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자허 토르테, 눈웃음 남발 둥이, 아름다운 빈 대학 교정
오늘도 평범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런 평범함에 감사한 하루였다.
오늘부터 둥이는 이유식을 2회로 늘리게 되었다. 요즘 둥이의 식사 스케줄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침에 분유를 한번 먹고, 2회 차 분유 먹기 30분 전에 이유식(쌀미음/오트밀/소고기/단호박/애호박 등)을 먹는다. 곧이어 2회 차 분유를 먹고는 사과 퓌레 같은 간식을 소량 먹기도 하고 안 먹기도 한다. 이후 3회 차 분유를 먹고, 4회 차 분유 먹기 전에 오전 이유식과 마찬가지로 오후 이유식 2회 차를 먹는다. 그리고는 4회 차 분유를 먹고 혹시나 하루 총량이 부족하면 조금 추가로 마지막 수유를 하고 잠을 잔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더 시간이 빠듯하게 흘러갈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구름이 가득하고 날씨가 좋지 않다. 그래도 집 안에만 머물기엔 아쉬워서 간단하게 시내를 조금 둘러보고 오기로 하고 먼저 보티프 교회Votivkirche로 향했다. 교회 앞 정원에서 간단히 풍경 스케치도 하나 그려본다. 어제 쇼핑 거리에서 작은 스케치 노트를 하나 샀는데 앞으로 틈틈이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
보티프 교회는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고딕 건축 중 하나로 손꼽힌다. 100미터에 달하는 첨탑이 2개가 우뚝 솟아 있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정말 아름답다. 또 이곳에서는 Light of Creation이라는 몰입형 공연이 저녁에 펼쳐지는데, 아직 예매는 안 했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아내와 같이 보러 와야겠다.
아름다운 교회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계속 카페 자허Café Sacher의 자허 토르테Sachertorte를 먹고 싶다고 했었는데, 마침 인근에 카페 란트만Café Landtmann이 있어서 카페 자허 대신 이곳에서 토르테를 먹어보기로 했다. 여기 카페 란트만도 역사가 오래된 전통 카페하우스 중 하나다. (*1873년 오픈) 인근에 빈 대학교가 있어서 이곳에서는 프로이트, 말러, 카프카 등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아인슈패너와 캄파리 스프리츠Campari Spritz, 그리고 자허토르테와 오리지널 부헬틀Lantman's Original Buchteln을 시켰다. 우선 자허토르테는 카페 자허의 오리지널을 먹어보지 못해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맛있었다. 특히 아인슈패너와 곁들여서 먹으니 달콤한 디저트와 부드러운 커피의 조화가 정말 찰떡궁합이었다.
캄파리 스프리츠는 식전주 칵테일로 얼마 전 마셔봤던 아페롤 스프리츠와 비교했을 때 조금 더 쌉쌀하고 진한 맛을 보여주었다. 둘 다 비슷한 식전주이지만 내 입맛에는 조금 더 달고 상큼한 아페롤 스프리츠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오리지널 부헬틀은 살구잼을 넣은 빵에 따듯한 바닐라 커스터드 소스를 곁들인 오스트리아 전통 디저트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오리지널이라길래 시켜봤는데, 너무 달지 않고 적당히 괜찮았지만 조금 더 부드러웠으면, 조금 더 따듯하게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식전주나 커피와 그다지 잘 어울리는 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빵류는 거의 무조건 우유와 먹는 걸 즐겨하는 터라, 오히려 우유하고 같이 먹었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페 란트만은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식전주도, 디저트도 다 좋았다. 서비스도 젠틀하고 깔끔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좋지 않았던 것은 가격뿐이었다. 이렇게 음료 2잔에 디저트 2개를 시켰는데, 우리 돈으로 7만 원가량이 지출되었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고 맛이 좋았다 한들, 7만 원이란 가격이 합당한 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유료 환율이 원화 대비 불리한 상황이긴 해도 커피/디저트 마시고 7만 원이라니, 여행이 아닌 일상 육아를 영위 중인 휴직자 부부에게는 조금 사치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것이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카드를 꺼내 들고 팁을 얹어서 계산을 했다. 직원의 "Thank you very much."에 가슴이 조금 아려오는 것은 캄파리 스프리츠의 쌉싸름함 때문이었으리라.
따듯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로 속을 채우고 우리는 빈 대학교로 향했다. 본관 중앙 회랑에는 흉상들이 즐비했는데 이곳은 빈 대학 각 분야의 저명한 인물들로 구성된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라고 한다. 1365년에 설립된 중유럽 3대 명문 학교이고 노벨상 수상자만 17명을 배출했다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우리는 회랑을 둘러보고 중앙 정원에 비어있는 커다랗고 파란 의자에 앉아서 여유를 부려본다. 시간만 있으면 빈 강의실에라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그냥 개인적인 욕심으로 남겨둔다. 우리가 일어나서 나가려고 할 때 수업이 끝났는지 또 한 무리의 젊음이 시끌시끌 이야기를 나누며 흩어진다. 이제까지 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여기는 그래도 젊은이들이라 그런지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둥이의 2회 차 이유식을 위해 짧은 시내 투어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트램을 타고, 내려서 바로 코 앞에서 버스로 환승해서 집 앞에 내리는 코스다. 트램을 타기 직전 둥이가 보채는 바람에 내가 아기띠를 하고 둥이를 안고 탔다. 트램이 출발하기 직전 인도 태생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탔는데, 6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애가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둥이가 또 이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아닌가? 마침 귀여운 인도 친구도 우리 둥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앞에 서서는 둥이를 보고 배시시 웃고 자기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정거장 2개를 지나칠 동안에도 둘은 계속 관심을 보이며 서로 웃어주었다. 그리고 트램에 내려서 버스를 타기 전에 유모차를 태웠는데 무엇이 불편한지 계속 찡찡거리기만 한다. 어쩔수 없이 안아주었는데 때마침 바로 들어온 버스를 타느라 둥이를 아기띠도 없이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유모차 구역에 자리가 좀 있어서 아내가 유모차를 가지고 앉고 나는 그 옆 기둥에 둥이를 안고 버티고 섰다. 그런데 이 친구가 또 미소 공격을 날리는 게 아닌가. 반대편에 앉아 있던 시크하게 보이는 젊은 언니에게 과감하게 눈웃음과 미소를 날리는 우리 둥이, 과연 맞은편 그녀는 시크함을 유지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 둥이의 해맑은 웃음에 시크해 보였던 오스트리아 언니도 싱긋 마주 웃어준다. 낯가림이 없는 건 분명 좋은 거긴 한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웃음을 남발하다니, 아빠로서 걱정이 지금부터 드는 건 김칫국 드링킹이 과한 걸까?
그렇게 짧은 시내 투어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는 둥이의 육아 스케줄을 마감하고, 아내와 오래간만에 한국 라면을 끓여 먹고 맥주를 한잔하고 오늘 하루를 또 마무리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하루였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겠노라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