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시내 투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은 아내의 벼룩시장 3차 출격이 있었다. 1차에 봤던 찻잔이 꽤나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 날은 첫 방문이니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고 하고 그냥 왔었다. 2차는 둥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고, 쓱 훑어봤을 때 1차 때 봤던 찻잔이 보이지 않았었다고 했다. 3차는 아내 혼자 다녀왔다. 나는 둥이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먹이면서 열심히 둥이 살을 찌우고 있었다. 드디어 벼룩시장 공략에 성공한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이쁜 찻잔을 구매해서 들고 왔다. '의기양양'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찻잔 2개를 각각 제시받았던 금액보다 나름(?) 더 저렴하게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와서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셋이서 시내 투어에 나섰다. 오늘이 24일째 인데도 시내 투어를 많이 못 다녀서 볼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59A버스를 타고 오팔칼스플라츠 정류장에 내려서 트램으로 갈아탔다. 트램은 1번 트램이었으나 72번, D번도 아마 동일한 노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회의사당 정류장에 내려서 국회의사당을 구경한다. 이 건물도 꽤 유명한 축에 속한다. 링슈트라세가 만들어질 때 오페라하우스, 국립도서관, 박물관 등과 같이 건설되었고 유럽식 공공건축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한다. 특히 의사당 정면 계단 앞에 커다란 분수가 있고 그 중앙에 지혜의 여신 아테네 상이 있는데 금빛 투구와 금빛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여기 의사당에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해 주는데, 여권 같은 포토 ID가 있어야 해서 우리는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어차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지라 1시간가량을 투어에 투자하는 것은 크게 메리트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서는 시청 앞 광장을 거쳐 부르크 극장을 지나서 미노히텐키르헤Minoritenkirche라는 교회로 갔다.(*자주 등장하는 단어라 익숙하시겠지만 키르헤Kirche가 '교회'를 뜻한다.) 여기 간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복제품이 있어서이다. 거듭 언급했듯 나는 종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누구라도 '최후의 만찬'은 들어봤을 것이고 나와 아내도 좀 관심이 있었다. 예수와 제자들 간의 마지막 식사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의 원본은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 식당 벽에 걸려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가 본 적이 없다. 빈의 이 교회에 있는 것은 이 작품의 '대리석 모자이크' 카피 버전이다. 처음 교회에서 봤을 때는 사실 모자이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대리석으로 잘라 붙여서 모자이크를 만들었는데 저렇게 정교하다니, 집에 와서 내용을 찾아보고, 찍어놓은 사진을 눈을 크게 뜨고 확대해서 보아야만 매끈한 대리석 재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유명한 곳이 아닌지라 조용히 모자이크 그림을 관찰하고 교회를 나왔다.
그리고 인근 공원에 있는 테세우스신전Theseus Temple에 잠깐 들렀다. 이곳은 원래 프란츠 1세 황제가 로마에서 구입했던 '테세우스가 켄타우로스를 잡는 조각상'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지금 저 조각상은 미술사박물관 중앙계단 위에 있다. 신전 자체는 그냥 고대 그리스 양식 건축물의 축소판이어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벤치에서 쉬었다. 날씨가 참 좋았다.
나와서는 미하엘 광장Michaelerplatz으로 갔다. 이곳 원형 로터리를 중심으로 시시 박물관, 스페인 승마학교, 성 미하엘 교회 등 많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있었다. 이 원형 로터리의 화려한 건축물들 사이로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건물이 하나 보인다.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인 아돌프 로스Adolf Loos가 지은 건물이다. 1900년대에 건립되었을 당시, 빈 황실과 대중들은 너무 무미건조하다며 많은 비판을 했는데, 지금은 빈 현대건축의 상징이 되었고 유럽 모더니즘의 혁신적 시작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질적인 느낌보다는 고급스럽단 느낌이 먼저 든다. 1~2층은 대리석으로 3층 이상은 연회색의 회벽인데 대리석의 무늬, 회벽의 색깔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장식 가득한 주변 건물들 속에서 군계일학의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오던 참이라 근처 중식당에서 만두와 면요리를 맛있게 먹고는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중앙홀Prunksaal; Baroque State Hall에 방문했다. 바로크 시대 황실 도서관의 화려한 장식과 웅장한 건축미가 일품인 곳이다. 하지만 실제 독서가 가능한 공간은 아니어서 대부분 이쁜 사진 건지기에 여념이 없던 공간이었다.
