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nna, Day 26

음악의 도시, 오늘은 째즈!

by 그냥 하자
스크린샷 2025-10-13 151124.png Jazz!



오늘도 다양한 일정이 있었던 하루인데,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저녁에 찾아갔던 작은 째즈클럽 이야기로 하루를 정리하고자 한다.


나는 2019년 10월 말, 영국 런던으로 교육 출장을 다녀왔다. 그동안 회사에서는 항상 어르신들 모시고 실무자와 관광가이드를 겸하거나 아니면 출장일정 내도록 일만 하다 돌아오곤 했다. 가끔 회사에서는 포상 형식으로 업무가 아닌 일정들로 가득 찬 출장 같은 것이 생기는데, 한 번도 그런 것을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교육 출장을 혼자 가게 된 것이다. 물론 나인투식스로 교육을 듣다 저녁에만 짬이 나는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혼자라는 것이, 짧은 자유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내 인생 오페라인 '오페라의 유령'을 만났고, 또 Ronnie Scott's라는 째즈카페에서 째즈에 흠뻑 빠지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로니 스캇에서는 동영상 촬영을 하지 않았었나 보다. 구글 포토에 겨우 가게 바깥 풍경 사진만 남아 있다.


오늘은 빈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작은 째즈 바의 공연을 보러 갔다. 기억 한편 속 런던의 경험이 너무 즐거웠었기에, 이번에도 좋은 째즈바를 찾아보려고 계획 짤 때부터 손품을 많이 팔았었다. 그렇게 해서 ZWE라는 까페를 찾게 되었다.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참 좋았다.


원래는 지난주 공연을 보러 가려다가, 오늘(2025/10/12, Sun) 프로그램을 확인하고는 일정을 조정했다. 잘은 모르지만 밴드 공연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지난주 공연 출연진은 빈 언더씬의 신예 보컬이라는데, 연주 멤버가 너무 적었고 오늘 공연은 자그마치 9명인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Project Two라는 밴드 그룹이었고, 자세한 멤버 구성은 다음과 같다.


[Project Two]

Walter Fend & Dominik Fuss, trumpets; Martin Fuss & Nikolaos Afentulidis, reeds; Heinz Czadek & Markus Eckl, trombones; Geri Schuller, piano; Christoph Petschina, bass & Harry Tanschek, drums.


이하는 당일 현장에서 직접 폰에 적은 기록들이다. 먼저 그날의 현장감을 느끼고 나머지 감상을 적어야겠다.



빈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한적한 동네, 살짝 을씨년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길거리를 걸어와서 반 지하의 재즈클럽으로 들어왔다. 공연시각은 20시쯤이고 내가 처음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는 19시 5분이었다. 근데 그때는 딱 한쌍의 커플이 앉아있고 아무도 없었다. 뭔가 1시간을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견디기엔 조금 긴 시간 같이 느껴져 동네를 한 바퀴 돌고 20분쯤 후에 들어왔다. 클럽은 정말 작았다. 무대 공간이 대략 5평 정도? 팔 뻗고 누우면 남자 3명이면 가득 찰 것 같다. 관객들이 있는 공간 뒤쪽에 바텐더가 있고 이쪽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근데 분위기가 벌써 좋다. 오늘 공연은 빅밴드인데, 나이 지긋한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도착한다. 관객들도 하나둘 들어서고 이미 자리는 거의 다 차 간다. 지금 내 앞에 적어도 70은 넘으신 연주자 분이 세팅을 하고 계신데 공간이 좁아서 좀 헤매시길래, 조명 전원 연결하는 걸 도와드렸다. 솔직히 거동도 힘들어 보이시는데 연주 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된다.


