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집순이 Jan 12. 2024

엄마와 놀 수 있다는 희망 고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엄마, 아직 일 다 안 끝났어요?"


재택근무 중인 나에게 종종 심심함을 하소연하며 언제 놀아줄 수 있냐고 한다. 나의 대답은 늘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오늘 저녁에', '주말에'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방에서 잘 놀고 있던 딸의 걸음소리가 가까워지면 '아, 또 온다'라는 생각이 일었고, 한창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일 언제 끝나냐' 혹은 '아직도 일이 많냐'는 질문을 번갈아가며 던지는 딸들이 귀찮아졌다. 한동안은 그렇게 내 입장만 생각했는데, 하루는 '쟤들도 오죽 엄마랑 놀고 싶으면 저러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가 놀자고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한 게 아니라,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다.


내가 늘 집에 있고, 아직 열 살 밖에 안된 쌍둥이들 눈에는 그것이 엄마와 언제든 놀 수 있는 상태로 여겨질 수 있다. 나 또한 아이들과 노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부채감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기대하며 기다리고,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그러나 냉정히 따지면 일할 때 아이들과 놀 수 없다.


아직은 엄마랑 놀면 재밌어하는 나이이고, 나도 생각만으로는 아이들과 충분히 잘 놀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솔직히 아이들과 노는 건 재미없다. 거꾸로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놀이인 명상을 권하면 지루하다고 하듯이, 나도 아이들과 노는 게 시시하다. 아이들의 세계에 눈높이를 맞추려면 모드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과 놀기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딸들이 잠깐 서운해하더라도 이제는 분명하게 말해야 했다. 솔직하게 내 상황을 전달하며, 특정 시간 동안에는 같이 놀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가끔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일이 끝나서가 아니라 일을 계속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이고, 그것도 일의 연장임을 알려 주었다. 역시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해주지 못할 거면서 기약함으로써 잔잔한 실망을 길게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여기서 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할 일을 제쳐 두고 아이들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일은 피곤하다.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만 선택해야 한다. 두 마리를 다 잡으려고 하면 내 시간도 방해받고, 아이들의 시간도 반쯤은 엄마를 기다리느라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못 놀아 줄 거면 못 놀아 준다고 진작 이야기해야 했다. 희망 고문을 하지 말아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욕심이 많아진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