1구의 중심에는 성 슈테판 대성당이 있고, 이곳에서부터 성 베드로 성당 방향으로 쭉 이어진 거리는 그라벤Graben 거리라고 한다. 빈 구시가지의 대표적인 역사/쇼핑/문화의 거리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거리이자 역사적 명소들이 가득한 공간인데, 성슈테판 대성당, 페스트 조일레Pestsäule, 성베드로 성당, 호프부르크 궁전(은 가까이는 아니고 인근), 다양한 바로크/아르누보 건축물 등이 있다. 빈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거리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페스트 극복의 상징이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념비 중 하나로 꼽히는 페스트 조일레에서 사진을 찍고 성 베드로 성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1700년대 완공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화려한 교회 중 하나로 꼽힌다. 조금 늦은 시각이라 사람이 많진 않아서 조용한 가운데, 경건한 분위기에 잠시 휩싸여 본다.
그라벤 거리와 주변만 해도 반나절이 아니라 1일 코스로 충분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둥이는 마지막 수유를 20시경에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둥이가 도통 잠을 자려하지 않고 계속 우는 것이다. 그것도 오래간만에 경험하는 강성울음이었다. 얼마 전 감기로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던 터라, 우리는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남자와 여자, 아니면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걱정은 걱정대로 하면서도 그 울음에는 참 견디기 힘들었다. 번갈아가며 업었다 안았다 아기띠를 했다 갖은 수를 써 봐도 울음을 멈추지를 않는 둥이, 당장 병원을 가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체온이 정상이었기에 단순히 성장통일 가능성, 혹은 원더윅스(라고 이쁘게 포장하지만 결국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울음)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으로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내가 침대에 누워서 둥이를 배 위에 얹고 있다가 솟구치는 짜증에 나도 모르게 둥이를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아내가 깜짝 놀라 하면서 나 보고는 그만하라고 하면서 둥이를 데려가서 한참 달래주었고 결국 22시 30분 정도에 잠들게 할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나는 잘못했다며 아내에게 사과를 했고, 아내는 아기는 이유 없이 우는 거라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재차 다짐을 받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아기의 강성 울음에는 적응이 되질 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음과 양,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감싸 안아야 하는데, 나는 내가 좋으니까 아기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이뻐하고, 내가 힘드니까 아기의 짜증과 울음은 싫어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남녀의 차이인지, 아빠와 엄마의 차이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 날 갑작스레 폭발한 짜증에 따른 행동은 분명 잘못했다 생각한다.
간단하게 몇 줄로 정리했지만, 두 시간이 넘게 우는 상황은 정말 쉽게 감내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한국도 아닌 낯선 타향이지 않은가. 과거 글에도 적었듯이 사실 내가 이 울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했던 사례가 몇 번 더 있었다. 아주 초기 신생아 시절에도 두 번 정도 있었고, 한동안 뜸하다 이번에 또 그랬던 것이다. 당연히 이곳의 육아 환경은 한국보다 열악하다. 우리 둥이도 더 힘들 것이다. 게다가 아프기도 했었고,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아닌가. 아무리 내가 폭발해도 다음날이 되면 나를 향해 환히 웃어주는 우리 둥이. 아빠가 많이 부족하다 둥이야. 지금 나를 바라보는 너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눈빛을 보며 가슴 아프게 반성한다. 네 엄마 말 잘 듣고, 힘들어도 짜증 나도 네 앞에서는 절대 다시 표출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