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파크] 2.

by 서커스

2.

경기도 시흥에 인공서핑장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나는 시흥에 웨이브파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사는 데 다소 지장이 생겼다.


나는 서핑을 잘하지도 못하는데 주말마다 웨이브파크를 드나들게 됐다. 주말에 당직을 서느라 서핑을 못 했으면 평일에 약간 무리해서 연차를 내서라도 일주일 치 서핑 할당량을 채우게도 됐다. 웨이브파크에 가 있으면 내가 진 짐이 덜 무겁게 느껴졌다. 일에 쫓기는 기분이었다가도 거기에 있으면 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 같았다. 손발이 차서 겨울을 싫어하고, 핫팩 없이는 외출이 힘든 내가 가을 서핑을 해보겠다고 쨍하게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갔다. 그래도 서핑 실력은 잘 늘지 않는다. 그래도 지난주에도 갔고, 이번 주에도 간다. 일주일 연차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웨이브파크의 서핑 강습 일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집중 강습반 4회권 결제를 하고, 시간이 맞지 않는 날엔 추가 강습을 예약했다. 여차하면 수트도, 보드도 살 기세다. 지출은 거침없다. 서핑에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가 않아서 내가 얼마를 결제하고 있는지도 별 인식이 없다.


지난주 토요일엔 웨이브파크에서 시흥시장배 국제 서핑대회가 열렸다. 나는 요가 지도자 수업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날은 수업을 빠지고 서핑대회를 구경했다. 하루 종일 서서 다른 사람들 서핑하는 걸 봤다. 잘 타는 선수들을 봤고,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을 봤다. 유명한 선수들을 봤고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여름에 서핑을 열심히 해서 발이 새까매진 사람들을 봤다. 지인을 응원하는 사람들, 서핑선수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 사회자, 심판, 웨이브파크의 직원들을 봤다. 웨이브파크에서 일하면서 쉬는 날엔 서핑을 즐기는 젊은 서퍼들이 비기너 부문에 출전하는 걸 봤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여러 번 울컥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고 신났고 재밌었다. 그런데 이게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슬펐다. 나는 주말에 잠시 구경하러 왔을 뿐인 외부인 같았다. 나는 오늘은 파도를 보고 있지만 내일은 출근해 대장동 재판을 챙겨야 할 거고, 팀장에게 보고할 거리를 저녁에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월, 화, 수, 목, 금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혹은 더 늦게까지 재판, 판결문, 타사 기사들을 챙기며 내 시간을 써야 한다. 잘하면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고, 삐끗하면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며, 심각한 실수일 경우엔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부담을 안고 출근한다.


이 사람들은 내일 뭘 할까. 롱보드 대회에서 2등을 한 진아영 선수는 내일을 어떻게 보낼까. 오늘 온 힘을 쏟아부었으니 내일은 알람을 맞추지 않고 푹 자려나. 아니면 평소대로 일어나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파크로 나오려나. 오늘 경기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왜 이것밖에 못 했을까 자책하려나. 아니면 또 며칠 뒤에 있을 경기에 집중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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