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16

미술사박물관 2회차

by 그냥 하자
20251002_181653.jpg 고요한 공간, 아름다운 작품들


오늘은 빈 미술사박물관The Kunsthistorisches Museum, KHM을 2번째 방문하였다. 방문 이후 우리의 결론, '또 와야겠다.'


우리 겸둥이는 컨디션이 85%까지는 회복된 것 같다. 그래도 완벽한 상태는 아니기에 둥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활동은 최소화하기로 하였다. 대신 어제 아내의 알베르티나 야간 방문이 만족스러웠다는 후기에 따라 오늘은 KHM의 야간개장을 맘껏 누려보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오전 10시 개장이고 저녁 9시까지 오픈하는 날이기에 그 시간을 최대한 누려보기로 한다. 아내가 먼저 가고 내가 마지막까지 보고 오기로 하였다. 오디오 가이드는 실제 스피커형으로 된 실물 본체로 듣는 것이 일반적이고, 스마트폰 어플로도 가능하다고 나와는 있는데, 아쉽게도 앱으로 하는 것은 아직 한국어 지원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어폰을 준비해 왔기에 편하게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하기로 한다.


아내는 대략 11시쯤부터 오후 3시 좀 넘어서까지 보고 그 이후 내가 가서 대략 오후 8시 좀 넘겨서까지 볼 수 있었다. KHM 전체 소장물품은 거의 백만 점 가까이 된다고 하며, 전시 가능한 부분에서는 크게 2층 회화 전시구역과 1층 쿤스트캄머(보물), 이집트 및 고대 예술 등으로 나눠질 것 같다. 2층 회화 작품은 대략 2천여 점(코인 갤러리 제외) 1층은 대략 7천 점 넘는 보물과 조각 예술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층별 구분은 회화가 1층이고 쿤스트캄머가 0.5층, 0층이 로비 이런 식인데 우리네 편의상 회화 쪽을 2층, 쿤스트캄머 쪽을 1층이라 적시한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현시점(2025년 10월) 기준으로 이 중에서 2층 86점, 1층 67점 및 중앙계단과 건축물 자체에 대한 가이드 5개 등 총 158개의 해설이 들어 있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이 오디오 가이드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개수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살짝 아쉬운 감이 들었는데, 실제 오디오에 집중하며 전체를 들으려고 노력하니 시간도 4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몸도 많이 힘들었다. 아, 참고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할 때 종이지도를 하나 나눠준다. 거기에 각 언어별로 해설이 들어 있는 번호들이 있는데 이게 정확한 위치를 나타내지 않을 때도 있어서, 제일 처음 기준으로 방을 하나 잡고 거기에 있는 번호를 아무거나 눌러서 그림을 찾아보는 것이 더 쉬울 때도 있다. 나는 각 방에서 번호가 가장 낮은 순서부터 하나씩 듣는 방식을 썼다. 그러다 보면 예를 들어 10번 가이드를 들을 때 55번을 추가로 들어보라는 식으로 지도에 없는 설명이 나올 때도 있는데 그런 후속 설명까지 들으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팁 하나는, 무조건 개인 이어폰(3.5파이)을 챙겨가라는 것이다. 그냥 오디오가이드 기기는 자체 내장 스피커를 귀에 대고 들어야 하는 구조이므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편하다.


관람 순서는 2층 회화 → 1층 쿤스트캄머 → 이집트 → 고대(그리스 등) → 추가로 여력이 되면 3층 코인갤러리 이런 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미 2층만 보고서도 체력이 거의 다 소진되어 버렸던 것 같다.


몇 가지 KHM 최고의 회화 명작들을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누구나 꼽는 최고의 컬렉션은 브뤼헐Bruegel일 것이다. 방 하나가 오로지 브뤼헐에 헌정되어 있는 브뤼헐 룸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브뤼헐 전체 작품 수가 45점 정도라고 하는데 그중 12점을 이곳 KHM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만 보자면, 바벨탑, 눈 속의 사냥꾼, 농부의 결혼식, 어린이들의 놀이, 농민의 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등이 있다.

(*다음 링크는 브뤼헐의 방을 가상 체험 할 수 있는 링크이다. https://www.wien.info/en/art-culture/museums-exhibitions/3d-bruegel-337730)


