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글쓰기

Bravo, Our life!

by YOSPAPA

며칠 전부터 우리 집에는 밤마다 오디션이 펼쳐지고 있다.

자기 전에 다 같이 불 끄고 누워서 노래 하나씩을 돌아가며 부르자는 딸아이의 제안.

단, 자장가나 잔잔한 노래는 우리 심사위원님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딸아이에게는 잠이 다가오기 전 마지막 흥을 쏟아내는 놀이기에 재미있는 요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다시 불러야 할 수고 없이 한 번에 격하려면 곡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친할머니의 기일 앞두고 글을 쓰다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 미리 선곡과 한 곡 뽑을 준비를 마쳤다. 으음.


이 세상에 부모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브라보! 브라보!"

후렴구가 흥미로웠는지 역시나 반응이 좋다.

오늘의 선곡 성공!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싱글 생글 으며 연신 브라보를 따라 외치는 우리 딸.




열 살 무렵의 추억.

일자가 비슷하셨던 조부모님 생신을 맞이하여,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이 열렸던 해.

거나하게 취하신 몇몇 어른들께서 다 같이 노래방을 갈 것을 제안하셨다.

집 근처 노래방의 큰 방 두 개를 잡아 한 방에는 어른들이, 다른 한 방에는 나와 사촌들이 자리 잡았다.

사촌들과의 시간 금세 지루해진 나는 어른들 방으로 넘어가 테이블 한 구석에 앉아,

이 오르신 어른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시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노래방을 간 없기에,

아마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무대일 것이다.

그리고 내게 아버지의 노래로 남아있는 두 곡.

윤수일 님의 '아파트'와 딸아이에게 불러준 '아빠의 청춘'.


평소에 노래를 즐기시지 않는 아버지가 두 곡만 부르셨던 것일까,

아니면 곡 모두 흥겨운 가락과 추임새 부분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

아버지가 부르시던 두 곡은 너무나 선명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왜 하필 수많은 곡들 중에 그 노래들을 부르셨을까.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의 나.

정확하진 않겠지만 아버지가 선곡하신 이유를,

래도 나이만큼의 백분율 정도는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3년 전. 회식을 마치고 잔뜩 취해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받은 어머니의 전화.

어머니가 주무시고 계셔야 할 시간에 온 전화는 받기 전부터 좋지 않은 일임은 직감했고,

그렇게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할머니가 계시던 요양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이 온 데다 자정이 가까워오는 늦은 시간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의 다음 연락을 멍하니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새벽에 빈소가 마련되는 대로 메시지 남겨놓을 테니 제대로 자고 아침에 나오라 하시는 어머니의 락.

아침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취기와 혼란스러운 감정이 뒤섞여 도저히 상황이 아니었다.

서재 겸 아이 놀이방으로 쓰던 방에 들어가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배회하다,

책장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


'청춘의 문장들'.


상실감을 글로나마 위로받고 싶은 나의 마음이 운명처럼 책의 제목에 눈이 가게 한 것이었을까.

중간중간 책장을 덮고 마음을 추스르며 끝까지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며 거의 잊혔지만, 책을 읽던 그 새벽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출판]


휴학을 마치고 대학교에 복학했을 때,

친해진 두 학번 아래의 후배가 내게 소개해 준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었다.

언젠가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한 당시의 내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며 후배는 한번 읽어볼 것을 권했다.

책 자체보다는 후배가 왜 그 책을 좋아하는지가 궁금서 바로 책을 사서 읽었었다.

그러나 솔직히 당시의 나는, 저자의 생각도 후배의 생각도 제대로 읽어 수가 없었다.


자기변호를 조금 해보자면 그때의 나는 책을 쓴 작가의 나이보다 훨씬 어렸고,

책을 추천해 준 후배보다는 실상 나이만 많았을 뿐 삶에 충실하게 몰입해 본 경험치나 능력이 미약했다.


언젠가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어 처분하지 못하고 보관만 해오던 책.

그러다 거의 10년이 지나 다시 마주한 책.

할머니와 함께했던 지난날들을 추억하 문장들을 곱씹어 읽었다.

소중한 것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내리 내리 아래로만 흐르는 물인가, 사랑은 中'




아직도 삶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 삶 명확히 두 가지 성질 가지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회귀성과 미래는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삶이로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고 中'


그리고 삶에 있어서의 청춘(靑春).

내가 느낀 청춘 삶의 특정 시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 결심 혹은 다짐.

고등학생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Youth)'라는 명시를 보고 자라난 생각일 수도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돌이킬 수 없는 삶, 예측할 수 없는 삶.

청춘의 노래들, 문장들을 옮겨 적다 보니 드는 소회 있다.


'한 번뿐인 인생의 무대. 이왕 무대에 오른 김에 끝나기 전까지 신명 나게 살아보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부정적인 사념으로 잠자리에서 뒤척이기보다,

무엇 하나라도 더 적어보고자 몸을 일으킨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 물결이 살랑살랑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우리 손자는 대기만성할 상이야."

내 귓불을 어루만져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따듯한 봄바람이 되어 마음속에 불어온다.


청춘의 날갯짓으로 힘차게 비상해 보자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Bravo, Our life!


- 3주년 기일. 할머니를 추모하며 -






[표지그림 출처 : Image by ROverhat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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