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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헤다 Oct 20. 2023

사랑의 힘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다.




나의 임신 생활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유산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받았던 검사에서 혈전이 잘 생기는 나의 체질이 임신 유지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배 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매일 ‘크녹산’이라는 주사를 내 배에 직접 놓아야 했다. 스스로 내 배에 주사를 놓다니, 겁이 많은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채혈을 할 때도 온몸에 긴장을 두른 채 고개를 돌려 주삿바늘을 쳐다보지 못하는 내가 매일밤 배를 찌르게 되었다. 처음 주사를 놓은 날이 생각난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 순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오직 아기였다. 첫 주사를 성공하고 난 뒤 생긴 피멍을 매만지면서도 나의 아기를 생각했다. 간절히 기다렸던 소중한 존재를 지켜야 했으므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느날 샤워를 하고 튼살 크림을 바르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살펴본다. 배꼽 주위로 알록달록한 피멍들이 흩어져 있다. 마음이 또 쿵 하고 내려앉는다. 나와 아기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을까.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지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내 안에는 아기에게 주어야 할 사랑들이 많이 쌓여 있다. 넘치는 사랑을 주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절망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다. 내 배에 물든 멍자국은 절망의 상징이 아니다. 나의 아기를 향한 사랑의 상징이자, 만물이 약동하는 봄의 계절을 나타내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마음을 다잡으니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뒤로 물러났다. 내 눈 앞에는 오로지 사랑의 대상만 남아 있었다. 내 안에는 나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사랑의 힘보다 센 것은 없다. 인고의 시간이 축적될수록 나는 굳건한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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