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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헤다 Apr 06. 2023

마취제가 억누르지 못하는 슬픔

계류유산 소파술로 임신 종결

  


병원에서 유산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모든 일상생활은 정지되었고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인터넷에서 유산과 관련된 글을 밤을 새우면서 읽었다.


여러 검색어로 수많은 글을 찾아본 결과, 나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산모 중 기적적으로 뒤늦게 아기가 보여서 만출했다는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계류유산으로 이어졌다. 희망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이 앞에 놓이게 됨을 직감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난황과 아기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글을 보고 용기를 내어 다른 병원에 가보기로 한다.


그러나 다른 병원에서 본 초음파 역시 여전히 덩그러니 빈 아기집만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집을 확인하고 2주 안에 아기 심장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 난황조차 안 보인다면 유산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했다.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시며 2주째 되는 날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 이때 나는 첫임신을 내려놓기로 결정한다.



계류유산이 되면 3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1. 자연배출

아기집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자연배출이라 자궁 내막 손상이 적지만, 언제 배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에 무리가 있고 배출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있다고 한다.


2. 약물배출

자궁수축을 유도하는 약물을 통해 배출한다. 이 또한 자연배출과 마찬가지로 자궁 내막 손상은 적다. 생리통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한다. 약물 부작용으로 발열, 오한, 구토 증상이 있을 수 있고 완전히 배출되지 않으면 결국 소파수술을 해야 한다.


3. 소파술

흡입하는 수술을 통해 아기집을 배출하는 방법이다. 자궁내막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지만 수술시간이 짧은 편이고 원하는 때에 임신을 종결시킬 수 있다.



나는 소파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자연배출이나 약물배출은 엄청난 고통이 따르다는데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고 배출된 아기집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배출이 완벽하게 안된다면? 수술을 피할 수 없을 텐데 그런 것들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차피 유산이 거의 확정된 상황이라면 기다리는 것보다 얼른 임신을 종결시키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다.



8주 5일 차 되는 날, 소파술을 잡았다. 물 포함 8시간 금식을 하고 남편과 함께 2시 반쯤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 전 마지막으로 초음파를 확인했는데, 여전히 발달 상황은 보이지 않았고 아기집이 많이 찌그러져 있었다. 이미 유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막상 찌그러진 아기집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액을 꽂은 채 수술실에 누워 있는데 천장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아주 먼 길을
오래오래 달려오는 나의 아기야
마지막 한 고개를 넘어서
따뜻한 엄마 품으로 빨리 달려오렴


그 글귀를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눈물을 닦아주시고는 수술을 위해 조금만 진정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눈을 감았고 수면마취로 인해 잠들었다.


마취제가 억누르지 못하는 슬픔이 있었다. 수술 내내 남편이 들어야 했던 울음소리는, 이 불행이 극복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며 앞으로 절망이 가득 찬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예고하는 듯했다.


수술 후 회복은 잘 되었지만, 몸이 아픈 것은 아무 것도아니었다. 멘탈 회복이 어려웠다. 적극적인 노력을 한 지 1년 만에 임신이 된 거였고 첫임신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가 정상적인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커져서 긍정적인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점철되어 또 유산이 반복되면 어떡하지?라는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이 생겨났다.


커다란 슬픔이 일상을 덮친 상황에 놓인 사람은 슬프다고 말할 힘이 없다. 나는 슬픔이 안으로 침범하는 것인지, 내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문득 거울을 보니 슬픔으로 얼룩진 얼굴이 있었다. 절망의 심연에 빠진 나는 오랫동안 이 심연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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