾌한 일이다. 비록 경찰서라는 다소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그것도 단 한 번으로 끝나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들은 나와 초면이고 내게 특별히 위해를 가한 적 없으며 우리가 만나는 장소라던가 범죄나 비행, 문제아 같은 이름표를 떼어내면 그저 각기 고유한 '한 명의 청소년'일 뿐이지 않나.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범죄심리사로서의 경력이 쌓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를 제법 먹은 데다 그러는 동안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지금의 시선을 시나브로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언젠가의 나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경찰서에 입건된 아이들에 대해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느 정도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고,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에 쉽게 매몰되어 그 너머의 것들을 바라볼 시야나 여유도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드러나진 않았어도 사소한 실수와 뒤늦은 후회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이들의 대화는 어디로 튈 지 모른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맥락을 놓치지 일쑤다. 그걸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한껏 집중하고 있었다. 그 날도 그랬다. 특수절도로 잡혀온 아이와 해당 범행에 대해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솔직히 제가 딸딸이는 좀 치거든요."


중학생 아이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뱉은 저 한 마디에 일순간 분위기가 굳었다. 갑자기 딸딸이? 경상도에서 사용하는, 슬리퍼를 의미하는 사투리 딸딸이? 아니다. 자위행위를 표현하는 저급한 용어를 들먹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리 없이 숨을 고르며 아이의 장난스러운 눈망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이가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


"아, 쌤~ 그런 거 아닌데요!"

"응? 나 방금 아무 말 안 했는데?"

"아 그게 아니라요..."

"그래, 잘 됐네. 그 딸딸이가 뭔지 들어보자. 내가 잘 몰라서 말이야. 설명 좀 해 주라."


분명 짧은 시간 내 머릿속을 지나간 혼란스러움을 읽었음에 틀림없었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굴었다. 붉어졌을 얼굴을 무시하고 눈을 반짝이며 아이를 추켜세우자 뒷머리를 멋쩍게 긁으며 말을 잇는다. 그들 사이에 융통되는 일종의 은어였다. 오토바이 열쇠가 없는 상태에서 아무 열쇠나 적당한 크기와 굵기의 쇠꼬챙이를 사용해 시동을 거는 행위를 의미하는 용어였는데, 그렇게 시동을 걸 때 손을 위아래 혹은 좌우로 격렬히 흔드는 모양새에 착안한 표현이었다. 이내 아이의 어깨가 한껏 올라간다. 경찰관이 아까 주차장에서 아무 오토바이나 내밀면서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는데 자기가 시도하는 족족 다 성공했다며 자랑이 이어진다. 마음속으로 헛웃음이 난다. '휴... 그래, 넌 지금 그게 자랑이란 말이지.' 낯선 단어에 당황했던 나는 사라지고 아이의 단순함 앞에 냉랭하게 식은 내가 남았다.


그와 비슷한 다른 사례들도 있다. 특히 폭력 관련 사건으로 입건된 아이들에게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인데, 자신의 싸움 실력에 관한 자부심이 하늘 높을 줄 바다 넓은 줄 모르고 장황하게 펼치는 아이들 말이다. 대략 옮기면 이런 식이다. 일단 체격이 크니까 아무나 쉽게 기어오르지 않는다, 복싱을 오래 해서 그런지 웬만한 애들 주먹은 우습다, 내가 한 번 휘두르면 게임 끝이다, 전에는 너무 빡쳐서 책상을 던졌더니 그 뒤로는 아무도 안 건드린다, 학교에서 싸움으로는 내가 1등이다 등등. 이러한 유형의 말들을 내뱉을 때 아이들의 말투와 표정, 눈빛 모든 것이 다 반짝인다. 거들먹거리는 특유의 포즈와 자세로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을 뽐낸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은 찾기 힘들고, 옳고 그름에 대한 최소한의 경계조차 없어 보이는 이 아이들을 어찌하면 좋나 안타까운 마음이 거센 파도가 되어 일렁인다.





그런데 이 아이들,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이런저런 평가나 판단의 시선을 지워내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음이 저 끝에서부터 찌르르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면담 중인지는 까무룩 잊고 마냥 신이 나서 자신의 범행을 늘어놓는 아이들, 그 너머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다. 지금껏 아무도 그래주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낯선 어른 앞에서 처음 말문이 트인 아이들처럼 재잘재잘 이야기가 봇물 터진다. 그러한 유형의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학교생활 적응에 실패했다. 혹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는 환경 조건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공백이 뻥 뚫려 있다. 누구 하나 그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믿어주거나 지지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 자체로 사랑받지 못했고, 나름대로 시도한 모든 노력은 꾸중이나 무관심으로만 돌아왔고, 학업에 실패했고, 교우관계에서도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어 궁지에 몰린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비행이었다. 적어도 비행환경 속에서만큼은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던 아이들. 그 하위문화 속에서 인정받을 만한 자신의 능력을 탐색하고 단련한 끝에 결국 그 능력이 유일한 빛이 되어 더 깊은 비행의 골짜기로 파고드는 악순환의 고리.


마냥 철없어 보이던 아이들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주 입안이 썼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인정받으며 생을 이어가는 아이들 내면에 숨겨진 작고 여린 자아를 마주할 때면, 아이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의 현재를 만들었을 무수한 폭풍우를 먼저 헤아리게 됐다. 오늘 하루, 단 몇 시간일 뿐이지만 너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정성스레 귀를 기울였다. 사소한 것이라도 하나씩 더 묻고, 무엇이든 한 마디라도 더 들어주기 위해 애썼다. 열 가지 나쁜 결점 투성이인 아이여도(아마 늘 그런 것들로 지적을 당해왔을 것이므로) 생각해 보지 않은 한 가지 좋은 보석을 캐내어 조심스레 아이들 눈 앞에 펼쳐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들은 아이들은 조금 전까지 신나서 떠들 때와 상반되게 일순간 입을 합! 다물어 버리지만 손사래 치며 붉어진 얼굴에서 수줍은 기쁨이 번진다. 영락없는 그 나이 때의 아이 얼굴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저지른 각기 다른 범죄는 부정할 수 없다. 범죄는 범죄다. 그에 맞는 죗값을 직접 치러내야만 한다. 그러나 처벌을 내리는 것이 끝은 아니므로, 항상 다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해 다시 가치관을 정립하고,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진짜 빛을 찾고,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를 발판 삼아 더 밝은 곳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나의 작은 말 한마디, 눈길 하나, 손짓 하나에 그 모든 마음을 실어 보낸다. 유일무이한 아이들, 그들조차 잊고 있는 자신의 존재감에 촛불 하나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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