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언어들
7월의 마지막 주 여름이다. 뉴질랜드를 여행하기 위해 인천 공항을 찾았다. 휴가 기간 동안 각박한 도시를 떠나 푸른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 양 떼처럼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희고 긴 구름의 나라에서 구름처럼 떠돌고 싶었다고나 할까.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뉴질랜드로 출발하기 전날에야 부랴부랴 짐을 싸다 보니 빠진 짐들이 더러 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는 약국부터 들렀다. 비상 상비약을 샀다. 휴지와 약간의 간식도 샀다. 현지식을 꺼리는 남편을 위해 김치를 가지고 가고 싶었으나 뉴질랜드는 음식물 반입이 어렵다고 해 아쉽게도 포기했다.
수속 시간이 빠듯한데도 굳이 남편은 공항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의 느긋한 성격과 나의 동동거리는 성격이 시작부터 충돌 직전이었으나 나도 기내식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뉴질랜드까지 도착하려면 비행기로 11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하니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였다.
짐을 부치려고 수속을 하는데 남편이 난감해한다. 비행기가 만석이라 두 자리만 남았는데 부부간에 서로 떨어진 자리라는 것이다. 남편은 비행기 날개 근처이고 나는 꼬리 부분이다. 직원도 난감해하며 왜 이제 왔냐며 오히려 우리를 탓한다. 뉴질랜드까지 열몇 시간을 말동무 하나 없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밀폐 공포증도 올라오는데 비행기 안에서 소리라도 지른다면 모두가 난처해할 것이다. 남편도 나의 마음을 아는지 직원에게 통사정한다. 직원은 탑승 게이트에 가서 상황을 얘기해 보라며 자신도 이리저리 알아보겠노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구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오클랜드로 향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김치찌개 때문이라며 혼잣말하듯 하니 이것 또한 좋은 경험이라며 남편은 No, problem을 외친다.
오클랜드 공항을 경유해 우리는 뉴질랜드 남섬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오래 탄 탓인지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다. 두 다리도 땅을 딛고 서고 싶어 안달이 났다. 비행기 기장들이나 스튜어디스들은 어떻게 그 많은 비행을 견딜까.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이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걷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새들도 때로는 날개를 접고 땅에 내려앉아 총총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버스에 오르자 함께 비행기를 탔던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패키지여행으로 한국에서는 각자 따로와 여기서 일행이 되었다. 쉰이 조금 넘어 보이는 한국인 가이드가 자기소개를 한다.
가이드는 오래전 이민 왔다고 했다. 남편과 둘이 지내고 있는데 자식들도 이미 현지인을 만나 분가했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 고향이 그립고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어 가이드를 한다고 했다. 관광객을 만나는 날이면 온종일 한국말을 할 수 있어 수다를 떨 듯 즐겁다고 한다. 한국말을 마음껏 하고 나면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진심이 묻어난다. 언어는 타국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인가 보다. 우리나라에 관한 좋은 뉴스라도 접하는 날이면 어깨가 으쓱해진다며 애국심은 외국에 살 때 더 간절한 것 같다며 세종대왕을 사랑한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세종대왕 이야기가 나오자 뉴질랜드 속 또 하나의 조선을 보는듯하여 기분이 묘했다.
뉴질랜드 목장은 너무 넓어 목장 주인이 비행기로 살핀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차창 밖으로 양 떼 소 떼의 무리가 끝없이 펼쳐졌다. 한 계절 동안 풀이 자라도록 구역을 나누어 방목해 키우는 소나 양들은 스트레스 없이 먹고 자고 놀고 있었다. 사람도 저렇게 자란다면 병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천연덕스럽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들의 모습은 정지된 시간처럼 편안한 휴식을 주었다. 내 속에 자리 잡았던 걱정과 불안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오롯이 뉴질랜드 대자연의 품속에서 나도 잠시 풀을 뜯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지붕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았다. ‘우리 집에 빈방이 있으니 하룻밤 묵고 가세요.’라는 뜻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뉴질랜드 관습이라고 한다. 워낙 집이 띄엄띄엄 있어 사람이 귀한 곳이니 지나가는 손님이라도 반가운 것이리라. 적적함을 달래 보려는 토착민의 마음도 엿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 남을 먼저 대접하는 이 나라 국민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나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베란다에 노란 손수건이라도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는 또 하나의 깃발이 펄럭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태극기를 단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한국에서 데려온 진돗개 한 마리가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반겼다. 한국인을 위해 식당을 열었다는 주인 부부는 고추장 불고기와 김치로 점심상을 차려 주었다. 한국에서 김치를 실은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김치 줄이 길게 늘어선다며 여기서는 토종 배추가 귀하다고 해 김치 한 조각도 귀하게 먹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진돗개와 식당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눈이 움푹 팬 식당 주인이 마당에 서서 우리를 배웅했다. 나는 그가 큰 바위 얼굴처럼 그리움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식당을 나와 다음 장소로 여행을 계속했다. 잊고 있었던 내 안의 고마움이 초록의 잔디처럼 푸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