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14

오스트리아 빈에서 소아과 가기

by 그냥 하자
20250929_210452.jpg 평생 아프지 않았으면..


Day 13.

어제 아침은 비슷했다. 아내는 그래도 나보다는 감기 회복 속도가 빨랐고, 둥이는 이유식을 잘 먹었다. 물론, 찡찡대기도 하고 살짝 식은땀 나는 것도 그 전날 밤과 비슷했으나 잘 먹고, 잘 쌌고, 잘 놀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제는 월요일이었고,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Vienna을 가기로 했다. 비슷한 아침 루틴을 끝내고 집을 나선 시각은 대략 12시, 자연사박물관으로 직행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둥이도 컨디션이 나빠보이지 않았다.


자연사박물관은 미술사박물관과 쌍둥이 건물이다. 미술사박물관과의 사이에는 마리아 테리지아Maria Theresia광장이 있고 당연히 마리아 테레지아의 기념비가 그 중앙에 위엄 있게 자리하고 있는데, 시간을 들여 감상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바로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자연사박물관은 장관이었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 어마어마한 유물 전시량, 그리고 정말 다채로운 관점의 다양한 전시가 정말 인상적이었다.(*기획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1층에서는 수많은 광석들,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다양한 운석들, 살아 움직이는 공룡 모형, 커다란 공룡 화석들, 삼엽충 등 고생대 화석들, 쥐라기 공원의 아이템 같은 호박 속에 갇힌 작은 곤충들, 그리고 단 한 점만으로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von Willendorf까지 진짜 하나도 빠뜨림 없이 대단히 흥미롭고 재밌었다.

2층에서는 동물분야Zoology였다. 포유류, 조류(임시 폐쇄되어 아쉬웠다), 파충류·양서류, 어류, 곤충, 연체동물, 기타 무척추동물 등등. 이 역시 보는 맛이 대단했다. 다양한 동물들을 눈앞에서 자세히 관찰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특별전시로 진행되는 공간도 좋았다. 3d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입체감이 정말 좋아서 흥미롭게 관람했다.


그렇게 자연사박물관에서 머무는 동안 둥이 분유를 2번 먹였고 기저귀를 2번 갈았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대략 4시간 좀 넘게 머물렀는데, 이렇게 보는 동안 크게 울지 않고 잘 견뎌주었기에 조금 이따 있을 사건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2번째 분유 먹을 때 200ml를 먹지 않고 120ml만 먹었기에 아내가 조금 이상하다고 말하긴 했었다.


이 날 저녁에는 아내의 TOSCA 관람이 예약되어 있었기에 집으로 가는 길에 먹을거리를 사서 서둘러 먹고는 아내가 공연을 보러 나갔고, 나는 둥이와 함께 집에 머물렀다. 토스카 공연이 시작될 무렵인 오후 7시가 되자 갑자기 안고 있던 둥이의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체온을 재보니 37.8도가 나오는 게 아닌가. 단순히 체온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둥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계속 울고 땀이 났다. 결국 감기에 걸렸구나 싶었다. 출국 전 소아과에 다녀왔고 상비약을 챙겨 왔는데, 하필이면 해열제가 어딨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처방전에 있는 약 중에 해열제 성분이 있는 약이 있어 일단 그걸 처방전대로 2.5ml를 먹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연락을 안 할 수가 없었기에 연락을 했고 아내 역시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우리를 보기까지 계속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아내 말대로 손수건에 물 적셔서 이마와 목 뒤를 적시고 닦아 주었는데도 둥이는 계속 울다가 자고 또 일어나서 울기를 반복했다. 체온은 거의 5분마다 쟀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38.5도를 넘겼던 적은 22시경 38.8도가 유일했고 그 이외 순간들에는 39도를 넘기지 않았다. 6개월 이상인 아기들은 체온이 39도가 넘으면 위험신호라고 했다. 둥이는 아까 한번을 제외하고는 계속 37.7~38.4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체온을 유지했다. 아내가 와서는 옷을 더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우리 침대에 같이 누워서 수시로 체온을 재고 둥이 상태를 살폈다. 새벽 1시쯤에 처방받아온 챔프 해열제를 먹이고 탈수가 걱정되어 분유를 120ml 정도 먹였다. 그 이후에는 겨우 잠이 좀 들었고 5시간 정도는 깨지 않고 잠을 잔 것 같다.


