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 처음 가 보는 국제공항.
쓸쓸함과 어딘지 모를 미아가 될지 모른다는 느낌 속에서, 나는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나는 이제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 같으니
나를 포기해달라는 말을 들은 아빠는, 나를 캐나다로 보냈다.
나는 그 때 캐나다를 가는 게 옳았던 것인지,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처음 본 캐나다의 풍경은, 살풍경한 눈이 내리는 곳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거리를 따라서 조용히 도착한 홈스테이 집.
현지 필리핀 홈스테이 아줌마가 나를 반겼다.
조용히 안내받은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주륵 났다.
나는 그 때까지도 내가 우울증 증상 말기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냥, 우울한 건 내 기본값이었으니 괜히 우울해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늘 말했던, “넌 너무 예민해. 그래서 그런 거야.”라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서.
이제 새 환경으로 바뀌었으니까,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 생각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유학생활 내내, 나는 우울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끔찍했다.
하루하루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싫었지만, 초반 6개월은 꾸역꾸역 랭귀지 스쿨을 다녔다.
정말 싫었지만, 엄마와 아빠의 화상 통화가 있었기에 무조건 잘 해야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무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감정을 숨겼다.
엄마를 향해 억지로 웃었고, 아빠와의 통화나 동생과의 화상 통화에서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내 가족 중 그 누구도, 내가 점점 심해지는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엄마의 수술이 있던 날부터, 나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내가 없어도 엄마와 아빠는 잘 지내는구나. 동생도 잘 지내네.
내가 없이도- 그러니 나는, 필요 없었구나.
나는 그 즈음에는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세상에, 나 대신 돈이 남아 엄마 아빠에게 구원이 되기를 바랐다.
내가 남긴 돈이라도, 엄마 아빠에게 전해져서, 나의 존재를 깨끗이 잊어버리길 기도하며 늘 잠에 들었었다.
겨울 날, 눈이 푹푹 내리는 날에 길을 잃었다.
길치였던 난 동네 밖을 나가서 바로 버스를 타면 되는데도, 그 눈발을 이기지 못하고 동네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곳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던 이웃 주민의 도움을 받아,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미 지각- 그 지각한 날, 나는 조금은 자신감을 얻었었다.
그 잠깐의 길 잃음에도, 나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어 주는 주민을 만나서, 더 이상 우울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그 애와의 페이스북 연락과 싸이월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그 애와 싸이월드, 페이스북 연결은 해 두었었다.
단지- 내가 그 SNS에 관심이 없어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그 시절의 미니홈피.
살짝 들어가서, 방명록을 남겨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5시간 뒤에 방명록에 댓글이 달렸다.
비밀 방명록이었으니, 다른 이들이 볼 수가 없었을 텐데.
두근두근한 마음을 안고 방명록을 보았다.
그 애였다. 여전한 말투로, 댓글을 남긴.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나도 모르게, 기뻐 눈을 몇 번이나 비볐다.
그리고 다시 방명록을 클릭했다.
그대로 있는 그 댓글- 그 애가 분명했다.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노트북을 들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와, 나 댓글 달릴 줄 몰랐어. 너- 싸이 안 들어온지 한참 된 것 같길래.]
[재수하느라고 못 했지. 지금은 합격해서 괜찮아.]
[와~ 그럼 신입생이네? 10학번이야?]
[응. 나 Y대 합격했어. 원래는 S대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
[10학번 Y대면 완전 성공한거지. 부럽다. 학과는 어디야?]
[나? 치의예과. 괜찮지?]
[와! 너 의사 되는 거구나!]
[어. 어때, 어울려?]
[응, 어울려. 너 의사 되고 싶어했잖아. 중학생 때. 꿈을 이룬 거네. 축하해.]
[아직 의사 안 됐어. 의예과잖아. 될려면 10년은 걸릴걸.]
[너라면 분명 될 거야. 나는 알아. 너 의예과 갈려고 노력한 걸 아는데. 응원한 보람이 있네.]
[그래. 그러면- 나 이제 가볼게.]
[아 맞다. 한국 이제 자정이지. 여긴 아침이라서.]
[한국 아니야?]
[응, 나 캐나다에 왔어.]
[왜? 무슨 일로?]
