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엇인가?

[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8]

by 그냥 하자
20250830_165433.jpg 2025년 여름, 할아버지와 손주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으른들의 대화가 하고 싶어." 아, 오해는 마시라. 그 으른들이 그 으른들이 아니니까. 아무리 필로톡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대화의 89.9%는 둥이 육아 관련된 것이다. 5%쯤 이사 관련, 5%쯤이 뭐 먹지? 나머지 0.1%가 그 외 모든 것들, 정도로 분류하면 적당하리라. 분유 몇 그램 이거 말고, 회사와 일, 미래와 인생, 가끔은 이런 이야기도 좀 진득하게 나누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마침 형 누나들 본지도 좀 됐고, 둥이 귀염뿜뿜도 자랑할 겸 며칠 전 형 누나들과 저녁을 먹었다.


둥이와도 한참을 놀아주고, 육퇴를 한 다음에 우리는 간만에 동네 이자까야에서 으른들의 시간을 가졌다. 아내와 누님들은 하이볼로, 나와 형은 시원한 소주를 메인으로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눴더랬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큰누님에 대한 이야기, 건강검진 내시경 마취 주사의 황홀함에 대한 이야기, 우리 회사의 미래와 그 사이 버둥거리는 나의 이야기 등등. 그러다 어느새 40대가 넘어버린 우리의 이야기로 연결되고(아, 참고로 아내는 아직 30대다.) 노년기에 접어드신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신 고모부 이야기가 나왔다. 형은 말했다. (*참고로 MBTI 결과로 대문자 T인 사람이다.) '멀리 여행을 가신 거라고 생각해', '유학 간 자식이 부모 자주 못 보는 것과 크게 다를 거 없어', '내가 시후(가명, 형의 아들) 어릴 때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T와 F 사이를 오가는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쉽지 않은 관점이었는데, 한편으론 부러웠다. '죽음'을 바라보는 형의 시선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없다. 그냥 나도 그처럼 조금은 더 '가볍게' 죽음을 다루고 싶었다. 나의 감정을 말이다.


몇 년 전 일이다. 아마 여느 날처럼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때였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xx야, 느그 아부지 건강검진 하싯는데, 췌장암일 수도 있다 칸다야. 우야노. 느그 아부지가 연락하지 말라캤는데, 그래도 니한테 말은 해야지 싶어서 했다." "머라카노, 진정하고 천천히 좀 말해보이소." 서둘러 이어폰을 끼고 폰으로 췌장암을 검색했다.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5년 생존율 10% 수준~~고령 남성에서 발생률 높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엄마가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보다 떨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날 더 무섭게 했다. 다행히 며칠 후에 있었던 추가 검진 결과, 암은 아니고 단순 종양이었으며, 아버지께서는 제거 수술을 받고 완치가 되셨다. 이게 대략 7~8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가 쪽은 다들 걱정이 많으셨다. 할머니가 그러셨고, 아버지도, 고모도 그러시다. 특히나 아버지께선 세상 무뚝뚝하다는 경상도 남자이시니 겉으로는 표현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그 많은 걱정과 화, 스트레스를 삭히고 삭히고, 또 삭히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물론 스트레스가 암 발병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켜켜이 쌓인 굽이굽이마다의 걱정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리란 건 불 보듯 뻔한 것 아닐까.


한 달 전쯤 부모님께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두 분 다 연세가 있으시니 늘 달고 사는 지병들은 있으셨지만 지난 몇 년 간은 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께 또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이번에는 신장이었다. 다행히 사이즈는 크지 않지만 정밀 검진이 필요했다. 상급 종합병원으로 전원 되었고, 걱정을 한가득 어깨에 지고서 부모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버지께서는 평생 그러하셨듯 굳어진 얼굴을 하고 계셨다. 엄마도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긴장이 온몸 가득 흐르고 있었다.


