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언어들
헨리 몰랜드의 <가면을 벗은 수녀>를 본다. 아름다운 여인이 가면을 들고 있다. 수녀라고 보기엔 외모가 수상하다. 내 안의 충돌과 그림 속의 충돌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림은 수녀를 보지 말고 가면에 중심을 두라고 한다. 수녀는 가면일 뿐 가슴을 드러내며 남자를 유혹하는 매춘부가 실상이라는 것이다.
몰랜드는 왜 가면을 그렸을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긍정이던 부정이던 자연스레 가면을 쓰게 된다. 남을 위한 가면이고 자신을 위한 가면이다. 살기 위한 가면이고 죽지 않기 위한 가면이다. 롤랜드 역시 자신만의 가면을 씌워 주거나 혹은 벗겨주고 싶은 것일 테다.
나는 눈을 뜨면 화장을 하듯 가면을 쓴다. 가족을 위한 가면이고 사회를 위한 가면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쓰고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쓴다. 순수하고 깨끗한 가면들이기를 아침을 열며 기도한다. 오늘은 어떤 가면이 필요할까? 오퀴스트 르누아르의 < 시골 무도회>를 연상하는 행복한 가면이 필요할까? 그것도 아니면 유디트의 얼굴을 한 무서운 가면이 필요할까?
모임에서 단합회 겸 겨울산행을 했다. 얼굴만 알고 있었지 가슴 깊은 친분이 없던 사람들이라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대구 근교의 팔공산으로 향했다. 언 산이 미끄러울 것 같아 산허리를 비집고 나 있는 소방도로를 걷기로 했다. 산에 불이 날 때를 대비해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산길에는 눈이 아직 쌓여 있었다. 눈 쌓인 산길은 오히려 여행의 행운이었다. 길과 나무들은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을 벗으면 흙길 투성이 맨 얼굴이 나오겠지만 우리는 하얀 이불처럼 덮여 있는 눈길을 뽀드득 거리며 걸었다. 제대로 된 눈길을 오랜만에 걷는다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가지를 주워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 코, 입도 만들고 머리도 만들어 산을 지키는 꼬마 병정처럼 길 섶에 세웠다. 그 바람에 눈을 뭉쳐 눈사람을 무너뜨리고 싶은 어릴 적 장난이 돋았다. 추억을 떠 올리게 만드는 심술 호사였다. 가지에 걸터앉은 눈과 흔적이 없는 발자국은 단합회를 위해 준비해 놓은 꽃길 같았다. 누구랄 것 없이 도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연을 환호했다. 산만이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광경이었다.
산행 후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게눈 감추듯 오리불고기가 전골냄비에서 사라졌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처럼 산토끼라도 잡아 식욕을 채우고 싶은 점심상이었다. 뒤풀이로 윷놀이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윷이나 모가 나오면 반드시 팀 전체가 춤을 추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윷놀이에서 모나 윷은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좋은 일이겠지만 춤을 추라니.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어색함을 호소했다. 나 역시 춤추는 것이 어색했으나 별수 없었다. 우리 팀에서 모가 나왔다. 두 모와 개를 해 상대편 말을 잡아 버렸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일어나 어깨춤을 추었다. 오퀴스트 르누아르의 < 시골 무도회>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방방 뛰었다. 굽혀지지 않는 몸의 웨이브가 몸전체를 타고 흘렀다. 춤을 추어야 한다는 규칙이 무색할 정도로 오버를 해 추었다. 누구도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체면의 가면 같은 것은 필요도 없었다. 결국 상대팀에 3대 2로 졌지만 우리는 괜찮았다. 오히려 십이지장부터 끌어올린 웃음과 행복이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겨울해가 산 그림자를 몰고 왔다.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가면을 쓴 것처럼 어색하던 분위기는 멋진 단합회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