8시 1분이다. 좁은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열기가 후끈하다. 연주자들은 아직 악기들을 조정 중인데 하나씩 들고 온 맥주나 음료를 놔둘 자리가 없어 바닥에 살포시 놓아둔다. 한 명은 악보 조명 전원 연결할 곳을 못 찾아서 헤매는데 아까 도와드렸던 다른 연주자가 연결한 콘센트는 멀어서 불가하고 아직 해결책을 못 찾았다. 나이 지긋한 클럽 직원분이 해결해 주신다. 옆에서 보던 연주자들이 조용히 환호한다.


거의 다 준비가 되어가고 관객석은 만석이다. 8시 10분이다. 아까 그 나이 지긋한 직원분이 사장이신 것 같다. 멤버 소개 하는데 독어라 뭔지 모르겠다. 끝나고 이제 시작이다.


분위기 장난 아니다. 아까 그 노인분이 리더다. 곡이 끝나면 간단히 설명하고 다음 노래 시작한다. 관객 중 누군가 뭐라고 한마디 하고 다들 웃는다 분위기가 좋다.


1부 끝나고 쉬는 시간이다. 아주 좋았다. 처음엔 내가 완벽히 동화되어서 즐기진 못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이 풀리고 음악에 빠져들았다. 특히 1열에 앉아있었기에 엄청 음량도 컸고 그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 거동이 불편해 보이던 노인분이 트롬본이었고 그의 손짓과 몸짓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멋졌다.


2부가 끝났다. 완전히 몰입했다. 비록 중간중간 곡 끝나고 리더가 이야기하고 관객들 웃을 때 동참하지 못해서 살짝 소외감 느꼈지만 그 분위기 자체는 너무 좋았다. 연주자 한 명씩 독주할 때 옆에 연주자들이 호응해 주는 것도 좋았다.


런던에서 로니스캇이었던가 그 째즈바도 참 좋았는데 두 번째 경험이었다. 아주 아주 좋았다.



이 날도 처음엔 영상을 찍기가 좀 눈치 보였다. 1열이라 하기도 뭐 한 게, 그냥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앉아 계셨기에 폰으로 찍는 모습 자체가 방해될 것 같았다. 근데, 옆자리 현지인 아저씨가 아주 편하게 폰으로 찍기에 살짝 용기 내어 틈틈이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참고로 공간을 보면, 왼쪽 안쪽에 피아노가 위치하고 있고 Geri Schuller가 연주했다. 그 뒤쪽 그러니까 맨 뒷줄 가운데에 Christoph Petschina가 더블베이스를 안고 있었다. 그 옆에 드럼에는 Harry Tanschek이 있었다. 그렇게 큰 악기들이 뒤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피아노 앞에 베이스 트롬본을 담당한 Markus Eckl이 있었고, 그 옆에는 리더 할아버지인 Heinz Czadek가 있었다. 이 분이 내가 몸을 기울여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오른쪽에 목관악기Reeds 두 명이 있었는데 Martin Fuss가 중간에 있었고, Nikolaos Afentulidis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들과 맨 뒷줄 사이 작은 공간에 Walter Fend와 Dominik Fuss가 트럼펫을 담당하고 있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 중 첫 번째는 처음 하인츠가 트롬본을 불 때였다. 참고로 찾아보니 하인츠는 올해 81세가 되었다. 우와우. 아까도 얘기했듯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트롬본만큼은 힘차게 불었다. 정말 노익장을 과시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고, 무지크페라인에서 봤던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생각났다. 참고로 그녀는 올해 84세이다. 우와우.


두 번째는 목관 담당 중 한 명인 마틴이 일어나서 색소폰 독주를 할 때였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그가 일어나서 색소폰을 달리는데 아주 멋지게 보였다.


그리고 2부 중간쯤 발터의 트럼펫 독주가 있었는데, 처음 시작하고 나서 앞에 앉아 있던 마틴이 살짝 "Hm~", "Ye-" 이렇게 추임새를 넣고, 옆에 있던 하인츠도 "Yeah."라고 리듬을 같이 타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참고로 베이스 트롬본과, 더블 베이스 제외하고는 모든 멤버들이 독주 파트가 있었는데 난 발터의 트럼펫 독주가 제일 좋았다. 특히 시작 전에 트럼펫에 쇠로 된 동그란 뚜껑(?) 같은 것을 끼우고 했는데 소리가 훨씬 가늘고 날카롭게 들렸다.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고, (사용하기 약간 민망한 표현이지만) Jazzy 하게 들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트럼펫 뮤트'라고 하는 기구였다.)


