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놀이공원, 굴라쉬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세 단어, 맥주와 놀이공원, 그리고 굴라쉬!
독일 하면 맥주, 맥주 하면 옥토버페스티벌이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티벌은 오랜 역사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 가 보질 못했는데, 그 유명세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빈 여행 계획을 짤 당시 거주 기간 동안 개최되는 이벤트나 행사들을 찾아보았는데, 이 지역에도 맥주 축제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숙소에서 먼 곳도 아니어서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오늘 가보게 되었다. 행사가 개최되는 프라터Prater 공원이 생각보다 조금 멀었기도 하고 그 인근에는 방문할만한 다른 곳이 없었기에 이전에는 딱히 갈 생각을 못 했었다.
오늘은 그 간 다른 곳들을 많이 둘러보았기에, 핵심 관광 지구를 벗어나서 오스트리아의 맥주 축제를 경험하러 찾아가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빈 맥주 축제의 정식 명칭은 비엔 카이저 비즌Wien Kaiser Wiesn이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티벌이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데 비해, 오스트리아의 맥주 축제는 역사가 짧다. 2011년에 시작해서 약 10년간 확대되어 가다가 코로나로 중단되었었고, 2022년에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대형 텐트는 약 3개가 있고, 나머지 작은 텐트들과 이벤트들이 개최된다. 텐트 내부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티벌과 아주 유사하다. 수많은 나무 테이블들이 있고, 전통 의상을 입은 종업원들이 돌아다니며 1리터짜리 맥주잔을 나른다. 무대에서는 쉼 없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대형텐트 중에서 오스트리아 국민 맥주인 괴써Gösser의 텐트로 들어갔다. 괴써는 오스트리아 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이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이다. 생각보다 내부는 꽤 컸고, 역시나 시끌시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시점은 금요일 오후 1시가 되기 전이어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은 많이 없었고, 대부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나 관광객들로 보이는 일부가 있었다. 우리는 둥이와 함께 했기에 최대한 음악소리가 작게 들리는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맥주는 쏘세지지! 하면서 쏘세지류의 안주 2개와 1리터짜리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는 청량했다. 조금 정신없어서 어떤 걸 시켰는지 기억이 명확치는 않지만 청량한 것이 라거였던 것 같다. 쏘세지도 딱 적당했고 분위기는 좋았는데, 뒤쪽에 앉았는데도 생각보다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서 둥이의 청력이 조금 걱정되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한 명이 계속 밖에서 둥이랑 놀고 나머지 한 명이 안에서 교대로 후딱 먹고 나오기로 했다. 조금만 여유 있었으면 다른 맥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얼른 먹고 텐트를 나섰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았기에 산책 겸 간단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둥이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인 다음 인근 프라터 놀이공원Wiener Prater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행 정보를 찾을 때 알아본 바로는 엄청 오래된 놀이공원이라는 정보만 확인하고, 맥주 축제가 열리는 장소란 것만 보고서는 더 알아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실제 방문하니까 오래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규모도 무척 크고 최신 놀이기구들도 많았다. 높은 공중에서 막 돌아가는 '회전 체어', 그네를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이젝트 시트', 긴 막대기 양 끝에 매달린 의자에 앉아 크게 돌아가는 '더 킹', 그리고 쉽게 말해 롯데월드 '자이로 드롭' 같은 것 등등 설명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놀이기구가 있었다. 물론 이곳에는 이런 스릴 넘치는 기구들 말고도 관람차도 2개나 있고, 애들을 위한 소소한 기구들도 많았다. 2개의 관람차 중 큰 것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에 나와서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여기서 보는 야경이 또 그렇게 멋지다고 한다.
우리는 애기랑 같이 왔기에 놀이기구는 나만 딱 1개를 타고 왔다. 야경이야 도나우 텀 레스토랑에서 충분히 즐겼기에 아쉽지 않았지만, 나는 놀이기구를 좀 더 못 탄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탔던 건 'The King'이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높게 올라가서 전망도 좋았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이 나름 재밌었다. 물론 어지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둥이를 보느라 못 타기도 했지만 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어도 안 탔을 것이다. 나는 서양 젊은이(?) 한 명과 같이 탔는데, 거기는 여자친구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이 친구는 한 참을 비명을 지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재밌게 즐겼고, 내려와서는 이 친구가 먼저 내게 주먹인사Fist Bump를 청해 와서 순간의 동지의식을 느끼고 헤어졌다.
그렇게 짧게나마 즐기고 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지 않고 집에서 먹었는데, 아내가 굴라쉬Gulasch를 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굴라쉬는 헝가리 전통음식이다. 헝가리식 발음으로는 '구야시'라고 읽는 게 맞다고는 하는데, 굴라쉬가 훨씬 대중화된 용어이기에 이렇게 쓰기로 한다. 빈에서 굴라쉬는 SIXTA라는 동네 맛집에서 한번, 그리고 벨베데레 인근의 이탈리안 레스토랑Das Lokal im Hof에서 먹었었다. 굴라쉬는 중 유럽 쪽으로 갈수록 걸쭉한 느낌의 스튜형태가 된다던데 식스타에서 먹은 것이 딱 그 스타일이었고, 다스로칼암호프에서 먹은 것은 헝가리식으로 수프 형태였다.
오늘 아내는 소고기와 감자, 당근을 메인으로 해서 동네 마트에서 산 굴라쉬 소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멸치액젓과 고춧가루, 치킨스톡을 넣어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내는 요리를 참 후딱 잘 만든다. 이래저래 준비하더니 다 되었다고 한 숟가락을 가져와서는 맛을 보라고 한다. '꿀꺽'. 어라? 생각보다 정말 맛있었다. 식스타에서 먹은 것은 생각보다 짜고 좀 향이 강했다. 다스로칼암호프에서 먹은 것은 맛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좀 짰다. 아내가 한 것은 간도 적당하고, 국물도 우리 스타일에다가 소고기와 감자, 당근도 아주 적당히 익어서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여기 먹은 굴라쉬 중에서는 제일 맛있었고, 솔직히 지난번 감기 걸렸을 때 아내가 만들어준 김치찌개보다도 더 맛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아파서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지만!
맥주와 놀이공원, 그리고 세상 젤 맛난 굴라쉬까지, 어찌보면 완벽한 하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글로 쓰거나 사진으로 보이는 것 이외의 일상과 육아는 여전히 계속 된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응가를 처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매일매일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잦은 일상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매일의 노동과 가끔의 행복,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