브뤼헐은 서양 미술사에서 '민중'의 삶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려낸 작가로 꼽힌다. 당시 사회경제적으로 교회와 귀족에게 치중된 권력으로 인해 예술 또한 종교와 왕족, 귀족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16세기 네덜란드 상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새로운 후원계층이 등장하고 교회와 왕족의 독점적 후원체계가 다변화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브뤼헐 개인의 혁신성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브뤼헐은 인간의 다채로운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나는 특히 농부의 춤(Peasant Dance, 1568)이 좋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조감도 형태로 시점이 높은 곳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 작품에서 농부들은 우리의 시선 바로 앞에서 춤추고, 술 마시고, 싸우고, 입 맞추고 있다. 또한 한쪽 구석에서 작은 아이 둘이 손을 맞잡고 춤추는 모습 또한 정겹고 따스하고 왠지 애틋하기까지 하다. 또 농부의 결혼식도 재밌는데, 신기한 건 이 그림에서 신부는 명확하게 보이는데 신랑은 그림에 묘사된 건지 확실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날 들었던 오디오가이드 한글판에서는 전면부에서 문짝에 음식을 나르는 사람 중 뒤쪽(왼쪽)에 있는 사람이 신랑이라고 해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뤼헐에게 공인된 것은 아니니 이 또한 여러 설중에 하나고, 보다 대중적인 설명은 그림에 '신랑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브뤼헐 다음으로는 아마도 베르메르Vermeer(*페르메이르 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데, 표준 표기는 '베르메르'라고 한다.)의 회화의 기술The Art of Painting이 눈에 띈다. 특히 이 그림도 꽤나 유명한데 그림의 구성, 상징, 의미, 기법 등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해 보인다. 모델의 시선, 그림 속 화가의 시선, 그림 속 화가가 그리는 캔버스 속 모델의 시선, 그리고 전면 좌측에 살짝 젖혀진 커튼 뒤 가상의 관객의 시선, 그리고 그 그림을 보는 우리의 시선, 이렇게 총 5개의 시선이 엇갈린다. 또한 화가가 전면에 직접 등장하고 모델이 '역사'를 상징하는 뮤즈로 그려지는 바, 예술과 역사가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며 왼쪽 위 보이지 않는 곳의 빛의 처리, 세밀한 배경의 지도 묘사 등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참고로 베르메르는 이 작품을 본인이 죽을 때까지 분신처럼 소유했다고 한다. (*참고로,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도 이 사람이 그린 것이다.)


세 번째로는 라파엘로Raffaello의 초원의 성모Madonna in the Meadow가 있다. 일단 그림 자체가 너무도 따사롭고 성스러워 보인다. 우선 구도가 삼각형으로 안정적이고 붉은색 드레스와 파란색 망또를 두른 마리아는 그 앞에 있는 아기 예수를 살며시 보듬고 있다. 과하지도 않고, 부드럽게 양손으로 아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고 있으며 시선은 예수와 요한 두 아기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마리아의 얼굴이 삼각형의 정점에 있으며 아래쪽에 있는 두 아기들은 삼각형의 좌우편에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신성과 모성, 인간성의 조화. 아름답다기보다 그저 따사롭고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인다. 그것이 바로 라파엘로가 의도한 바일 것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다. 후에 찾아본 바,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절정을 이뤄낸 3인방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이곳에 있다. 아킴볼도의 유명한 과일 얼굴 시리즈는 여기에 '불, 물, 여름, 겨울' 이렇게 4개의 작품이 현재 전시되어 있고,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시리즈도 있다.


몇 가지 더 내게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먼저 루벤스가 자기의 두 번째 아내 헬레나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 참 좋았다. 루벤스의 첫 번째 부인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흑사병으로 죽고, 이후 루벤스가 53세일 때, 16세의 헬레나를 만나서 결혼한다. 둘은 자녀가 다섯이나 있었고 루벤스의 생애 후반기 모든 사랑은 헬레나에게 받쳐진다. 특히 이 그림은 루벤스가 그려서 자신의 집 거실에 죽을 때까지 걸어뒀다고 한다. 젊은 헬레나는 관능적인 몸매를 드러내면서, 진실한 믿음과 신뢰가 기본인 관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자신 있고 사랑이 가득한 눈길을 화가를 바라본다. 직접 마주해서 보면 뭔가 뭉클한 감정이 느껴진다.


또 젊은 천재의 자신감 넘치는 작품도 있었다. 파르미자니노의 '볼록거울 속 자화상'이 그것인데, 말 그대로 볼록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진짜 볼록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화폭에 그린 건가 싶을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참고로 화가 본인의 얼굴이긴 한데, 처음 봤을 때는 어린 여자인 줄 알았다. 당시 실제 그림을 그릴 때 21살이었고, 미소년스러웠다고 한다.


카라바찌오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도 좋았다. 다윗은 승자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왜 저렇게 공허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종교적 서사는 모르지만 작은 다윗이 큰 골리앗을 이겼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왜 저런 시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외에도 렘브란트 '자화상', 얀 스테인 '사치를 경계하라', 야코프 요르단스 '콩 왕의 축제'도 좋았고, 그냥 다 좋았다고 해야겠다. 집에 있는 700페이지가 넘는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KHM에는 언급했듯이 회화 외에도 많은 예술작품들이 존재하는데, 700억 원짜리 황금 소금통 같은 것도 있고, 1층 중앙 계단의 켄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조각도 멋있었다. 체력이 떨어진 관계로 이집트와 고대(그리스 등) 예술관은 너무 대충 둘러봤는데, 이곳 빈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들러서 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새삼, 분데스뮤지엄카드를 미리 구매했던 나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며, 이 멋진 곳을 또 올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keyword
이전 17화Vienna, Day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