영상자료와 검진 결과 등 서류를 살펴보신 교수님의 입에서 "신장암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부모님은 두 분 다 충격으로 말을 꺼내지를 못 하셨다. 과거 '암'은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의술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은 그 누구라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교수님의 의견을 정리해 보면, 우선 불행 중 다행으로 비교적 초기에 암을 발견을 한 것, 그리고 해당 암은 조기 진료 시 5년 생존율이 80~90%가 될 정도로 높은 점, 그리고 전이만 없다면 방사선 등 항암 치료는 없어도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린 상의하에 바로 수술 날짜를 잡기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충격받은 마음과 피곤해진 몸을 KTX에 싣고 부모님께선 곧장 집으로 내려가셨다.


일흔을 넘기신 아버지께선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소년과 청년, 중년과 장년을 넘어 이제 노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는 나이. 길면 20년 남짓 남은 생, 아버지에게 지금 이 순간들은 어떤 의미일까.


친가의 핏줄엔 남자가 귀했다.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독자인 아버지를 더욱 애틋하게 아끼셨다. 아버지께선 라디오를 즐겨 듣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중학생 시절을 보내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에선 손이 귀한 자식이라도 대학을 선뜻 보내기 어려웠으리라. 공고로 진학을 하고 벌이는 크지 않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의 연애사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엄마와는 선을 보고 만나셨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자식을 가지게 된다. 그 시절 남자들이 그렇듯, 육아는 엄마의 몫이었고,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가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평생 수행하셨다.


아버지도 그 시절의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밥 맛있게 무따'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 엄마에게 건네지 못하고 사셨다. 대신 '정직과 성실'이라는 가훈은 철저히 지키셨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셨으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직하게 삶을 가꾸어 오셨다. 당신의 삶으로써 당신의 말을 증명해 내셨다. 손재주가 좋으셔서 이것저것 만들기도 많이 하셨고, 이젠 한국화를 전문으로 그림을 그리신다. 뒤늦게 본 손녀딸의 재롱에는 경상도 싸나이인 아버지도 무장해제가 되신다. 사진 좀 더 보내라고 은근히 보채기도 하신다.


행복하셨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꼭 행복해야 하는 것일까? 삶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죽음이 무척이나 두렵다. 과거에는 훨씬 그 두려움이 컸는데, 어느 순간 '죽음이란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라고 생각한 이후, 전보다는 조금 '덜' 무서워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죽음이 무섭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평생 다시 못 보는 인연도 있겠지만, 볼 수 있는데 못(안) 보는 것과 볼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지 않나. 그런데, 실상 그 '두려움'은 누굴 위한 걸까? 돌아가신 분은 그냥 돌아가신 것이다. 그냥 그걸로 끝인 것이니, '두려움'이란 감정은 그냥 나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두려움을 느끼는가, 왜 존재의 소멸이 무서운 것일까? 인생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렇다는 현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저 먼 우주에서 바라본 우리 지구를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지구'도 참 보잘것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무어 큰 의미가 있으랴.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태어났으니 그냥 살아야 하는 것인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된다.


유시민 작가가 말했다. "아무 의미도 주어져 있지 않아요, 우리 인생에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 거거든요."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지? 의미 없어요. 그런데, 내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이거는 각자의 답이 있는 문제잖아요.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나의 자식에게로. 아버지께 자식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에게 내 자식은 어떤 의미인가. 또다시 생각이 많아지려 한다. 바로 위에 정답을 써 놓고는. 의미를 '발굴'하려 하지 말자. 의미는 '부여'하는 것이다. 아버지께 내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전화 한번 더 드리고, 영통으로 귀여운 손주 재롱 한번 더 보여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 더 자주 얼굴 마주 보고 식사 한번 하는 것이다. 나의 둥이는 그 어떤 '의미'가 있을 필요조차 없는 존재이다. 그 존재가 그 의미이다. 존재함으로써 모든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이미 설명이 된 것이다. 울면 달려가서 안아주고, 빵긋빵긋 웃을 수 있게 자식 앞에서 재롱 피우는 부모가 되자. 의미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삶이란 단어는 '살다'라는 어근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삶이란 '사는 것'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하면서 살자. 당장 그렇게 하기 쉽진 않지만 조금씩 더 노력하자. 조금 더 웃자. 그 정도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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