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언어들
토요일이다. 2월의 겨울 날씨치고는 꽤 화창했다. 늦은 아침을 챙겨 먹은 나는 금오산으로 향했다. 구미에서 볼일도 보고 금오산 아래에 있는 저수지 산책도 할 겸 금오산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나무들처럼 겨울잠에서 깨고 있는 중이라는 여겼다.
가만히 있기만 하는 나무들도 힘은 들 것이다. 그냥 서 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까. 계절에 맞춰 싹도 피우고 잎도 가다듬고. 생색내지 않을 뿐 치열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나무들 사이로 저수지가 보였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나무처럼 우뚝 서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타를 치며 공연을 한다. 손이 시려 기타 줄을 튕길 수나 있으려나 걱정이 되어 가던 길을 멈추었다. 예술가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잠자는 저수지도 깨울 울림이다. 노래도 노래지만 추운 날씨에 꿋꿋하게 공연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도 그 열정에 감동해 박수를 두배로 보내는 것이리라. 나 또한 그의 노랫소리에 맞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흐르는 강물처럼 저수지를 따라 걷다 보니 이번에는 울타리가 나온다. 울타리 속 막 눈을 뜬 개나리꽃을 발견한다. 철 모르고 잠에서 깬 느린 개구리처럼 노란 개나리꽃 한 송이가 파르르 떨고 있다. 어쩌다가 이른 잠을 깼을까. 내일이면 다시 영하로 떨어져 노란 꽃잎이 그대로 얼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녀도 노란 개나리였을까? 불현듯 얼마 전 문자로 받은 부고 속 그녀가 떠 오른다.
" ㅇㅇㅇ본인상 구미 00 장례식장~"
서른을 갓 넘긴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듣자 그녀의 죽음이 맞는지, 문자의 오타가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을 했었다. 전화 속 지인의 말은 사실임을 증명했다. 그녀가 말기 위 암으로 선고받은 지 6개월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고 했다. 병과 싸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미에 오면 꼭 들러 달라며 세련된 트렌치코트 속 환한 미소를 머금던 그녀가 그게 마지막 미소일 줄은. 그녀의 부탁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세 살인 아이와 남편을 남겨두고 눈이나 제대로 감았을까...
그녀와 나는 유아교육을 공부하는 대학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어린이집을 운영했었고 구미에서 대구까지 대학원을 다녔었다. 그녀가 떠난 후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너무 이르게 핀 개나리꽃이어서 미처 자연이 내린 추위를 대비할 틈도 없이 얼어버린 것일까.
저수지를 돌다 꽃을 보니 사람이 그리워진다. 흐르는 물줄기 하나에도 사람이 있어야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카페로 향했다. 서늘한 몸을 뜨거운 커피로 핏줄하나하나를 녹였다. 피가 따뜻해지니 카페에 앉은 젊은 부부와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휴일이라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왔는 모양이다. 빵과 크림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아이는 혼자 먹겠다며 크림과 빵부스러기들을 얼굴에 묻힌다. 연신 휴지를 꺼내 아이의 입을 닦으며 눈 맞춤을 한다. 그 모습이 왠지 목련꽃처럼 화사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노란 개나리꽃 미소가 번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고맙고 지켜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얼어버린 개나리꽃에게도 신이 계획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카페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