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먹이기 vs 이유식 만들기

[40대 공기업 과장의 부부 동시 육아휴직 일지 - 17]

by 그냥 하자
"암냐 암냐 암~"

아내와 나는 공동육아 휴직 중이다. 앞선 글들에서 종종 적었듯이 초반에 우리는 정말 '공동'으로 육아를 했다. 100일쯤 까지는 둥이가 울면 새벽에도 같이 깼다. 첫 아이이고 기쁨과 설렘도 컸지만 두려움, 걱정 또한 무시 못할 정도로 컸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효율성'은 의미가 없는 단어였다. 꼬물대는 아기를 돌보는 것은 행복과 고통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위해 희생한 것들도 있겠지만 나는 많은 남자들이, 아빠들이 해보지 못하는 경험을 했고, 또 여전히 하고 있으며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러다 점점 아기의 개월수가 늘어가고 아내와 같이 해외에서 육아도 해 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사실 이젠 웬만큼 해볼 만한 건 다 해본 것 같다. 우리 둥이는 차도 탔고, KTX도 탔고, 비행기도 탔다. 집에서도 잤고, 리조트에서도 잤고, 비행기에서도 잤고, 외국의 어느 집에서도 잤다. 우리는 이제 둥이가 응가를 언제 어디서 해도 대응할 수 있다. 기저귀가 없는 상황도 겪어봤고, 분유는 준비했는데 젖병이 없는 상황도 겪어봤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우리는 방법을 찾아냈고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으로 육아를 하며 많은 스킬을 터득했고, 경험치를 쌓았다.


육아 레벨은 둘 다 비슷하게 상승했는데, 경험치를 쌓는 방식은 둘이 사뭇 달랐다. 게임으로 치면 사냥으로 레벨업을 할 수도 있고 물건 사고팔기 같은 상업가 스킬을 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초급 사냥꾼에서 숙련된 헌터로, 아내는 초급 상인에서 트레이더 마스터로 레벨업을 한 격이다.


나는 주요 스킬로는 전반적인 환경 및 생활 관리, 그리고 아기와 관련해서는 실무적인 케어에 특화되어 있고, 특수 능력으로는 아기에게 이야기하기, 책 읽어주기, 노래 들려주기가 있다.


환경/생활 관리는 주로 설거지(+음쓰 뒤처리), 화장실 청소(+변기 청소), 빨래 개기(특히 수건 개기 좋아함), 분리수거 정리 및 버리기 등이다. 아기 실무 케어는 기저귀 갈기, 이유식 및 분유 먹이기다. 물론 이런 능력들은 아내도 일정 레벨에 올라 있지만 내 스킬이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스킬 능력치 평가는 상호 공동으로 진행하였...으나, 나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수 능력은 주로 아기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벽에 걸린 한글 자음모음 표를 보며 단어를 읽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아기책이나 어른책을 가리지 않고 낭독을 해준다. 그리고 눈을 마주 치 ― 려고 노력하 ― 며 끝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둥이야 오늘은 몇 월 며칠이야. 그리고 지금 시각은 몇 시 몇 분이야. 오늘 바깥에 날씨는 이러이러하단다. 이제 계절이 겨울에 접어들고 있어요. 겨울이 뭐냐고? 겨울은 공기가 차가워지고 나무에 잎이 다 떨어지는 계절이고 입으로 '호'하고 말하면 하얀 김이 나오는 시기를 말한단다. 나무가 뭐냐고? 나무는 ~~'이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간다. 당연히 지금 둥이가 이걸 이해할 시기는 아니지만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물론 둥이에게도 무의식중에 다방면으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노래를 들려주는 것은 둥이의 감각 발달에 도움이 됨과 동시에, 나의 '스트레스 해소'라는 부가적인 효과도 동반한다.(내가 노래를 부를 때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것으로 넘어가야겠다.)


아내는 일단 요리하기, 그리고 아기의 건강 관리가 주요 스킬이며, 부가 스킬로 동물 성대모사를 하며 둥이 웃기기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특수능력이 있는데 바로 '둥이 강성울음 터져서 남편 멘탈 털렸을 때 구세주로 나타나기'이며 이미 만렙(제일 높은 레벨)을 찍었다.


아내의 주요 스킬 중 첫 번째로 언급한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이 브런치북 10화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 한다.

이 시점에서 아내의 요리 실력에 대해 감히 한마디 평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 '창의력이 넘쳐흐른다'로 정리하면 될 듯하다. 물론 아내도 레시피를 참고한다. ~~ 한데,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본인의 넘치는 창의력을 가두어 둘 수가 없는 듯하다. 하여서 최종 완성되는 작품들은 살짝 그 족보가 좀 모호한 친구들일 때가 많다. 물론, 그래도 맛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엄마표 된장찌개 빼고)
*10화 '자기야, 애호박전 또 해줘' (https://brunch.co.kr/@justdoanddo/26) 참고


그리고 아기의 건강 관리 관련해서 제일 기본이며 강력한 스킬은 둥이 이유식 만들기다. 이유식에 관해서는 아내의 주도로 계획을 잡고 만들기가 진행된다. 나는 가끔 보조 역할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아내가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 지금은 일 2회를 먹이고 있는데, 곧 일 3회 이유식 스케줄로 돌입해야 하기에 살짝 긴장을 하고 있다! 이것 말고도 아내는 특히 '재미난 목소리 만들어내서 둥이 웃기기' 스킬이 강력한데, 특히 손인형(인형 속에 손을 집어넣어서 표정 만들고 손발 움직이는 것) 가지고 놀아주면 둥이의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외에도 로션 바르기나 상황에 맞는 옷 입히기, 세수하고 머리 감기기는 아내의 고유 스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수능력, '남편 멘탈 털렸을 때 둥이 달래기'이다. 사실 요 파트는 아내와 의견 합치가 안 되는 부분이 조금 있는데, 나는 전반적인 관점에서 '밤에 잠재우기' 스킬은 내가 더 평균 능력치가 높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이다. 이 것은 다툼의 여지가 조금 있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둥이의 강성울음이 터지면 솔직히 나는 거의 백전백패이고, 나의 구세주, 지상최고 자애자비하신 아내느님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사실 내가 잠재우고 있었는데 둥이가 너무 울었다. 내가 정신줄을 놓으려고 할 때쯤 이미 베이비 캠으로 보고 있던 아내가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게서 둥이를 받아서 안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이 스킬만큼은 이론의 여지없이 아내가 독보적 레벨을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나와 아내는 각자의 성향에 맞는 스킬들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고 있으며 각자 특수능력을 하나씩 장착하였고 더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둥이 강성울음에 버티기' 능력에 스킬 포인트를 좀 더 쏟아부어야겠다. 아무리 아내의 특수 능력으로 상황을 마무리한다 하더라도, 매번 그럴 수는 없다. 나도 단독으로 이벤트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유식 만들기' 파트는 이미 아내가 잘하고 있으니 나는 잘 먹이고 잘 치우는 쪽으로 능력치를 개발하는 것이 팀플 관점에서 더 시너지가 날 것 같다.


지난 화에서도 적었지만 요즘은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하려고 노력한다. 아내와 팀을 짜서 공동으로 이 게임에 투입된 지금이 내게는 기적이다. 우리 둘의 능력치를 조화롭게 개발하고, 우리 둥이를 잘 키워봐야겠다. 곧 둥이도 우리 팀으로 합류해서 이 세상이라는 게임을 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보다 더 재미나게 같이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때는 곧 올 것이다. 그전에 지금은 이 순간 아내와의 팀플을 더 잘하기 위해 하루하루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능력치를 개발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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