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할머니 고맙습니다

by YOSPAPA

"아빠, 엄마. 나는 왜 여기에 없어요?"


작년 이맘때쯤 우리 부부의 결혼식 앨범을 보던 딸아이가 아내와 나에게 물었다.

가족들, 친척들, 우리 내외의 친한 친구들.

낯익은 얼굴들 사이에서 계속 본인을 찾는데 등장하지 않으니 의아했나 보다.

궁금해하는 딸아이에게 아내가 삼신할머니랑 있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삼신할머니는 누구예요?"

"삼신할머니는 하늘에서 아직 아빠, 엄마에게 오지 못한 아가들을 돌봐주는 할머니야."

"삼신할머니가 돌봐주시는 아가들이 많이 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동생들이 있는 모습을 떠올렸을까?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삼신할머니와 같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가들이 꽃밭 동산에 아주 많이 놀고 있단다.

삼신할머니는 힘이 세셔서 아가들이 많아도 잘 돌봐주실 수 있어.

여기 파랗게 멍든 건 삼신할머니가 우리 딸 그만 놀고 빨리 아빠랑 엄마한테 가자고

모르고 세게 붙잡으시다 생긴 거야."


딸아이의 오른 팔뚝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가리키며 아내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삼... 신... 할머니."

딸아이는 신기했는지 삼신할머니라는 단어를 조용히 읊조렸다.




"왜 아빠, 엄마 결혼식 안 왔어?"

"삼신할머니랑 있느라 못 왔어."


그 후로 결혼식 앨범을 꺼내볼 때마다 딸아이에게 왜 결혼식에 안 왔는지를 물어본다. 기억나지도 않는 삼신할머니와의 시간 때문에 결혼식에 불참했다고 당당히 말하는 우리 딸.


그 후로 인형 친구들과 병원 놀이를 할 때도

의사 역, 간호사 역, 아빠 역, 엄마 역, 아기 역 이외에 배역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삼신할머니 역. 삼신할머니 역을 맡은 친구는

책장의 제일 높은 곳에서 아기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기 친구를 돌봐주고 있어야 한다.


비록 우리 결혼식에는 못 왔지만 늦게나마 우리 곁으로 와서 행복한 추억들을 선물해 주는 우리 딸이

무척이나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에게 오기 전까지 잘 돌봐주신 삼신할머니께도 감사를 전한다.




설 명절에 들른 처가.

거실 TV장에 작년에 결혼식을 치른 처제네 결혼식 앨범과 함께 우리의 앨범이 놓여 있다.

우리 결혼식 앨범을 넘기며 먼저 선수 치는 우리 딸.


"난 삼신할머니랑 있느라 아빠, 엄마 결혼식은 못 갔지."


본인의 불참은 쿨하게 인정하고, 사진 속 다른 사람들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한 우리 딸.

가족사진에서 내 옆쪽에 가까이 서계신, 지금은 함께하실 수 없는 나의 친할머니를 가리키며

누구신지 묻는다. 딸아이가 태어난 바로 다음 해, 할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왕할머니야. 아빠의 할머니. 이제는 하늘나라로 가시고 안 계셔."

잠깐의 상념에 잠길 새도 없이 이어지는 딸아이의 상상치도 못한 대답.


"그럼 삼신할머니랑 같이 계시겠네?"




명절이 되면 가족들과의 시간과 대화 속에서, 예상치 못한 옛 추억들과 조우한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다시 뵐 수 없는 분들과의 추억일 것이다.


친척들과 다 같이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던 시간, 왁자지껄하던 어른들의 화투판,

세뱃돈으로 뭐 할지 고민하던 설렘.

그리고 다시 먹어볼 수는 없지만, 그 맛이 잊히지 않는 할머니표 갈비찜과 소고기뭇국...


돌아올 수 없는, 그래서 더 행복한 시간들.

오늘 하루도 소중히 즐겁게 보내자고 되새겨본다.


그리고 삼신할머니,

같이 계신 저희 할머니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Image by jinsoo jang from Pixabay]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serenari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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