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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헤다 Apr 06. 2023

온전한 위로에 대한 가능성

타인의 슬픔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기력하다. 하루종일 잠만 잤고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이고 싶었다. 여러 생각이 머물다 사라지곤 했는데, 긍정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 과거를 돌이키며 아파하고 미래를 생각하다 불안해하고.


그러다 문득 억울해졌다. 한 달 전까지의 내 모습과 너무 달라서. 그때는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아침 먹고 독서하고 일기까지 쓰고 출근했다. 주 3회 이상 꼬박꼬박 운동했으며 생기 있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 눈물이 났다. 내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잘 살고 있었는데, 견딜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와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가임기 여성의 유산 확률은 15%라는데 내가 왜 85%가 아닌 15%에 들어야만 했을까.


그러다 못된 생각도 했다.


어차피 태어나지도 못할 아기였으면 애초에 오지를 말지. 사라질 거였으면 왜 나타나서 나를 괴롭게 하는 걸까?


그러나 곧바로 후회하고 눈물 젖은 편지를 썼다.


잠시나마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마웠다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마로 살아서 행복했고, 엄마로 만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나는 도대체 어디에 의지할 수 있을까? 누가 나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 준다고 해도 나의 내면의 깊은 곳은 채워줄 수 없다. 즉 나의 우울과 불안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것은 막연한 슬픔이 아니었다. 실존하는 현실 슬픔이었다. 삶을 마비시킬 정도의 치명성을 가지고 파도처럼 일상을 덮쳐버렸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나오는 구절처럼, 거대한 슬픔에 관한 한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에 불과하다. '나는 슬픔을...'이라는 문장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고 오직 '슬픔이 나를...'이라고 겨우 쓸 수 있을 뿐이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조차 내 슬픔을 온전히 위로해주지 못했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의 위로는 고맙긴 하지만, 허공을 맴돌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어떤 지인은 유산에 대해 자꾸 생각하지 말라고, 어서 사람도 만나고 외출도 하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크나큰 상실을 겪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그런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행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그 입장이 되지 않는 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즉, 나의 상황과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제대로 아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경험, 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같은 슬픔에 도달할 수 있다. 나 또한 상실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 세계가 지닌 슬픔의 농도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나 또한 그들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위로는 힘이 크다. 내가 온전히 위안을 받았다고 느낀 순간은, 유산을 세 번이나 겪은 언니의 눈물 고인 축축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전해졌을 때뿐이었다. 언니는 유산이라는 상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감정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유산으로 삶이 어떤 식으로 파열되는지 직접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를 통해 그 감정을 다시 겪게 되었던 것이다. 그 슬픔의 유대가 전해져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고, 마음속 응어리진 감정이 토해지는 듯했다.


물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슬픔의 세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출산을 앞두고 돌연 심장이 멎어버린 태아를 분만해야 했던 산모, 키우던 아이를 여러 가지 이유로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의 마음을 나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슬픔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람에 대한 모욕이고, 슬픔에 대한 오만이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슬픔의 무게를 전혀 가늠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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