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27~28

Marina Abramovic

by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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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7

이 날은 아내가 자유시간을 갖는 날이었다. 정말 다른 일들이 별로 없었기에 적을 것이 없다. 다행히 내가 둥이를 케어할 때 둥이가 많이 울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돌아올 때 손에 끼는 돼지 인형을 사 가지고 와서 둥이와 놀았는데 둥이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아주 재미있어했다는 것, 그리고 잠시 짬이 나서 동네 한 바퀴 뜀박질하고 돌아온 것, 이것이 끝이었다. 평범한, 소중한 하루였다.


Day 28

2025년 10월 14일 화요일이다. 빈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픈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오전 시간을 더 알차게 사용하고 싶어서 9시에 여는 곳을 찾다 보니 '기술박물관Vienna Museum of Science & Technology'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저것 리뷰를 찾아보니, 일단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평이 많았고, 생각보다 방대한 전시물품량에 놀랐다는 글들도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소장품은 약 8만 개가 되며, 기술의 발전 단계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어차피 분데스뮤지엄카드로 갈 수 있는 곳이니 가볍게 숙소를 나선다.


박물관은 숙소에서 크게 멀지 않았다. 쇤부른 궁 바로 위쪽에 있었고, 날씨가 무척 쾌청한 아침이었다. 박물관에 도착해서는 제일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항상 제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을 시작한다. 4층에 엘베레이터를 내리고 본격적으로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서약서(?) 같은 것이 있었다. 이 날 기술박물관에서도 2시간 넘게 머무르며 많은 것을 봤는데, 다른 그 무엇보다 4층에서 본 텍스트의 글귀 하나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Underlying our collecting activities is an unspoken contract between the generations.

단순히 '소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의 묵시적 계약'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박물관은 그들 업의 본질을 '세대를 이어 전승할 문화적 자산'으로 규정한 것이다. 소명의식과 사명감이 느껴지는 글이다.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두고 물품들을 둘러보니까 그 의미가 사뭇 남달라 보였다. 100년이 지난 후의 미래 세상에서는 100년 전에 수집해 놓은 과거 세대의 물품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살짝 질투까지 나기도 하는 저들의 자부심 가득한 글귀를 제외하고도, 이곳에는 정말 많은 수의 소장품이 있었었는데, 특히 저층부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기계들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실물 사이즈의 증기 기관차가 몇 개나 있었고, 고층부 공중에는 비행기도 실물 사이즈로 전시되어 있었다. 또 다양한 체험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라 실제 학습용도로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날 짧게 있었지만 견학을 온 학생 무리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 둥이도 얼른 커서 이런 곳에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는 유사한 박물관이 없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알베르티나 모던이었다. 여기도 이미 한번 다녀왔지만, 당시는 데미안 허스트의 특별전시만 있었고 메인 공간은 다른 전시를 준비 중인 관계로 접근할 수가 없었는데, 그 전시가 바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였다. 사실 시내 곳곳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회고전의 홍보사진이 노출되어 있어 얼굴은 익숙했었는데, 실제 누구인지 어떤 퍼포먼스를 한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그 유명한 '나체 입구(*내가 이름 붙였다.)' 퍼포먼스의 당사자였던 것이다. 이 퍼포먼스의 실제 제목은 Imponderabilia라고 하는데 이는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이란 의미라고 한다.


실제 공연 제목으로 이 공연? 행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미술관 입구에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며 서 있고 이 공간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그 나체의 남녀와 신체접촉을 하면서 들어가야 하는 공연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나도 그게 누가 한 것이었는지 언제 어디서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얼핏 주워 들었던 기억이 나는 퍼포먼스이다. 여하튼 그 당사자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고 이 사람의 회고전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사전에 찾아본 바로는 '관객 체험 퍼포먼스(*이 퍼포먼스라는 단어를 대체할 우리말이 별로 없다. '공연'이나 '행위'라고 하면 뭔가 그 단어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가 공연 기간 중에 랜덤으로 시행된다고 해서 살짝 기대도 했었다.


이 날 공연장에는 대략 10개 이상의 섹션(방)들이 구분되어 있었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근 50년에 달하는 활동기간 중에 수행한 대표적인 행위예술들이 선보이고 있었다. 물론 실제 당시의 '퍼포먼스'를 직접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수행하는 것은 아니고, 당시 퍼포먼스를 촬영했던 영상을 틀고 그때 활용했던 소품들을 전시하는 등의 '재연' 방식을 사용했다.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위에 언급했던 Imponderabilia이고, 또 하나 정말 센세이셔널했던 것은 퍼포머 자신을 오로지 관객에게 맡겨버린 퍼포먼스이다. 1970년대 그녀의 초창기 퍼포먼스인 Rhythm 시리즈 중 첫 번째인 'Rhythm 0'가 바로 그것인데, 72가지의 물건을 가지고 관객들이 그녀에게 자유롭게 사용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물건들 중에는 장미나 옷, 거울 같은 물건과 함께 칼, 총, 쇠사슬 같이 직접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품들도 있었다. 당시 이 퍼포먼스는 6시간 동안 행해졌는데, 훗날 그녀는 '실제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다고 한다. 이날 알베르티나 모던에서는 그 당시 촬영한 영상들이 틀어져있었고 그때 당시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유명한 것은 2010년 뉴욕의 MoMA에서 행해진 것인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의자에 앉아있고 맞은편 의자에 관객이 와서 그녀와 마주 보는 것이었다. 이 퍼포먼스는 실제 재현은 되지 않고, 당시 촬영한 다양한 영상들이 틀어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그녀의 스크린이 수십 개 아니 아마도 백개가 넘게 한쪽 벽에 빼곡히 들어차 있고 맞은편 벽에 그 반대편 의자에 앉았던 청중들의 얼굴 모습이 똑같이 클로즈업되어서 찍힌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충격적이면서도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녀가 처음 퍼포먼스를 시행했을 때는 1970년이었다. 당시 그녀의 퍼포먼스는 사회적인 금기를 깨는 도발적인 행동들이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2025년이며, 모든 퍼포먼스들은 이미 다 과거 속에 있었다. 그때 당시 그녀의 도발과 대중의 수용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그녀의 소울메이트였던 울레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둘은 마리나가 서른 즈음에 처음 만나 십 년을 넘게 영혼의 파트너로서 공연을 같이 하고 이별했다. 그 후로 뉴욕에서 잠시 재회를 했던 것이 약 20년 만이고 그 후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것이 처음 만난 이후 30년 만이다. 그 30년 만에 다시 만난 그 둘이 대화를 나눈 영상(https://vimeo.com/730256338?fl=pl&fe=ti)을 보았는데, 인상 깊은 대목 하나를 옮겨 본다.

“You were not just another visitor. You were my life.”

2010년 MoMA에서의 퍼포먼스에서 만났을 때를 회고하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한 말이다. 이 영상을 보고 나서 다시 한번 2010년 영상을 찾아보았다. 만리장성에서 헤어진 그 둘이 22년 만에 만난 순간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때 그녀의 철칙을 깨고 손을 뻗어 관객인 울레이와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울레이가 그녀에게 작게 속삭인다. 잠시 후 그는 일어나서 자리를 떠난다. 그때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은 결국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위와 같이 회상한 것이다. "You were my life."


이번 회고전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예술가를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 나는 이런 행위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질문과 화두를 갖게 된 날인 것 같다. 떠나기 전까지 다시 한번 방문해서 실제 관객 체험 퍼포먼스를 체험해 보겠노라 다짐하며 알베르티나 모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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