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대여 2
모순이 넘치는 하루
붉은 장미가 아파트 담장을 수문장처럼 병렬했다. 단단한 철제 펜스에 생명을 불어넣기라도 하듯 크고 작은 꽃송이들이 주인공처럼 경쟁한다.
어제의 빗줄기가 꽃에 깨끗함을 더했다. 하늘도 씻고 지붕도 씻고 꽃가루로 덮어선 내차도 씻겼다. 옷 속에 감춰진 마음도 씻겼을까 새 옷으로 갈아입어 본다. 어제는 내리는 비에 얼굴이라도 씻겨 볼 양 우산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러나 주위를 의식했다. 퇴근 무렵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아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남구의 모 씨, 슬리퍼를 신은 000을 찾습니다.'라며 불현듯 날아드는 문자처럼 사람들이 두리번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뜻 나서지 못했다. 아주 작은 일에도 민감한 용기를 부른다.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를 맞아보는 것으로 용기를 대신했다. 때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비둘기가 부럽다. 내게는 그런 낭창함이 때로는 필요하다. 어제의 비가 오늘을 깨끗하게 만드는 토요일 낮이다.
뉴스에선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강남의 한 옥상에서 투신하려 했다고 난리다. 죽은 사람도 죽인 사람도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의 실패를 사랑에 묶으려 한 것인지도 모를 그를 동정해도 괜찮을까 자문해 본다. 자신으로 인해 한 생명이 사라졌는데 그런데도 어쩌면 그가 비를 맞은 비둘기처럼 갈 곳 없는 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가급 적이면 긍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살아가기 위한 방식일 테다. 그런데도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은 신만이 용서할 수 있는 일일 테다. 일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 그때 또 다른 부고가 휴대전화 알림음을 타고 나타난다.
오늘 만해도 벌써 네 번째다. 어린이날이 끼인 연휴를 맞아 모바일 부고가 네 건이나 더 날아왔다. 연휴를 맞았다고 신도 외출을 했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의 시련이라도 당해 심한 열병 속에 갇혀버렸나? 축하의 메시지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부고의 메시지가 더 많이 날아오는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심하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곧이어 있는 연휴가 아니던가.
어린이날은 아이들에게 있어 더없이 설레고 기쁜 날이다. 모든 잘못은 용서되고 자잘한 잘못마저도 부모의 사랑에 흔적 없이 묻히는 그런 날이다. 그야말로 오늘의 주인공, 내가 주인공인 날이다. 어버이날은 또 어떤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조차도 줄지어 찾아와 용돈과 선물을 안겨 주는 그런 날이 아니던가. 오죽하면 보고 싶은 자식을 마음껏 볼 수 있으니 매일이 어버이날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도 생기지 않았던가. 머리 굵은 자녀가 직장으로 출가로 서울로, 위쪽 지방으로 자리를 잡고 부모는 집에 남아 자식들만을 기다린다. 멀리 있어 자주 오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오미가미 차비 또한 만만치 않은지라 보고 싶어도 ‘오너라’ 말 못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가 유일하게 아이들처럼 응석을 부려도 되는 날, 눈치 보지 않고 자식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어버이날이다. 아이들도 어버이들도 행복한 날이 바로 이번 연휴가 아니던가. 그런데 느닷없는 부고는 높은 산 출렁다리처럼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다.
가장 아찔한 것은 어제까지도 카카오톡으로 자신의 근황을 알렸던 지인의 죽음이다. 퇴직 후 새로운 직장을 얻어 첫 월급을 탔다며 인증사진을 날리던 그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그에게 단톡방 지인들은 춤추는 이모티콘을 날리며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나이에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부심을 알기에 그의 출발이 우리의 출발 인양 감격을 한 것이다. 그런 그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단다. 장난치고는 너무 심한 장난 같아 나는 곧바로 전화로 확인했다. 그의 노모가 아니고 그 자신의 죽음이 맞는지를.
신은 그렇게 그를 데려갔고 남겨진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부검까지 의뢰했다고 한다. 평소 유달리 자신의 건강을 챙겨 오던 터라 심장마비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이다. 토요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고 그를 영원히 보내는 장례식날은 하필이면 그의 62번째 생일이었다.
문상을 마친 후 아들을 기다리며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을 마저 읽었다. 독서 모임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한 <모순>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던 참이라 마지막 챕터를 남겨둔 상태였다. 평생을 고난과 역경에 시달린 주인공의 어머니가 감옥에 간 아들의 수발을 듦과 동시에 치매에 걸린 남편의 수발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어머니와 쌍둥이였던 주인공의 이모는 모든 것을 다 갖춘 편안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다. 다정한 남편에 자식들도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는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자살을 하게 된다. 작가는 두 여인의 삶을 통해 인생의 모순을 대비시킨다. 삶은 모순처럼 허점투성이지만 누구의 삶이 올바르고 덜 힘든 것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나는 오늘 그 모순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만 같아 책장을 덮는 순간 눈물이 일었다.
나는 모순 같은 나의 하루를 살며 어버이날이라 경기도에서 대구로 내려온 아들을 맞는다. 가뜩이나 야윈 아들의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돈을 번다고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빼빼 마른 체형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도 얼굴이 야위었다. 가까이 있으면 따뜻한 밥이라도 챙겨주련만 멀리 있으니 마음만 애탄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모순처럼 흐르기만 한다. 인생은 제멋대로이고 정답이 없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허겁지겁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이 모순인지 알지 못한다. 펜스에 핀 장미꽃도 모이를 먹는 비둘기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그것을 때때로 느끼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둔 휴일을 보낸다. 모순이 넘치는 하루, 커피 한잔을 마시며 햇살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