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17

사진에 없는 하루

by 그냥 하자
20251003_185618.jpg 아름다운 비엔나 시내 전망


지금은 2025년 10월 5일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빨리 자야 하는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어제 못 적은 여행일지를 얼른 써야지 하면서 그날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제 모두 인터넷에 자동 업로드 되기에 그저 클릭 몇 번으로, 자동저장되어 있는 그날의 하루를 되새김질한다.


의미 있는 날을 맞이하여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여유롭게 쉬다가 식당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계획의 전부인 심플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였다. 예약한 식당의 전망은 최고였다. 일몰 시간을 맞춰 예약을 했었고, 날씨는 쾌청했다. 식당에서 내려다보는 빈의 시내는 아름다웠다. 푸른 도나우강과 그림 같은 풍경위로 저녁노을이 드리워지고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졌다. 즐거운, 즐거웠어야 하는 하루였다.


이틀이 지난 지금은 무엇이 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도 않는다. 유모차를 밀고 가다 둥이와 부딪칠 뻔했던 그때였던가. 아기 젖병 설거지 초벌을 좀 더 깨끗하게 해 달라던 그때였던가. 명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런 사소한 일들 때문에 우리는 좋은 날에, 좋지 못한 기분으로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감당해야 했다. 오히려 작은 위기가 있던 순간들은 서로 의지하고 응원했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난 후에야, 준비했던 기저귀/분유 가방을 유모차 하단 수납칸에 넣지 않은 것을 깨달았을 때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었다. 다행히 분유팩과 젖병 하나는 유모차 상단 수납칸에 있었다. 분유를 타기 위한 따듯한 물은 식당에 부탁하기로 하고, 기저귀는 다행히 나오기 조금 전에 대변을 봤었기에 그래도 조금은 견뎌주기를 기도하면서 위급시에는 챙겨 온 턱받침들로 임시로 때워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 계획들은 크게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물론, 식당에서 식사하는 도중에 우리 VIP께서 큰일을 보셨기에 살짝 당황하기는 했지만 임시로 조치를 취하는 계획은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이런 즐거운 날에 슬프고 힘들었을까? 빈에서의 생활도 2주가 넘어가는 시점이라 낯선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집만큼 편안한 공간이 어딨겠냐마는, 이곳의 생활도 이제 조금은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육아? 물론 육아는 여전히 힘들다. 특히 아기의 울음소리에는 아내보다 내가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이든 이곳 빈에서든 크게 다른 조건이 아니다. 아기는 여기에서나 거기에서나 울었을 것이니까. 그런데, 그럼 왜, 전보다 더 사소한 것 때문에 아내와 다툼이 일어나고 감정이 상하고 힘들어지게 되었을까?


사진 속의 우리들은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저장되지 않는 많은 순간들은 그 속에 담겨 있지 않다. 우리가 종군기자도 아니고 풀리처 상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아니기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자동 저장되는 구글 포토에는 즐거울 때 혹은 즐겁게 보이고 싶을 때 찍은 사진들만이 빼곡하다. 아프고 눈물지었던 순간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행복한 순간들만 누리며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행복의 순간은 한 줌이고, 힘들거나 힘들지 않더라도 별생각 없이 습관처럼 흘려보내는 그런 무미건조한 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니만큼, 또 다른 사소한 행동과 말들로도 충분히 서로 아프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낯선 환경과 더불어 최근 감기에 걸렸던 둥이 때문에 한껏 예민해진 감각들 때문이라고 변명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법한 일들에도 나는 우리에게 생채기를 내고 말았다.


결국 너는 말했다. '아껴달라고', '애틋한 마음을 가져달라고'. 측은지심. 분명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닌데, 먼 타지에서 사서 고생을 하며 육아를 하고 있는 와중에 믿을 구석이라곤 옆에 있는 서로가 다인데, 결국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지금도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줄 것은 너인데, 나는 왜 그토록 속 좁게 행동했던 것일까?


잠들기 직전에야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하루 종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 높이에서 끝없는 낭떠러지까지 다녀온 덕분에 우리는 더 애틋하게 서로를 안아줄 수 있었다. 답을 모르지 않기에 더 답이 없는 싸움이었고, 답이 없기에 남는 건 '부부'인 우리 둘밖에 없었다. 육아로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야 할 존재이고 우리 곁에 남는 건 '우리' 밖에 없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해, 딱 하루 더." 아내가 말한다. "응 알겠어, 운동 열심히 할게." 아내와의 나이차를 감안하면 꽤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적응은 했다지만 그래도 낯선 타국에서의 긴장되는 육아 생활 때문에 조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간지러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감기에 걸렸을 때 맛있는 김치찌개 끓여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 사람에게 오늘도 고백한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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