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서, 말해 버려서
나는 그때, 내가 그 애를 좋아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감정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그 애는 나를 잘 아는 아이였기에, 내 마음을 억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의 아이들은, 내가 엮인 사람이 따로 있음에도
나를 마치 다른 사람과 얽힌 아이처럼 취급했다.
그날부터, 나는 ‘누구도 모르는 삼각관계’의 꼭짓점이 되었다.
시작은 아마도, V가 나를 알게 된 그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앞반의 K와 이웃사촌이었고, K의 여자친구가 M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가끔 하교하다 마주치는 K가 복도에서 M의 이야기를 툭툭 흘리고 다니는 걸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K는 정말 행복해 보였고, 나는 그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K의 친구인 V역시, 앞반인 H와 질문을 하면서 안면만 튼 사이였다.
인사만 나누는, 딱. 그 정도 사이.
K와는 인사도 나누고 농담도 나누는 사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웃사촌이었어도 K와 나는 어울리는 친구들이 달랐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어느 날 V와 복도에서 마주쳐 환기를 한 그날 이후, 이상한 시선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 애의 반 친구들이, 마치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나를 힐끗거렸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쩌면 그저, 그 애와의 대화가 싫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 오해는 곧 엉뚱한 방향으로 번졌다.
M, 그러니까 K의 여자친구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나워졌고—
어느 날은, 반으로 질문을 하러 간 나를 향해,
“니가 V랑 뭐 있냐!”
따지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V랑은 그냥 어쩌다 환기를 같이 한 사이이고, 그 이후로 따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V와 딱 한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그리고 제일 어이없는 사실은, K의 여자친구 M이 왜 그것을 따지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 더 조심히 웃고, 더 조심히 말을 아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은 그런 내 마음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와 얽혔는지보다, 누가 나를 바라보는지만 궁금해했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끼고 싶지 않았던,
그리고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삼각관계의 꼭짓점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V랑 뭐 있냐고 물었던 M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말 그대로 ‘습격’이었다. 복도 끝에서 나를 보자마자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소리쳤다.
“니가 V랑 바람났냐?”
그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반에 있고, V랑은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인데—
어쩌다 보니, 나는 누군가의 남자친구를 가로챈 ‘나쁜년’이 되어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난 K랑도, V랑도 아무 사이 아니야.”
“그럼 왜 남의 반에 와서 자꾸 어슬렁거려? 남의 반 반장이랑 말 섞고?”
그 ‘반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내가,
어디서 어떻게 오해를 사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보다 제일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K가 M이랑 사귀는 사이에 왜 V와 바람났냐는 말이 왜 나오냐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너 K여자친구 아니야? 왜 그런 걸 따져? 너 K가 아니라 V랑 사귀어?”
나의 반격에 M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큰 소리에 M과 K의 반 아이들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M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남의 남자친구를 가로챈 나쁜 년 주제에 나를 의심해? K야! 쟤가 나랑 V랑 바람핀대?”
“뭐?”
졸지에 공격당한 K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 진짜야?”
“아니, 나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쟤가 나랑 V랑 바람피냐 그래서 물어본 거야. K가 아니라 V랑 사귀냐고 물어봤어.”
“그럼 이게 무슨 소리야? 대체, 저런 소리가 왜 나와?”
어이없어하는 K에게, M이 소리쳤다.
“너 나 못 믿어?”
“D는 거짓말 할 애가 아니야. 쟤 거짓말 하면 티 나. 넌 왜 그런 말을 했어?”
“나, 나 거짓말 한 거 아냐! 그리고 너랑 끝낼래! 나 못 믿는 남자랑 못 사귀어!”
순식간에 커플이 깨지는 장면을 본 나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동이람.
나는 단지, H의 반에 질문을 하러 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V와는 우연히 마주친 것 뿐이었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그 애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티낸 적도 없었다. 모두가 내 감정을 몰랐기에—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 사랑은,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감정이었기에.
그날 이후, 나는 엮이고 싶지 않았던 관계 속에서, 말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미움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K와도 멀어졌다.
어느 날, 집 창문께에서 흐느끼며 말하던 그 애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알고도 모른 척 해주지, 왜 아는 척했냐.”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말들은, 그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그렇게 나는, 말하지 못한 마음으로 사랑을 깨웠고, 말해버린 진실로 우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