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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Oct 28. 2023

힘이 나게 하는 사람

Q

작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 장강명, '책 한 번 써봅시다' 중 -


회사나 골프장에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인 서로를 프로라고 호칭한다.

프로님이라는 표현은 이상스럽게 반감이 드는데, 작가님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비록 작가는 아니지만 작가님이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글쓰기 공간이 나는 좋다.

덕분에 삶의 활력이 되고 힘이 난다.

작가라 불리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지만서도,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난 아직은 꿈꾸는 지망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이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째는 직업인으로서, 매일 라면만 사 먹더라도 어쨌든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수입이 있을 것.

대학생 때 무협지를 써서 과외비 이상의 돈을 벌던 학과 후배가 있었다.

지금도 출판사에서 다른 유명작들 사이에 온라인 패키지로 끼워 팔아 한 달에 소고기 한 번 구울 정도는 수입이 들어온다고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조언을 구하기도 했던 그 친구는 내 기준에서는 분명한 작가이다.


째는 생산자로서 '한 주제로 200자 원고지 600매 이상의 쓰기'를 했냐이다.

글쟁이로서 글을 얼마만큼 썼냐는 얘기인데,

왜 하필 600매 인지는 진짜 작가이신 장강명 작가님의 가이드라인 따랐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님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게 소개해 준 사람이 Q이다. 




"선배! 글 쓰시면 잘 쓰실 것 같은데요?"


사소하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한 마디.

재작년 무렵 Q와 사내 메신저로 통적으로 친한 동료들의 이름이나 관심주제에 대해 N행시로 얘기하거나, 율(Rhyme)을 맞춰 대화를 나눈 때가 있었다.

그러한 대화들이 회사에서 잠시 창조적 일탈을 할 수 있는 시간이자 스트레스 해소구였다.

그 당시 그녀가 그냥 지나치듯 한 얘기일 수 있지만, 내게 던한마디가 내 마음 '정말 글 한 번 써볼까?' 하는 큰 파동을 일으켰다.


회사 회식에서 건배사 등을 제안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난 그런 상황들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상황에 맞춰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주제에 대해 즉석에서 N행시를 만드는 게 꽤 재밌고 자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로 적어두지는 않지만 평소에 아하는 노래에 대한 개사도 즉흥적으로 즐겨하는 편이라,

재능상 작곡가는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작사가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남몰래 상상한 적도 있었다.

오래전 대학교의 학과 선택 시에도 결국에는 최종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과를 맞춰 갔지만, 

당시 방송 PD나 작가가 될 수 있는 학과를 원하기도 했었고 그 도전을 하지 않았던 어린 날을 몹시 후회하기도 했었다.

돌아보면 내 마음속 한편에는 늘 글이나 말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Q가 던진 작은 한마디에 크게 동요된 나는 녀에게 늘 글을 써보고 싶었고 언젠가는 글을 꼭 쓸 것이라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가 내게 선물해 주었던 책이 바로 장강명 작가님의 책이었다.

제목부터 글을 써보라고 강하게 독려하는.


'책 한번 써봅시다.'


'책 한번 써봅시다!'


Q를 처음 알게 된 건 그녀의 입사동기이자, 나의 사내 절친이기도 한 S의 소개에서였다.

S는 그녀를 늘 진중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꼭 한번 셋이서 보자는 그의 추진력대로 우리는 모이게 되었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노상 횟집.

S군이 당시 술자리에서 즐겨하던 억의 9020 게임을 하면서 보냈던 시간은 잊히지 않는 즐거운 추억이다.

도입부 멜로디만 듣고 가수와 제목까지 맞히는 게임.

나름 9020 노래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신감이 있는 편인데, 그녀에게 패배하여 술값을 냈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황당함이나 정색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이 있다.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끄덕이 '아.....'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 반응의 최고봉을 본 에피소드 있다.


아무리 입사동기 사이라지만 웬만한 동성친구보다 가까운 두 사람 S와 Q.

함께 모임을 갖기 시작할 무렵, 나는 그녀가 사실은 S를 흠모하고 있으리라 지레짐작했었다.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S가 이성과의 교제에 아예 무관심하거나 스스로 제약하는 선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남녀사이의 우정이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법인데, 둘이서만 볼 정도로 가까운 두 사람의 관계는 다른 한쪽의 우정을 포장한 이성적 호감으로 관계가 유지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을 따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교제한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S와도 함께 만난 적이 있는, 지금의 남편.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와 S군의 면전 앞에서 지난날 나의 오해를 밝히자,

극도의 반응을 보이던 그녀가 생각난다.


"나는 Q가 S군을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줄 알았어."

"(점점 더 눈이 커지고 고개를 심하게 위아래로 흔들며) 아............"




원래 이 글쓰기 공간을 알게 된 건 아주아주 오래전 술자리에서 다른 후배에게서였다.

