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 다시 만나요!

by YOSPAPA

"어떡해. 산타 할아버지가 루돌프 줄 알고 썰매 끌어달라고 하시겠네."


떼를 쓰며 울다가 코끝이 빨개진 딸아이.

아내가 짓궂게 말을 걸었다.


"루돌프 아니에요!"

"루돌프가 아닌데 코가 왜 빨간지 물어보시면 어떡하지? 코가 빨간 것이 루돌프로구나 하실 텐데?"


아내의 공세에 딸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에 잠겼다.

어찌 답하든 불리한 딜레마에 빠지고 만 것이다.


울어서 코가 빨개진 사실을 인정하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다음번 선물을 못 받을 테고,

울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루돌프가 되어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끌러 끌려가게 된 상황.


불리하니 침묵을 유지하며 코끝만 만지작한다.

시간 끌기 작전 덕분에 코 색깔은 살짝 원대로 돌아왔다.


"코가 안 빨갛구나. 루돌프가 아니라 예쁜 우리 딸이었네."


엄마의 말을 듣고 안도가 되었는지, 머쓱하게 웃는다.

진즉에 울지 않고 이렇게 웃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작년에 육아 관련 앱(application)에서 본 인상적인 글이 있다.

외부의 존재를 통해 아이에게 겁을 주는 방식은 좋지 않은 훈육이라 내용이었다.


아이가 순간의 두려움을 모면하고자 대응할 뿐이지 문제행동의 본질은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가상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만 갖게 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 뒤로 딸아이와 자주 보던 동화책에 등장하던 '망태 할아버지' 부분이 유독 신경 쓰이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책을 조금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의 떼쓰기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그런데 아내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산타 할아버지도 강제로 썰매 끌기를 시키신다는 점에서,

사실상 망태 할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이렇게도 다른 느낌 주는 걸까.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때문일까, 후덕한 인상 때문일까.

물질만능주의냐 외모지상주의냐 그것이 또 문제로다.

어쨌든 산타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나 부모들에게나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던 건 여섯 살의 성탄절 행사였다.

유년의 성탄절 행사 중 유일하게 그 해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산타 할아버지와의 만남에 대한 기다림이 사라져 버린 강렬한 분기점이었나 보다.


그 당시에는 일반적이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무렵 유치원이 아닌 집 근처 한 친구 집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방문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굳이 다른 집에 가서 선물을 받았는지도 의문이 들지만,

모든 집을 일일이 돌기는 힘들었을 테니 가까이 사는 원아들끼리 모일 몇 가정을 사전에 협조받아놨으리라.


문제는 산타 할아버지의 등장에 극도로 흥분한 나를 포함한 아이들이 누군가의 폭주를 시작으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보따리에 굶주린 개떼처럼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산타 할아버지는 제지하시느라 음성변조를 신경 쓰지 못하셨고,

심지어 누군가 장갑까지 벗겨 버렸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이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산타 형의 손을 보았다.

분명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했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온 행사가 된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바쁘셔서 다른 사람이 대신 온 거라고, 어머니가 뭔가 수습의 말을 해주셨었던 것 같다.




작년 성탄절. 딸아이의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재작년에 이어 산타할아버지 분장을 하셨다.

예전에는 외부 인력으로 행사를 진행하셨었다는데, 코로나 이후 외부인을 들이기도 찝찝하기도 해서 원장님께서 직접 동심 수호의 중책을 맡으셨고 한다.


[산타 원장님과 함께한 시간, 2022년]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행사 사진을 보고 아내가 내게 얘기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글라스를 쓰시니 조금 이상한데?"

"뭐 어때. 아이들이 눈치 못 챘으면 됐지. 멋쟁이 산타할아버지시네."


경험상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는 최대한 비밀로 남기는 게 맞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24 절기의 두 번째 절기, 우수(雨水) 돌아왔다.

눈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고, 봄기운이 돌아 초목이 싹트기 시작한다는 시기.

눈이 다 녹아버리면 산타 할아버지의 눈썰매는 다음 겨울이 돌아와야 루돌프와 친구들이 끌어줄 수 있겠다.


아빠는 비록 여섯 살 이후로 산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잊고 말았지만,

우리 딸은 조금 더 오래오래 산타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기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산타 할아버지. 다음 겨울에도 우리 꼭 다시 만나요!


[아빠에게도 찾아와 주셨던 산타할아버지, 1991년]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Clker-Free-Vector-Images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