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를 다녀오며

내 삶의 언어들

by 푸른 노을

선운사를 다녀오며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필이면 라디오에서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그림 같은 구름이 흩어져 있다. 계절마다 이름이 바뀐다는 고창. 가을이면 하늘이 드높아 ‘고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천년고찰 선운사가 있는 고창으로 말을 타듯 차를 몰았다.


선운사는 예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시인들의 시상이 담겨 있는 동백 숲이나 용이 드나든다는 용담굴에 있는 대장금 어머니의 돌무덤 촬영지는 둘러보지도 못했었다. 시야가 좁고 여유가 없는 탓이다. 대웅전과 그 주변 산새의 기운만 허겁지겁 느끼고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지장보살의 영험한 기도발이라도 얻고 싶었던지 보물로 지정된 자료들을 미리 머리에 새기고 갔다. 산사의 입구에 들어서자 머릿속에 새긴 것들은 나뭇잎처럼 흩어졌다. 하루 만에 선운사를 둘러보겠다는 마음은 부질없고 그저 발걸음이 머무는 곳으로 따라 보기로 했다.

대웅전 앞의 만세루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며 차를 나누고 있다. 만세루의 굽은 나무들과 색 바랜 누각은 요즘의 지친 나를 보는듯하여 소외당할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보물로 지정받았다는 소식에 눈물이 났다. 쓸모없다고 버려진 그것에도 쓰임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듯하여 마음빛이 반짝거렸다. 좋은 나무는 더 좋은 곳을 향하게 내어 주고 자투리 남은 것끼리 붙이고 이어 만들었다는 만세루. 누구의 생각인지 참 장하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분명 그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준 노모의 모습을 자투리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떠 올렸으리라.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한 것 또한 그 의미를 새겨 후세에 본보기가 되고자 함이었음을 유추한다. 지옥 불에 떨어진 중생을 끝까지 구원하고자 하는 지장보살의 한 줄기 기도 소리가 만세루를 휘감아 도는 것만 같다.

내가 선운사를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노스님들이 유머러스하게 말하는 일본으로 유학 다녀온 지장보살을 살피기 위함이다. 학창 시절에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나는 세례 교인이다. 사는 게 급급해 지금은 모든 종교의 신들에게 기도하는 처지이지만 절이라면 칠색 팔색하며 사찰들을 그저 관광하듯 관광지로만 여겼었다. 얼마 전 방송으로 일본에서 돌아온 지장보살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 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너무 놀라운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도벌꾼들이 지장보살상을 일본에 팔아넘겼다고 한다. 그런데 지장보살상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나

“나는 본래 전북 고창 도솔산에 있었으니,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라고 했단다.

그 후 지장보살을 소유한 소장자는 가세가 기울고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기분이 찝찝해 서둘러 지장보살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 그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우환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2년여 만에 지장보살은 선운사 도솔천 내원궁으로 다시 되돌아왔다고 한다. 지장보살의 영험함에 대한 소문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은 내원궁을 찾아 그 영험함에 기도를 올린다고 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평화와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이리라.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언니는 타지에 있었다. 경황 중에 연락을 못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꿈속에서 상주도 보이고 이상한 꿈이라 여겨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아버지의 변고를 전해 들은 언니는 한걸음에 달려와 빈소에 눈물을 쏟았다. 꿈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영험한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가 보다. 지장보살이 꿈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듯하였다. 기도 또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끌림의 법칙처럼 별을 끌어당기는 중력이 인간 사이에도 작용하는 것이라 믿어본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의 우직함을 나타낸 말이기도 하겠지만 간절한 끌어당김의 법칙이 비를 부른 것이라 의심을 거둔다.

도솔천 계곡을 따라 걸으니 순한 단풍들과 부드러운 풍광들이 여민 마음을 비워다 담았다 했다. 이미 꽃 진 꽃무릇 군락지들이 가는 곳마다 길을 먼저 밝혔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최대의 목적이어서 차마 죽을 수 없다는 어느 작가의 고백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육백 년이나 살고 있는 장사송은 그 아래를 걷고 있는 인간의 고민을 어루만지듯 지켜보고 있다. 중생들의 근심을 육백 년이나 귀담아듣고 있었으니 걸음걸이만 보아도 알아채 다독여 줄 것이다. 그래서 푸르게 그늘을 만들며 하늘을 받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장사송을 올려다보았다. 육백 살이나 된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인을 경외하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나무는 아무런 자랑도 하지 않고 뽐내지도 않으며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서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미륵신앙의 도솔천이 펼쳐졌다. 고려시대에 누군가가 암벽에 새겼을 것이라는 마애불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부처님이 계신 것을 알리고 중생들이 의지할 수 있는 벼랑 불상을 만든 것이라 여긴다.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돌보라는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내원궁에서 염불 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도솔산에 울려 퍼진다. 누군가가 우리의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밝게 빛 날 것이다. 나도 내원궁 지장보살에게 손을 모은다. 숙연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욕심을 비워 낸 듯 용문굴과 낙조대를 향해 길을 잡았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든 젊은 봉사자들이 휴지를 주우며 산에서 내려온다. 그들의 모습 또한 산사를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이다. 돌아서면 그리워질 풍광들에 마음을 쏟으며 산을 오른다. 산이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지 산사가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지 모르게 걸음이 가볍다. 아마도 마음을 비워 낸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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