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과 후크 선장

(feat. 뮤지컬 피터팬)

by Rachel

어린 시절,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을 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오늘, 아이와 함께하는 뮤지컬 피터팬을 기다리며

기대에 찬 마음으로 배우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불이 모두 꺼지자, 옆자리에 앉은 곤죠 왕자가 소리쳤다.
“어? 태성이다!”

그 친구는 예전에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최근 유치원으로 옮긴 뒤에는 마트에서 한 번 마주쳤던 아이였다.

두 아이는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윽고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장을 하지 않은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먼저 내려왔고,
곧이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자 배우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마침 곤죠 왕자와 태성이는 배우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앉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배우들과 나눈 짧은 인사 덕분인지 곤죠 왕자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별처럼 반짝였다.



웬디가 무대에 등장하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자
곤죠 왕자는 음악에 맞춰 몸을 살짝살짝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피터팬이 있다면, 바로 여기 내 옆에 앉아 있겠네.’



피터팬의 목소리가 홀 안을 청아하게 울렸다.
팅커벨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배우들은 다 목소리가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몇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의 규모가 아담해서일까?
출연진은 단 여섯 명, 그래서인지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았다.

곤죠 왕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후크 선장과 함께 등장한 선원 중 한 명이 ‘인어 공주’이자 ‘타이거 릴리’이기도 했다.
특히 인어 공주가 무대에 나왔을 때, 곤죠 왕자는
“인어 공주가 베일을 쓰고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다섯 명의 배우가 후크 선장, 피터팬, 팅커벨, 웬디, 스미를 맡았다면,
‘인어 공주’와 ‘타이거 릴리’를 겸한 배우는 무대 뒤에서 얼마나 바빴을까.
인어 공주, 타이거 릴리, 선원 역할까지 오가며,
심지어 목소리 톤까지 달리해 완벽히 소화하는 모습에 나는 감탄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인어 공주와 타이거 릴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무대 위 장면에만 온전히 빠져 숨죽인 채 바라보는 모습이 참 천진난만했다.




사람은 다면적이다.
뮤지컬 속 배우들이 순식간에 ‘역할’을 바꾸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곤죠 왕자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더 깊어졌다.
인어 공주와 선원, 타이거 릴리를 오가던 배우는
마지막에 타이거 릴리로 분장한 채 곤죠 왕자와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곤죠 왕자는 후크 선장이 제일 좋다며, 그 옆에 꼭 붙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나도 어린 시절엔 후크 선장이 왠지 가엾게 느껴졌는데,
지금 어른이 된 나는 후크 선장이 어쩌면 피터팬의 또 다른 면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버랜드에는 언제나 어린이로 남고 싶어 하는 피터팬과,
그 순수함을 빼앗고 싶어 하는 후크 선장이 함께 존재한다.
어쩌면 후크 선장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피터팬의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공연장을 나와 와플집에서 와플을 기다리던 곤죠 왕자에게
1인 다역의 비밀을 살짝 알려주었다.

마법이 풀리듯, 그 말을 하자 곤죠 왕자는 실망하지 않았다.
다만 “진짜 사람이 여러 명 있었던 것 같아.”라며 놀라워했다.

그 순간, 내가 후크 선장이 되어
아이들의 순수성이라는 마법을 깨뜨린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그래도 곤죠 왕자는
이번 피터팬이 지난해 봤던 마술피리와 함께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며
또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8월 23일에 볼 예정인 뮤지컬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벌써부터 기대되는 하루였다.



오늘의 피터팬은, 단연코 우리 곤죠 왕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네버랜드를 나와, 후크 선장이 되었을 때
마음속에도 여전히 하늘을 나는 피터팬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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