Day 14.

아침에도 열은 그대로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다른 상비약을 먹일까 했는데, 약을 조제한 시점도 2주 정도 지났었고 결정적으로 약병 하나에 작은 먼지 같은 게 들어가 있는 게 보여서 전체 다 먹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남은 것은 이곳 빈 현지에서 소아과를 가는 것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소아과 가기]

처음 구글지도에 병원과 약국을 저장했을 때는 실제 이렇게 필요한 정보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약국은 내가 감기에 걸렸던 순간에 아내가 가서 약 처방을 잘 받아왔던 적도 있었다. 다만 소아과 병원은 조금 다른 상황으로 흘러갔다.


집 주변에 찾아놨던 병원은 Kinderärztin였다. 독어로 여성 소아과의사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는 평도 좋고 인기도 좋은 곳이었으며, 홈페이지를 보니 화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진료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 오는 방문자는 무조건 전화로 접수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다행인 건 8시부터 전화 문의는 받는다는 말이 있어서 바로 전화를 해 봤다. 국제전화비 나오는 거야 무어 대수랴. 근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속은 타들어 가는데 이름 모를 독일어 안내음만 계속 나오니 정말 답답했다.


일단 다른 곳을 또 찾기로 한다. 엄마 아빠는 못 할 것이 없단다. 우선 숙소 주인에게 혹시나 싶어 병원 추천을 해달라 왓츠앱으로 연락했는데 일하러 갔는지 연락을 받지 않는다. 다시 구글지도를 뒤적인다. Spital은 큰 병원의 소아과, Ordination은 작은 소아과 전문의원 정도라고 대충 감을 잡는다. 특히 아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뒤져 정보를 찾으니 '성안나 어린이병원St. Anna Kinderspital'에 대한 정보가 나왔는데, 생각보다 평도 좋지 않고 거리고 꽤 멀었기에 또 넘어간다.


동네 Ordination들을 검색한다. 집 근처에 8시에 오픈하는 곳이 하나 보인다. 전화를 건다. "Can you speak English?"부터 시작한다. 다행히 가능. 병원들은 웬만하면 영어는 가능한 것 같다. 다만 증상 설명을 하니, 처음 오는 것이냐며 묻는다.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모든 곳이 처음이지만 그들에게는 확인해야 할 당연한 프로세스이리라. 그렇다고 하니 의사와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는지 잠시 감이 멀어진다. 그러더니 오늘은 예약 없인 안된다고 다른 Ordination으로 가라고 한다. 또 속이 탄다. 이곳의 많은 곳들은 예약 우선, 초진은 전화로 무조건 확인 필수, 이런 시스템인 것 같다.


13A 버스가 가는 동선에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건다. 구글 리뷰는 2개뿐이지만 5.0인 곳이다. 8시 반부터 오픈인 곳이다. 강력한 독일어가 우리를 반겼는데, 다행히 억양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이래저래 상황 설명을 하니 또 잠깐 기다리라는데, "11시에 올 수 있음 와."라고 하는 게 아닌가. "Danke schön!"을 연발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해서 닥터 카트린의 병원Ordination Dr. Kathrin Loranth으로 가게 되었다. 여권들을 챙기고, 아내가 한국에서 가입한 여행자보험을 어떻게 보여줄지 확인하고, 둥이의 증상을 AI의 힘을 빌어 독어와 영어로 준비해 갔다. 버스 내려 목적지 근처 다다랐을 즈음 비슷한 건물들만 있어 조금 헷갈려하고 있는데 터프한 모습의 나이 드신 현지인이 묻지도 않고 어딜가는지도 말 안했는데 대뜸 옆 건물이라고 한다. 살짝 갸웃거리며 옆 건물로 가서 찾아보려고 하니까 그새 옆에 왔는지 와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한다. 츤데레셔. 다행히 벨을 잘 찾아 누르고 문을 열고 엘베를 탔다.


도착하고 보니 병원 자체는 우리랑 다를 게 없다. 장난감들도 있고 직원은 1명뿐이었는데 사무적이지만 친절했다. 의사도 친절했다. 카트린은 웃으며 우리를 대해줬고 둥이도 세심한 손길로 돌봐줬다. 몸무게도 재고 청진기 진찰도 하고 이/비/인후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정확한 검사를 위해 피를 뽑는다. 결과는 '바이러스 감염', 결국 감기에 걸린 것이다.


