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집살이

by YOSPAPA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계속 변하고 있다.

'시집살이'는 대명사로 표현되던, 여성들이 겪는 시가 식구들과의 갈등이나 고충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중새요/
동서 하나 할림새요/ 시누이 하나 뾰족새요/
시아지비 뾰중새요/ 남편 하나 미련새요/
자식 하난 우는 새요/ 나 하나만 썩는 샐세

- 작자 미상 민요, '시집살이 노래' 중


물론 제일 가까우면서도 타인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갈등이나 고충 없이 사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대개는 시집온 어린 여성이었을 가정 내 약자들에게 맹목적인 순종과 희생을 강요하던 문화는 이전에 비해 많이 사라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회 어딘가에서는 남아있을 시집살이.

상상만 해도 숨 막히는 상황 속에 누군가들은 또 감히 표현하거나 위로할 수 없는 고을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에 하나 애지중지 키운 내 딸이 고된 시집살이를 겪게 된다면,

나는 빠로서 절대 그 사태를 용납지 않을 것이다.

물론 딸아이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람 일이란 정말 알 수 없지 않은가.

[영화 'Taken(2008)'의 명장면]

아빠로서 미리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언제든 불합리함에는 당당히 대항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아빠는 네 편일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


나 또한 결혼과 육아 전 내가 아빠로서 떤 상황을 겪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현실을 마주하니 자식 앞에서 부모라는 존재는 얼마나 쉽게 죄스러운 약자가 되는지를 절감한다.

딸아이를 키우며 아빠인 나도 시집살이의 아주 순한 맛을 체험해보고 있다.



"아빠!!! 고기가 왜 이렇게 질겨요?"

소고기를 구워 그중에서도 가장 잘 익은 부드러운 부위를 담아었다.

뜨거울까 봐 조금 식서 그랬는지 질겨졌나 보다.

아이의 악의 없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겁다.


'비싸도 더 좋은 고기를 어야 했나?'

'괜히 너무 오래 구워서 그런 건 아니겠지?'


제일 맛있고 좋은 것 딸에게 주고 싶은 마음.

정작 내 그릇에는 어느 순간부터 굽든 끓이든 고기는 주로 힘줄이나 비계부위 위주로 긴다.


어렸을 적 가족끼리 치킨을 먹으면 부모님은 늘 목이나 날개 같은 뼈가 더 많은 부위를 먼저 드다.

자식들 살코기 한 점이라도 더 먹으라고 부모님께서 내어주는 것임은 어렸을 때도 사실 알고는 있었다.

그 마음의 진정한 깊이를 몰랐을 뿐.


[GOD, '어머님께' 뮤직비디오 중]


옛 시절 더욱 고되었을 시집살이.

이를 버텨낸 수많은 엄마들의 버팀목과 활력도

결국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셨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딸기의 계절이 지나고 아오는 블루베리 계절.

이제 '국산'이라는 표시가 붙은 블루베리들이 마트 곳곳에 보이기 시작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맛은 무척 달달하지만,

가격은 전혀 달달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저 먼 아메리카대륙에서 넘어온 것을 사기에는 확실히 국산이 때깔부터 다르다.


딸기는 그래도 한 판을 사면 가족들끼리 나눠서 맛볼 양이지만 블루베리는 전혀 다른 얘기.

한 팩을 사면 딸아이 혼자서도 그 자리에서 끝낼 수 있는 시식용 수준만 담겨있다.

그나마 다른 과일이나 간식과 잘 섞어 두세 번 정도에 나눠다.

[Image by perronjeremie from Pixabay]


딸아이에게 간식으로 차려줄 블루베리를 씻었다.

탱글탱글한 제철의 블루베리는 참 맛있게도 생겼다.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씻다가 그나마 무른 녀석 하나를 발견하고 입에 쏙 집어넣었다.

'음. 입안에서 깨무니 향긋한 단맛. 참 맛있긴 하다.'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시의 눈초리.


"아빠!!! 뭐 먹어요? 얼른 먹을 거 차려주세요."


어느새 식탁 근처에서 고개를 내밀고 빤히 부엌을 쳐다보고 있는 딸.

우리 예쁘고 어린 시어머니의 등장다.

눈치가 보여 블루베리를 삼키지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채반에서 접시로 옮겨 담아 탁으로 향한다.




'전생에 내가 얼마나 시집살이를 시켰길래.'

가끔씩은 농담을 섞어 자조적인 한탄을 해 본다.

전생 업보가 현생을 이고 현생의 업보가 후생을 이룬다는 이야기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물론 기억도 나지 않는 전생의 악업으로 현생에 고통을 받는다는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지만,

꼭 다음 생이 아니더라도 선업이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미래 만든다면 노력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뿐만 아니라 군대 등 조직생활에서도 역시 참았다는 이유로 악습을 되풀이하는 건,

또 다른 사람들의 고통 가중시킬 뿐이 아니던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도 분명 필요하다.




잠시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전생은 애초부터 믿지 않는다.

다만 아이와 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더 나은 미래를 넘어 다음 생 존재할 수 있다면 좋다고 점점 더 라게 된다.


나의 선업이 쌓여 다음 생에서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선업을 행할 것이다.


네가 며느리라면 좋은 시어머니로,
네가 아빠라면 예쁜 딸로,
그렇게 다음 생에도 아빠는
너를 꼭 다시 만나고 싶다.





[표지그림 출처 : 시집살이(The Married Life, 1958)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