[엄마랑 아빠가 갔다 오래서.]
[그렇구나.]
[응.. 근데 보고싶어지네.]
[누구?]
[너랑.. 그 때 그 친구들 다.]
[그렇구나.]
[응, 그 때 그 친구들이랑, 담임선생님이랑. 많이 보고 싶다.]
[그래. 그럼 나 진짜 간다.]
일주일동안 이어진 방명록의 대화.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참 슬프게도- 우리는 더 멀어지고 있었다.
[나, 이제 군대 가.]
[어? 벌써 가?]
[신입생이긴 하지만- 일부러 신청한 것도 있어. 다들 밀려 있어 일찍 신청했더니 일찍 가네.]
[하긴. 내 남자 동기들도 다들 갔더라. 너도- 잘 다녀와. 벌써 내 주변만 열명이 가네.]
[아, 너 공대랬지.]
[응. 그래서 여러명 군대 보내봤지. 편지, 써도 돼?]
[응, 네가 써주면 좋지.]
[그래. 근데 내가 주소를 어떻게 알까?]
[누나가 페이스북에 올린댔으니까, 페이스북 친구 신청해줘. 내가 수락 해놓을게.]
[그래, 알았어. 잘 다녀오고, 몸 조심해.]
그 애와의 2주간의 대화는 나를 참 힘나게 했다.
그 즈음의 나는 점점 더 수업에 열중하고, 열의를 보이면서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몰랐다. 나는 그 때 양초처럼 나를 태우고 있었음을.
그 애가 군대에 가고 2주 후, 그 애의 누나가 페이스북에 주소를 올렸다.
나는- 인터넷 편지로 두 통을 썼다.
한 통은 그저 안부를 묻는 담백한 편지와, 그 애가 웃었으면 할 만한 이야기가 든, 애정어린 편지를 썼었다.
그 편지들을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멀리 떨어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함이었다.
내 학창시절 그 애가 내게 주었던, 그런 종류의 다정함.
편지를 보내고 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을 확인했다.
혹시 그 애가 내 글을 읽었을까?
혹시 늦게라도 편지에 답장을 할까? 아니면- 페이스북으로 채팅이라도 보낼까?
그래, 군대에선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훈련이 빡빡하다 보니, 못 쓰는 걸 수도 있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SNS에 누나가 올린 사진 속 그 애를 보았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웃음에, 나는 없었다.
그 애는 잘 지내고 있었고, 내 편지 같은 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애가 여전히 웃고 있다는 사실에 묘하게 안도했다.
내가 필요하지 않아도, 그 애는 무사하다는 사실이—
다행이면서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해하려고 했다.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냥, 내가 뭔가 더 부담을 줬던 걸까 싶었다.
아니, 처음부터 혼자만 마음이 컸던 걸까?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었다.
우리는 일방통행이었구나. 우리 중 한쪽이 항상 먼저 연락을 했었다는 걸.
아, 이 애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때 문득 또 하나, 정말 아픈 깨달음이 스며들었다.
나는, 이 애에게 더는 말할 것이 없구나.
말할 수 없다는 건, 곧 우리 사이에 추억거리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같이 찍은 사진도, 같이 나눈 약속도, 함께 웃었던 기억도 없었다.
그저, 내가 혼자 좋아했고
혼자 애쓰고 혼자 기다렸던 시간뿐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참고 있던 마음이 무너졌다.
눌러두었던 감정이 향수병처럼 터져버렸다.
그 애에게 더는 말할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살이 에이는 것처럼 마음이 에였다.
그건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통증이었고,
나 혼자서 상처의 깊이를 확인하고,
혼자서 피를 닦는 일 같았다.
그건, 오래 앓는 병 같았다.
그 애의 부재보다 더 아픈 건, 나는 그 애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한 계절을 앓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영혼 없는 껍데기처럼 유학 생활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무언가를 했고, 무언가를 배웠고, 누군가와 말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기억은 마치 꿈속에서 본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
향수병이 두 번째로 도졌고, 결국 나는 귀국했다.
그렇게 그 애와의 마지막 대화도, 내 첫사랑도—
그 낯선 땅에 남겨둔 채로, 나는 돌아왔다.
눈이 내리기 전의,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