나에게 회사에서의 커리어가 아닌 인생의 커리어로는 무엇을 꼭 해보고 싶냐는 그 후배의 질문에도 언젠가는 꼭 글을 쓰겠다고 얘기했었다.

그때 그 후배가 직장인들도 가볍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름부터 군침이 돌게 하는 이 글쓰기 공간을 소개했었다.

하지만 취기의 대화였을 뿐이라 생각했고, 내가 정말 글을 쓸 수 있을지 확신은 갖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었다.


그러던 중 말만 하지 말고 책 한번 써보라는 Q의 무언의 압박이 또 하나의 파동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개인적인 다른 계기들과 맞물려 난 올해부터 구체적으로 글을 한번 써볼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말로만이 아닌 진짜 글을 써보는 행위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글이 글을 낳기 시작하고 점점 더 힘이 나서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을 쓴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이곳에 올린 나의 글 중 하나가 Daum 메인 화면에 게시되었다.

미친 듯이 휴대폰의 누적 조회수 알림이 오는 것을 보고서 알았다.

'귤 만 개 먹을래요'라는 글이었다.


조회수는 만 개를 넘어 이만 개, 삼만 개, 사만 개를 넘었다.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며 잠시나마 난 유명 작가가 되는 것 아닌지 상상했다.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지만 주변에 글을 쓴다고는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아,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서는 각각 변화에 대한 용기와 의지와 힘을 준 A, Q, R 세 사람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다음 글에 등장할 R과 이 글의 Q에게는 Daum 메인 화면에 게시되었던 글을 보여주었다.




R은 즉시 주소를 확인한 후 이후 올리는 내 글들에 호응을 보내주었고,

Q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작은 책에 편지를 담아 전달해 주었다.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Fredrik Backman)'의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라는 책이었다.

책의 내용도 좋지만 그녀가 정성스레 적은 글들이 오히려 내 마음을 울렸다.

[대박은 요원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포근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마침내 완성까지 마무리하게 된 나의 첫 책.

작가로서의 책은 아니지만, 한 명의 작가로서도 성장해갈 수 있도록 하는데 소중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만든 소장본 책을 가족들과 Q에게 선물하였다.

글을 한 번 써보고, 작가를 꿈꾸는데 큰 힘을 실어준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두 달 전, 회사에서 대대적인 사무실 이동이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조직이 그녀의 부서와 같은 층, 같은 동, 같은 구역에 배치되게 되면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출입문을 통과하여 통로를 지나 내 자리로 갈 때마다, 그리고 역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통로 근처에 앉아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출근길에 그녀에게 눈인사를 하려는데 보지 못해 사내 메신저로 간단히 주말 안부를 전했는데 메시지가 왔다.

이미 곁눈으로 나의 입장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더욱 소름을 돋게 했다.

'앞으로 통로를 런웨이(Run way)처럼 걷게 될 것이며, 앞으로 옷매무사와 걸음걸이에 알게 모르게 신경 쓰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 실제로 통로를 지날 때마다 마치 패션쇼의 모델이라도 된 것처럼 시선이 의식되기 시작했다.

괜히 그녀의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휴대전화에만 시선을 두고 만지작 거리며 지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마음으로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것 진짜 모델처럼 행동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을 단 하나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통로를 지나갈 때마다 어깨를 피고 자세를 바로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모델의 워킹처럼 걸었다.

막상 그렇게 하다 보니 의외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작가뿐만이 아니라 모델까지 꿈꾸도록 힘을 실어주는 Q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바라보는 그녀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도 잘 되도록 이끄는 여장부이자 덕장(德將)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나 S나 그녀가 가까이 지낸 남자 동료들은 사실은 그녀의 철저한 선별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충성심 있어 보이는 인원들만 선별하여 수여하는 여왕의 기사 작위와도 같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S군에 대한 그녀의 관대한 인간적 호의를 이성적 호감으로 오해했던 나의 생각은 아주 불충하기 그지없었다.

[2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당시 엘리자베스 공주)]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주가 그녀를 사무실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출산을 앞두고 그녀가 휴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분간 한 공주님의 엄마로서 매진해야 할 행복하면서도 정신없는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동시에 회사를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잘 활용하여,

더 멋진 여왕님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게 작가를 꿈꿀 수 있는 힘을 주었듯, 그녀의 마음이 향하는 행복한 길을 찾는데도 힘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녀가 사무실을 떠나는 마지막 출근일.

그녀의 부서원들과 같이 복도로 배웅을 나갔다.

마지막까지 잃지 않는 그녀의 포스에 그녀의 남자 후배는 전역하는 선임을 보내는 느낌이라 표현했다.

그녀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우리를 바라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외친 그녀의 마지막 말을 뒤돌아서 소중하게 적어두었다.


부디 그녀 또한 그녀의 외친 처럼 잘 지내기를 바라며.

그녀가 회사를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을 옮겨 적는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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