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갈 준비
(*글 쓰면서 들었던 노래들 :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김광석 '서른즈음에', 조덕배 '그내 내 맘에 들어오면은', 임재범 '이밤이 지나면' 등)
어제 다짐했던 대로 오늘 아침에 또 쇤부른 궁전 정원으로 향했다. U4 지하철을 타고 쇤부른에서 내린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정문 쪽 방향이 아니라 Grünbergstraße 쪽으로 나와서 Meidlinger Tor(마이드링거 문)로 들어간다. 조금만 올라가면 화장실과 급수대가 있다. 이 지점이 보통 나의 스타트 포인트가 된다. 월요일 아침 9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기에 예상했던 대로 정원은 한적했고 달리는 사람들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스타트 포인트에서 시작해서 Obeliskbrunnen(오벨리스크 분수)를 향해 천천히 달려간다. 이쪽은 궁전 정원의 오른편(동쪽) 구역이다. 참고로 궁전과 넵튠 분수 사이의 메인(?) 정원은 Great Parterre라고 하는데, 파르테르는 프랑스어에서 온 용어로 '평지에 만든 대칭 정원'을 뜻한다. 정말 궁전과 이 그레이트 파르테르, 그리고 넵튠 분수와 글로리에테까지 커다란 직사각형은 정확히 좌우 대칭을 이룬다.
내가 들어간 마이드링거 문 쪽은 이 그레이트 파르테르의 동쪽이며, 그 중앙에는 '동편 나야데 분수 Najadenbrunnen Ost'가 있다. 이 분수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단풍나무와 조경수가 이쁘게 다듬어진 산책길이 뻗어져 있다. 반대편 서편에는 '서편 나야데 분수 Najadenbrunnen West'가 있고 비슷하게 길들이 뻗어져 있는데, 서편 끝으로 가면 장미정원 Rosarium이 있고 그 너머에는 유리온실과 커다란 오랑주리 Orangerie(*과거 왕실에서 이국 과일나무인 오렌지 등을 재배하기 위한 온실)가 있다.
어쨌든 오벨리스크 분수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넵튠 분수 쪽으로 가다 보면 이상하게 폐허처럼 만들어 놓은 분수 하나가 눈에 띈다. 찾아보니 로마유적 분수 Römische Ruine라고 한다. 현재의 영광이 곧 폐허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한다. 자로 잰 듯 대칭으로 정확히 구획된 정원과 이쁘게 다듬어진 가로수들을 보다가, 진짜 폐허 같은 모습의 분수를 보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폐허더미를 뒤로 하고 넵튠 분수에 도착한다.
넵튠 분수로 가니 이제야 관광객들이 조금 보인다. 나는 지그재그 경사로를 따라 언덕 위 글로리에테로 달려 올라간다. 생각보다 경사가 높아서 작은 스텝으로 천천히 언덕을 오른다. 힘들 때는 주변 풍광이 아무리 멋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왼발 한 번, 오른발 한 번 내딛으며 가쁜 호흡을 내뱉을 뿐이다. 어제만 해도 주변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궁전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그저 푸르른 잔디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글로리에테에서 제일 높은 곳으로 가서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본다. 러너들이 올라와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곳곳에 눈에 띈다. 나도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서편 나야데 분수가 있는 구역으로 달려 내려간다.
이곳이 참 달리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이, 여기서는 깔끔하게 정돈된 탁 트인 평지길도 있고, 250년이 넘는 수령을 가진 유서 깊은 고목들이 늘어서 있는 대형 가로수길도 있다. 또 언덕 올라가는 경사로길과 그 사이사이 숲속길 등 정말 다양한 코스를 달릴 수가 있다. 작은 샛길들까지 포함한다면 코스는 거의 무한대일 것이다.
서편 구역 끝에서 위쪽으로 달려올라간다. 이쪽 가로수들은 다른 구역과 수종이 다른지 이미 낙엽이 다 떨어져서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다. 이 구역만 겨울이 먼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크게 돌아서 다시 궁전 앞으로 간다. 궁전 앞 계단에 올라 탁 트인 정원을 바라본다. 월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쇤부른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흩어질 테니,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잘 즐기자라며 한껏 숨을 들이마신다. 한참을 정원을 바라보다보니 땀이 식어 한기가 들고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얼른 숙소로 가야겠다. 가서 아내와 교대하여 둥이를 돌보고, 아내가 돌아오면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야지. 쇤부른 궁전 정원의 달리기가 자연스러워지는 이 순간,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미뤄놨던, 따라잡아야 할 현실들이 나를 기다린다. 그래도 그건 가서 생각할 문제이니, 그저 하나씩 지금 내 앞에 일들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