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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Sep 19. 2024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아들과 우리


남편이 말했다.


"어휴, 아들 기분 맞춰주기 참 힘드네."


기분 나쁨과 기분 좋음의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모서리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유도 없이 감정의 끝을 향해 내리막길로 질주.

우리 부부는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발끝으로 딛고 서서 걷는 중이다.


아들은 기분 나쁨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왜 그러는지 본인도 알지 못한다 하니 우리 부부는 종잡을 수가 없다.

무게중심을 잘 잡고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모서리는 얇디얇아 너무 자주 그곳으로 떨어진다.


"먹고 싶은 음식이 뭐야?"

"뭐 하고 싶니?"

산책을 가자고 해도, 보드게임을 하자고 해도 반응이 없다.

종국에는

"뭐가 갖고 싶어?"라고 말한다.


돈으로 행복을 산다는 것은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마시는 것이거나,

언발에 오줌을 누는 행위와도 같은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그 잠깐 아들의 미소를 보고 싶어서 지갑을 열고 마는 것이다.


3개월 할부로 얻어낸 로드 자전거는 연속 이틀 아들을 행복하게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오더니


"엄마. 자전거 진짜 잘 나가. 고마워." 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 아빠의 비상금쯤이야.

콧노래를 부르며 헬멧도 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들의 뒷모습에 부부도 잠시 안도한다.



딸과 우리


남편이 혼잣말로 말했다.


"아니, 고마운 줄을 몰라."


남편은 딸의 운전기사 노릇에 열심이다. 평일에는 시간을 내지 못하지만 주말에는 열심히 여기저기로 딸을 픽업하러 다닌다. 그 밤도 서울에서 공연을 보고 늦게 귀가하는 딸아이를 데리러 갔다.

늦게 들어오는 딸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야 누구나 같을 테지만

늦게 들어오는 딸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딸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열두 시가 넘어서 도착한 남편의 얼굴은 가기를 잘했다는 안도의 얼굴이 아니라

퉁퉁하게 심술 난 얼굴이었다.


"아니, 내가 데리러 와달라고 한 적 없잖아요?"


가끔 이렇게 정 없이 무뚝뚝한 딸아이의 말투를 들을라치면 사실 속으로 뜨끔한다.

아마, 내 어린 날을 보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건 그때고 지금의 나는 고마운 것은 아는 어른이거든?

마음 같아서는 등짝을 철석 때리며 그게 지금 부모한테 할 소리냐고 하고 싶다만 꾹 참고 말한다.


"부모니까. 그렇지.

내 새끼 조금이라도 편하라고.

힘들고 지치면 속상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거지."  


꼭 이럴 때면 응팔의 보라의 대사가 생각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냥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꼭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야."


그 말이 맞다. 넉넉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절실함이다.

이쯤 되니 자녀를 엄청 사랑하는 매우 괜찮은 부모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나는 아직 멀었음을 느꼈다.


어머니와 우리


"저녁 먹고 가"


이미 시댁에 와서 네 끼를 함께 먹었었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중이었다.

친정에서는 겨우 한 끼를 먹고 엉덩이 붙이고 앉았다가 두세 시간이면 집을 나서는데

시댁을 가면 1박은 기본이고 평균 네 끼니를 함께 먹는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어서 가라고 말하고, 시어머니는 더 먹고 가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하시다 생각도 들었다.

 얼른 집으로 가서 내 집에서 편안히 있고 싶었다.

게다가 또 하루 지나면 출근해야 하는 K직장인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결혼한 지 18년이 되어보니, 그 말에 담긴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더 먹이고 싶구나.'


어머니에게 밥은 곧 사랑이니까

조금 더 주고 싶은 마음임을 알겠다.

아무것도 안 싸주셔도 되는데, 멸치볶음과 고기전이 사랑임을 알겠다.


(물론, 그래도 집에는 어서 가고 싶습니다만... )




내가 자녀였을 때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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