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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미 Apr 05. 2023

최악을 딛고 다음 단계를 향해

불완전하기에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주인공 '율리에'가 두 남자와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열 두 개의 챕터와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하나의 문학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는 중간중간 내레이션을 삽입하며 그 효과를 더한다. 흔히 말하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 형식을 띠지 않는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표현이 보다 자유롭고 독특하다. '악셀'과 연애 중인 율리에가 우연히 간 파티장에서 만난 '에이빈드'와 사랑을 주고받을 때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자 직접적인 스킨십을 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닿으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율리에가 고뇌하고 슬퍼할 때 그 원인 묘사를 생략하고 율리에가 정처 없이 걷는 모습만을 프레임에 담는 방식도 흔하지 않다. 악셀과의 이별을 직감하고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뒤 에이빈드를 향해 뛰어가는 율리에의 주변이 모두 멈춰있는 일종의 상상 장면은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황홀하고, 실제로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을 사기도 했다. 

전형적인 멜로 영화, 드라마 장르의 연출 방식을 깬 이 자유로운 영화에서 아무래도 가장 자유로운 건 주인공 '율리에'다. 율리에는 과감히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한다. 이러한 사랑과 이별 방식은 주체적이고 쿨해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율리에가 가진 열등감과 온전하게 정착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 어쩌면 의대가 가장 가기 어려웠기에 의대 진학을 결심했을 때부터 율리에의 모든 선택의 순간들이 그러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새로운 길을 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애는 시작되었다. 즉, 새로운 연애는 곧 인생에서 새롭게 하는 어떤 중요한 선택과 직결되었고, 율리에의 사랑이 바뀌는 것은 방황의 증거다. 

"난 내 삶의 구경꾼인 기분이야. 내 인생인데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의 대사 中)

그렇기에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율리에의 연애사의 첫 번째 남자 '악셀'은 율리에의 동경의 대상에 가까웠을 것이다. 율리에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악셀은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래서 역으로 갈등이 발생한다. 자신의 삶이 정착되었기에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악셀과 달리 율리에는 여전히 꿈을 좇는 과정에 서 있다.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악셀과의 연애를 한 것도 모두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구경꾼'이 된 것만 같고 악셀 옆에 있는 율리에는 자꾸 작아진다. 악셀과 헤어진 뒤 다음 페이지로 또 한 번 넘어가 만난 에이빈드와의 연애는 평범했다. 서로의 상황이 비슷했고, 소소한 행복을 즐겼다. 이제야 '내가 된 것' 같았던 연애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율리에는 어딘가 모르게 자꾸 공허하고 지난 연애를 돌아보게 된다. 잠깐일 것 같았던 서점 임시직 근무도 계속되고 무언가를 뚫고 나아가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낀 율리에는 결국 또다시 이별을 한다. 


영화 제목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인 만큼 율리에의 사랑과 이별은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최악에 가깝다. 이 영화의 원제 <최악의 인간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에서 최악의 인간은 율리에를 가리킨다. 하지만 기꺼이 최악의 선택을 하고 그 최악의 사랑을 견뎌내지 못해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 율리에는 영화의 말미에서 비로소 예전부터 꿈꿨던 사진작가가 되어 '나'를 찾았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인생의 주연이 되었다. 

요컨대 이 영화는 사랑을 소재로 한 성장 영화다. 어떠한 기로에 서서 선택을 하고 책임지며 나아가는 인생을 우리가 사랑하는 과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 속 율리에의 나이는 20대 후반인데, 이는 많은 작품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을 그릴 때 보편적으로 설정하는 나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거듭하는 최악의 선택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나이대였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최악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시간들을 지내보기도 했다. 사랑할 때 최악이 되는 율리에가 밉지 않고 이해가 가며 심지어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다. 율리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기꺼이 최악이 되었고 그 최악이 있었기에 다음 챕터로 넘어가 자신을 마주하고, 인생의 주연이 되어 자신을 완전한 나로 채워갈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도움닫기였던 최악의 선택들은 율리에가 끝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반문들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과거의 연인 악셀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과거를 계속 되새김질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율리에가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말한다. "뭔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하지만 정작 잘못된 건 내가 걱정한 게 아니었지."라고 말한 악셀처럼 최악이 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우리는 최악의 선택과 결과를 앞서 걱정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율리에처럼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다. 최악을 딛어야 다음 단계로 올라가 비로소 나를 아끼고 완전한 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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