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발재 단풍

내 삶의 언어들

by 푸른 노을

보발재 단풍



함께 공부하는 지인들과 단풍 구경을 갔다. 드라이브 코스이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단양 보발재에 올랐는데 때마침 붉은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삶의 절정이 지금 순간인 듯 우리는 단풍에 홀려 감탄사를 연발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는 도저히 담아내지 못할 고운 단풍 색에 눈이 부셨다. 화가라면 붓을 빼들어 당장이라도 화폭에 담았을 것이며 사진작가라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우리 또한 각자의 마음에 단풍을 새겼다. 나는 추억만큼 오래된 기억 저장고에 단풍을 담았다. 단풍은 바로 옆에서도 멀리서도 사람들을 물들이며 만산홍엽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오묘한 단풍에도 이유가 있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양분과 물을 스스로 차단한다. 물과 양분이 차단된 나뭇잎은 광합성을 하던 녹색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본래의 색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것이 단풍이다. 단풍 중에서도 붉은색의 단풍은 안토시아닌과 당이 결합해 일교차가 클수록 붉고 맑은 단풍 색을 만들어낸다. 보발재의 단풍이 선명하고 맑은 색을 가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단풍은 때가 되면 스스로를 낙엽으로 만들어 겨울 준비를 한다. 화려한 색으로 최고의 순간에 인간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가 소임을 다하면 마른 잎으로 떨어진다. 생존 본능에 따라 잎을 떨구는 것이겠지만 죽음이 자신의 몸을 살리는 길임을 안다. 자신을 태워 새로운 형제를 만들어 내는 원소의 왕 탄소 원자 같다. 탄소는 연소되면 시커먼 숯이 되거나 다이몬드가 된다. 압력과 고온을 견뎌낸 탄소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보석 다이아몬드로 다시 탄생한다.

나는 단풍처럼 곱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간 지인을 떠 올린다. 산을 좋아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유튜브로도 알려 주던 사람이다. 지인은 경찰관이었다. 경찰이라는 신분이 죽음을 가장 근접해서 보는 어려운 직업이겠지만 그는 늘 밝은 사람이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아픔이 있었지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급성 신우신염으로 별이 되었다고 했다. 단풍이 들기 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별이 되기 일주일 전만 해도 산에 올라 나무와 약초들을 소개했었다.

그는 해마다 자신이 딴 송이버섯을 친구들에게 보냈다. 정작 자신은 멀리 있어 함께하지도 못하면서 송이버섯을 보내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눠먹기를 바랐다. 우리는 그가 보내준 송이버섯에 소고기를 구워 즐겁게 먹었다. 더 많은 것을 보내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를 보내고 친구들은 아직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다. 그의 남겨진 가족들은 오죽할까.

산을 보니 그가 떠오른다. 단풍도 들기 전 낙엽이 되어 버린 그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땅속 어딘가에서 침묵하고 있을까. 아직은 흙이 되어 때를 보고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좋아하는 산에 나무가 되어 자리를 잡을 것이다. 고운 단풍이 되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웃어 줄 것이라 여긴다. 그는 분명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삶을 살았노라 그를 추모한다.


보발재 정상을 지나니 굽은 산길이 허리를 드러낸다. 단풍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집으로 향한다.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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