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9%

by 푸른 노을

1%, 99%




우리 집에는 99% 부족한 나와 1% 부족한 남편이 살고 있다. 99% 부족한 나는 때로는 아이들한테도 주눅이 든다.


며칠 전에는 딸이 싱크대 물막이를 주문해 설치해 주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물이 훨씬 덜 튀어 옷이 젖지 않았다. 신기하다며 어디서 샀는지 딸에게 물었더니 한마디 쏘아붙인다. 인터넷에도 있고 마트에도 있는 것을 주부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타박한다.

그렇다. 나는 집안일에 서툴다. 집안 곳곳에는 언제나 물건들이 쌓여있다. 정리를 한다고 해도 여기저기 살림들이 줄을 못 맞추고 삐져나온다. 눈에 보이는 곳에 두어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습관에 가세했다.

여태 집을 사고 이사를 해도 집들이 한번 변변하게 한 적이 없다. 손님을 불러 대접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밥은 식당에서 먹고 차(茶)만 집에서 마신다. 그것도 주말 내내 집 청소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잔소리하다 아예 포기를 했는지 시간이 날 때면 직접 청소를 한다. 냄비도 손수 닦는다.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냄비를 닦고서는 조교처럼 시범을 보이며 요령을 설명한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나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도 부족하다. 남들 다 아는 음료수 이름도 몇 년이 지나야 이름과 맛을 기억한다. 이름도 모른 채 유행에서 사라지는 것들도 허다하다. 기계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새로운 전자제품이 들어오면 남편이 몇 번이나 사용법을 가르쳐주어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사를 잠근다는 것이 한없이 풀고 있을 때도 많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새것으로 바꾸면 걸지도 받지도 못한 채 며칠이 흐른다. 보다 못한 아들이 기본적인 사용법을 일러 준다.

낯선 사무실에서는 더욱 당황스럽다. 볼일을 본 후 밖으로 나오는 출입구를 찾지 못해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 본 후에야 입구를 찾는다. 사장실이며 남자 화장실도 예외는 못 된다. 나가는 문을 찾는다며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젖히는 여자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런 내가 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가족들은 오죽할까.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고, 99% 부족한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태초에 신이 남녀를 만든 이유가 나와 같은 사람 때문이라며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동물도 암수가 있는 것은 서로 도우라는 의미이고, 식물도 저 혼자는 꽃을 피울 수 없다. 부부가 온전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99% 부족한 사람과 1% 부족한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며 궤변을 늘어놓으면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넘어가 준다. 사실은 잘난척하는 그의 1%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운전도 잘하고 기계도 잘 다루지만 중요한 순간에 무엇인가를 잊어버린다. 휴대전화기를 잊어버리는 것은 기본이며 늦잠 잔 출근 시간에 자동차 키를 두고 가 되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갑을 두고 가 시장에서든 은행에서든 허탕 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쯤 되면 99%의 내가 혜성처럼 등장한다. 목소리도 당당히 큰소리치며 열쇠를 들고 가거나 지갑을 가져다준다. 99% 부족한 내가 1% 부족한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더러는 그나 나나 별반 차이가 없다며 거들먹거릴 때도 있다. 그는 허허 웃어버리고 만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99% 부족한 사람과 1% 부족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것 같다. 그가 실수할 때 나의 행동이 빛나 보이고 내가 실수할 때 그가 돋보이는 것처럼 누군가가 부족할 때 누군가는 돋보인다. 1% 부족할 때 누군가는 99%가 되고 99% 부족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1%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만 싫지만은 않다. 그들에게 나는 99% 부족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함께 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들이 없으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혼자 살아갈 것인가? 그들 또한 나로 인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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