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가을이 지나 봄이 왔다.
만물이 완연한 연둣빛으로 지날 때쯤, 나는 점점 회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힘겨웠던 향수병을 떨쳐내고, 뜀박질을 하며 그 애의 옛 집 근처를 지날 때면
씁쓸한 마음으로 그 집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주 뜬금없이, 페이스북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여기로 발령 받았어. 네가 있던 부산이야. 해운대에 있는 56사단.]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8개월이 지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멀리 떠난 상태였는데.
그때도, 그 메시지 하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그 애를 깊게 좋아했었나보다.
[와, 부산이야? 56사단이면 최후방이네. 대단하네.]
[혹시, 면회 와 줄 수 있어?]
[면회?]
[응. 올 수 있으면 와서, 우리 밥 한번 먹자.]
[응, 시간 내서 들를게.]
[그래. 알았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쓰고 나서도, 한참을 마우스를 붙잡고 있었다.
시간 내서 들를게, 돌려서 말한 거절.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애의 얼굴을 보면,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던 걸까.
사실은, 아무 대답도 하기 싫었다.
다시 설레고 싶지도 않았고, 또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 애를 만나지 않음으로써, 이 마음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한 번만 더 용기를 냈다면. 한 번만 더 그 거리로 나아갔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 아마도 그 애는 여전히 다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혼자 아팠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연락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난 말이, “우리 나중에 같이 밥 먹자.” 라는- 그런 일상적인 말이었다.
그냥 그렇게, 또 다음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 대화는 없었고,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몇 번이고 바뀌었다.
문득 그 애를 떠올릴 때면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밥 먹자.”
그 애는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을 담기에 너무 서툴렀던 걸까.
나도 그랬다.
그 애의 말에 뭐라 대답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따뜻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자꾸 아쉽다.
네가 그렇게 일상처럼 빠져나가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졌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말 하나 때문에
그 애를, 너를, 잊지 못한다.
잊지 못했어..
그 빛나던 시절의, 마지막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