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술 이후 나의 일상
'본인의 삶을 사랑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지만 나는 늘 인생을 긍정적으로 계획해 왔다. 대학교, 직업, 결혼에 관해 내가 원하는 청사진을 그려 놓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변수가 존재했지만 결국 최종의 결과는 내가 그린 청사진과 일치했다.
계획이 틀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그 모든 상황에 미리 대비하는 것.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게 쉬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와 그로 인한 기회비용은 늘어났고 점차 두려워졌다.
30대 중반인 지금 인생 최대의 고비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바라보며 불안감과 허무함에 휩싸여있다. 처음 겪어 보는 실패와 상실로 인해 마음이 바스러졌다. 마치 다 타버린 성냥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가만히 모로 누워 초음파 사진을 보고 또 봤다. 까만 아기집. 비어버린 아기집.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기대하고 바라던 일이 결국 '무'로 돌아갈 때의 그 허무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내 삶에 희망이 다 사라진 듯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억지로 나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날이 너무 추웠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메마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에 생긴 구멍이 더 잘 느껴졌다. 끊임없는 눈물이 빠져나오느라 내 마음은 몹시 건조했고 차디찬 겨울 바람이 그 마음을 무심히 통과했다. 수분 없이 수척해진 내 마음은 더욱 바싹 말라갔다.
그러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어린 아이들을 마주칠 때면,
행복한 표정의 임산부를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나는 무너졌다.
사실 '마음'이라는 건 실제로 존재하는 신체 부위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토록 아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슴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감정이 자리 잡은 마음이라는 곳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너무나 명확히 인식되는 고통은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친절히 가르쳐주었고, 나는 지금 텅 비어버린 시간 속에 있다는 걸 절감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위로를 할 때 보통 이렇게 말한다. 힘든 순간이 있었기에 성숙해지고 단단해진다고. 실패가 양분이 되어 결국은 성공으로 이끌 거라고.
그 말도 맞지만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불운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무기력과 무너짐을 겪을 필요 없이 더 많이 웃고 특별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눈물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