리듬 파트를 담당하는 피아노, 드럼, 베이스는 정말 쉬지 않고 전체 공연 내내 연주를 했던 것 같다. 피아노도 멋있고, 뚱뚱 거리는 베이스도 좋았으며, 드럼의 다채로운 소리는 분위기를 주도했다.


아, 베이스 트롬본을 부는 마르쿠스 앞에 한 명의 여성분이 계셨는데, 공연 시작 직전 오셔서 포옹을 하는 것을 보고 아내이거나 연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분은 마르쿠스의 베이스 트롬본 슬라이드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앉으셨는데, 공연 내내 사랑이 넘치는 눈으로 마르쿠스를 바라보셨다. 그 모습이 무척 따듯해 보였다.


그리고 피아노를 담당한 게리도 멋졌다. 올해 올해 57세라고 하는데 의상도 제일 멋졌다. 깔끔한 바지에 이쁜 셔츠를 입었는데, 처음 볼 때는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이 생각이 날 정도였다. 물론, 피아노도 아주 기가 막혔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말 작은 무대였고 9명의 뮤지션들은 닿을 듯 말 듯 가깝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공연하는 내내 그것이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앉거나 설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악기를 다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허락된다면 다른 것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렇게 중간의 쉬는 시간 잠깐을 제외하고 거의 2시간 가까이 공연이 이어졌다. 런던의 로니스캇 재즈 카페보다 더 좋았다. 앞으로 내게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으라면 런던에서의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빈에서의 'ZWE' 이렇게 2개의 공연이 늘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돌아가는 길, 유튜브에서 'Jazz'로 검색해서 처음 나오는 곡을 듣는다. 걸어가는 길도, 지하철 안도 모두 재즈로 가득 찬다. 재즈가 뭐지 잘 모르지만, 뭐 어떤가. 자유로움, 그 자체가 재즈 아닌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품고 숙소로 돌아간다.


P.S. 생각해 보니 오전 일정도 그냥 넘어가기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아침에는 호프부르크 예배당에서 진행하는 일요 미사를 다녀왔는데, 그 유명한 '빈소년합창단'이 연주에 참여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인파가 몰린다. 참고 정보로 빈 필하모닉 단원들과 빈 국립 오페라단 남성합창단이 같이 연주에 참여한다. 그리고 인근 왕궁 안에 있는 에페소스 박물관과 파피루스 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인상 깊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오후에는 아내와 둥이와 함께 미술사 박물관을 다시 들러서 특별 전시를 관람했다. 이미 우리는 몇 번이고 왔던 곳이지만 특별전시는 오늘 처음 보게 되었다. 미카엘리나 와우티에라는 플랑드르의 여성 화가이다. (*참고로 플랑드르는 '나라'가 아닌 벨기에 북부 지역 인근을 말한다.) 이 여성 화가를 특별 전시로 재조명하는 것은 그녀의 작품 중 상당수가 '폴 루벤스' 등 다른 남성 작가의 작품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데, 여성이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없던 환경과 사회적 인식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그렇게 당대의 남성 거장들의 작품으로 잘못 소개되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녀의 작품이 그들과 동급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만큼 그녀의 실력이 뛰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 KHM 특별전시에 있는 그녀의 작품 중 '바커스의 승리'가 있는데, 가로 4미터에 가깝고 세로도 3미터에 달한다. 이런 초대형 역사화는 여성 화가로서 전례가 없었고 특히 당시 '남성의 누드'는 남성 화가만이 그릴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얼굴을 화폭 한켠에 있는 인물에 투영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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