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말라버린 낙엽 몇 잎만 위태롭게 흔들리는 계절이었다. 사람들이 역세권보다 붕세권을 외쳐대는 겨울이 오기 직전, 대형 식품 회사 <K- 스마트 푸드>는 로봇이 운영하는 무인 붕어빵 가게를 론칭했다.
음료 자판기 두 개 정도 크기의 점포는 스테인리스 로봇팔로 구성되어 있었고, 점포에 장착된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했다. 고객이 화면을 눌러 주문하면 스테인리스 로봇 팔이 붕어빵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방식은 정통 붕어빵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적정 온도로 설정된 틀에서 한 번의 회전만으로 구워냈기에, 사람이 일일이 붕어빵 틀을 돌리고 뒤집어가며 확인하는 기존 방식보다 빨랐다.
매끄럽게 움직이는 로봇 팔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노릇노릇 구워진 붕어빵이 봉투에 담겼다. 붕어 그림이 그려진 하얀 종이 포장까지 완벽했다.
바삭한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자 달콤한 팥소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가게를 이용한 고객은 로봇이 붕어빵도 잘 만든다며 껄껄 웃으며 지나갔다. 무인 붕어빵 가게는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었다.
<K-스마트푸드>의 식품 연구원들은 최고의 맛을 위해 전국 유명한 붕어빵집을 모두 분석했다. 그렇게 집계된 데이터를 통해 반죽과 속 재료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회사는 붕어빵 판매 그래프를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맛을 선별했고 월별로 메뉴에 반영했다. 게다가 붕어빵 판매의 비수기라 할 수 있는 더운 계절을 겨냥해 ‘팥빙수 붕어빵’과 ‘아이스크림 붕어빵’등을 메뉴에 넣어 소비자들 선택에 폭을 넓혔다.
그 해 겨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명동 1호점에서 시작한 무인 붕어빵 가게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제주 10호점에 이르며 일 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다시 겨울, 붕어빵 성수기 아니던가! 이대로 호시절만 있을 것처럼 무인 붕어빵 판매 그래프는 날마다 수직으로 상승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일 몰아치던 눈보라가 잠잠해며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붕어빵 판매 그래프도 꽁꽁 얼어붙은 듯 며칠 동안 밋밋한 수평선만 그려댔다. 회사 관계자들이 매출 정체기의 원인을 매서운 날씨로 단정 지던 찰나 그날을 기점으로 판매 그래프가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겠는가!
<K-스마트푸드> 마케팅팀은 부랴부랴 분석에 들어갔다. 전국 각 지점별로 세세하게 파악하던 중, 눈에 띄게 판매량이 줄고 있는 <행복 마을점>을 발견하게 된다. 마케팅팀은 원인분석을 위해 해당 지점으로 급히 직원을 파견했다.
K푸드 직원이 행복 마을에 도착했을 때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날씨 탓인지 무인 붕어빵 점포에는 개미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터치스크린 화면도 로봇팔도 이상 없이 잘 작동했다. 시스템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주변 상권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직원은 점퍼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인근 상가를 둘러보러 나갔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나가는데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매서운 칼바람에 눈까지 펑펑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라도 났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할머니가 붕어빵을 팔고 있는 작은 수레였다. 오밀조밀 몰려있는 사람들 틈으로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아, 다이어트 걱정할 거면 뭣 하러 처먹냐?
그냥 먹고 한번 뛰어!”
할머니의 거친 말이 사람들에게 쏟아졌다.
“천천히들 먹어! 둘이 먹다 둘 다 뒈져도 난 몰라!”
“아이, 할머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그거 아녜요? 킥킥킥.”
욕쟁이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한겨울 추위가 무색하게 붕어빵 수레 주변 공기는 후끈하기만 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K푸드 직원은 뭐가 문제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무인 붕어빵 가게에 다시 들어섰을 때, 그 안은 처음보다 더 냉기가 도는 것 같았다. 겨울이 온통 들어앉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