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

잊은 줄 알았던 너를, 다시 꺼내어 봅니다

by Rachel

19. 지나간 봄, 빛나던 너


가을이 지나 봄이 왔다.

만물이 완연한 연둣빛으로 지날 때쯤, 나는 점점 회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힘겨웠던 향수병을 떨쳐내고, 뜀박질을 하며 그 애의 옛 집 근처를 지날 때면

씁쓸한 마음으로 그 집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주 뜬금없이, 페이스북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여기로 발령 받았어. 네가 있던 부산이야. 해운대에 있는 56사단.]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8개월이 지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멀리 떠난 상태였는데.

그때도, 그 메시지 하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그 애를 깊게 좋아했었나보다.



[와, 부산이야? 56사단이면 최후방이네. 대단하네.]

[혹시, 면회 와 줄 수 있어?]

[면회?]

[응. 올 수 있으면 와서, 우리 밥 한번 먹자.]

[응, 시간 내서 들를게.]

[그래. 알았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쓰고 나서도, 한참을 마우스를 붙잡고 있었다.

시간 내서 들를게, 돌려서 말한 거절.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애의 얼굴을 보면,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까 봐 무서웠던 걸까.

사실은, 아무 대답도 하기 싫었다.

다시 설레고 싶지도 않았고, 또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헤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 애를 만나지 않음으로써, 이 마음을 마지막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돌이켜 보면, 한 번만 더 용기를 냈다면. 한 번만 더 그 거리로 나아갔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 아마도 그 애는 여전히 다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혼자 아팠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연락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난 말이, “우리 나중에 같이 밥 먹자.” 라는- 그런 일상적인 말이었다.

그냥 그렇게, 또 다음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 사이에 대화는 없었고,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몇 번이고 바뀌었다.



문득 그 애를 떠올릴 때면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밥 먹자.”

그 애는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을 담기에 너무 서툴렀던 걸까.



나도 그랬다.

그 애의 말에 뭐라 대답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따뜻하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자꾸 아쉽다.


네가 그렇게 일상처럼 빠져나가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졌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 말 하나 때문에

그 애를, 너를, 잊지 못한다.



잊지 못했어..
그 빛나던 시절의, 마지막의 너.



이전 23화그 때,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