좌약 처방을 받고, 애기용 코 스프레이 처방을 받는다. 감사하단 인사와 함께 진료실을 나서는데 아내가 "이거 우리 처음 해보는 거잖아. 의사한테 해달라고 하면 안 될까?"라고 한다. 바로 진료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서 부탁을 해본다.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카트린이 니트릴 장갑을 낀다. 좌약에 크림을 바르고 둥이 엉덩이를 들어서 쑤욱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크림까지 챙겨준다. 아내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집에 와서 안절부절하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랬을 텐데, 덕분에 손쉽게 좌약 넣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좌약 크림(*나중에 찾아보니 피부 보호 연고였음)까지 받아 올 수 있었다.


약 처방을 위한 처방전을 따로 발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좌약과 노즈스프레이를 챙겨서 받았고, 진료비는 60유로가 나왔다. 초진비, 약제비 등을 감안하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보험에 필요한 진단서까지 발급받고 드디어 병원을 나선다. 좌약을 넣은 직후는 둥이가 조금 울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아 보였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긴장감과 불안감에 한껏 예민해졌던 우리는 그제야 서로에게 안도의 미소를 지어준다.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마음속 레이더들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물론 아직 좌약을 2-3일간 상황을 주시하며 계속 넣어야 하지만, 병원도 확인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사와 확인을 했으니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될 상황이었다.


살짝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내려오다 이쁜 표지의 초콜릿 가게를 발견하고 발길을 멈춘다. 'BonBons' 이름도 귀엽다. 문득 bonbon이라는 단어가 '달달한 사탕, 초콜릿' 등을 말하는 거라고 여행책자에서 읽은 기억도 났고, 달달구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들러보기로 한다. 진열창에 보이는 것 말고도 수많은 쪼꼬렛들이 가득했다. 크런치한 식감이 있는 것으로 작은 봉지 하나, 그리고 추천받은 것으로 작은 봉지 하나를 사서 나오자마자 한 입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뒤늦게 찾아본 구글지도 평점도 4.9나 되었고 리뷰도 칭찬일색이다. 둥이 병원을 다녀와서 긴장이 풀어져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한 번은 더 올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일정을 끝내고 집 근처 일식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또 둥이에게 문제가 생길 뻔했다. 밥을 먹는 와중에 시원하게 응가를 하셨길래, 아내는 밥 먹으라 하고 후다닥 집으로 둥이를 데리고 가서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왔다. 그런데 다시 식당에 와서 마저 밥을 먹는데 둥이가 켁켁거리기 시작했다. 분유 말고는 먹은 게 없는데 이상하다 싶은 그때, "켁!" 하면서 뭔가 입에서 뱉어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병원에서 피를 뽑고 나서 손가락 끝에 작은 밴드를 감아줬는데, 어느샌가 손가락을 빨다 그걸 입에 넣어 버렸고 목에 걸렸던 것이다. 떡을 먹은 것도 아니고 사탕을 먹은 것도 아니고 도저히 켁켁거릴게 없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다행히 잘 뱉어냈기에 망정이지, 참 오늘 이래저래 우리 모두 고생하는구나.


그렇게 집에 와서는 아내와 둥이는 휴식을 취하고 나는 설거지하고 집 정리를 한다. 둥이 두 번째 좌약도 잘 넣고 잘 놀아준다. 아내와 후다닥 저녁을 챙겨 먹고 또 둥이와 논다. 아직 예전만큼의 힘찬 발길질을 선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에너지를 회복 중이라는 게 느껴진다. 작은 몸을 품에 꼭 안고, 애기의 작은 귀에 대고 하염없이 속삭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수 만 번을 말해도 부족한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는 아픔이었으리라. 침대에서 떨어져서 '머리 쿵'을 하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서 하루 종일 울기도 하고 너도 많이 힘들었지? 이제 다 괜찮을 거야. 네 작은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네 작은 콧구멍에서 뜨거운 숨이 쌕쌕 거리며 뿜어져 나오고, 네 작은 눈에서 고통의 눈물이 떨어지고, 네 작은 입에서 돌고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그 순간 순간들을 엄마 아빠는 잊지 않을 거야. 네 곁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곳이 한국이든 오스트리아든, 북극이든 화성이든, 이 세상 어디에서라도 널 지키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어.


네 작은 몸을 꼭 안고 다시 속삭인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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