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작문

상처뿐인 영광

by 노멀휴먼

오늘은 술자리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음주작문이라 할 수 있겠다.

술자리 후에 글을 쓴다는 건,

마치 세상에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발명품처럼 느껴진다.


음주운전은 나라에서 철퇴를 내리면서,

음주작문에는 너그러운 법률을 적용해 주는 세상에 정말 감사한다.

만약 음주작문에 벌금이라도 물렸다면,

나는 벌써 전세금을 날리고 도피처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물론 음주작문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내가 썼지만 무슨 소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출몰하는가 하면,
가끔은 "이런 표현을 내가 했다고?" 하며 스스로에게 감탄하는 순간도 있다.

이 글도 후자가 되길 바라지만, 아마 다음날 이불속에서 발을 구르는 전자의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음주작문에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 우리나라 법률에 경의를 표하며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사실 오늘 하려던 이야기는 술자리였다.
직장인들이 사랑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그놈의 술자리.


오늘의 술자리는 후자에 가까웠다.
나는 직장인이니 한 달에 두세 번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자리에 참석한다.


하지만 마음이 맞는 선후배와의 자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밤새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부어라 마셔라 외치고,
다음날 "내가 왜 그랬을까"를 반복하더라도 몇 주 후에는 다시 그 자리를 고대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같은 자리는 달랐다.
마음껏 속을 털어놓으면 후폭풍이 닥칠 것 같은 상대와의 술자리라니.
이건 마치 지뢰밭에서 춤추는 기분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회사 술자리에 나갔다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깊은 상처를 입은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교훈이 되고,
누구를 피해야 할지, 누구와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면초가에 처했을 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만
직장인 신분으로 고양이를 물었다간 먼지조차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은 절대방어다.

술자리에서는 절대 취하지 말고,
취하더라도 쓸데없는 말은 절대 금물.
상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고,
나는 중립적인 대답만을 반복한다.


"아, 그렇군요."
"그런 시각도 있겠네요."
"정말 유익한 말씀입니다."
"글쎄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 네 가지 카드를 노련한 투수처럼 섞어서 던져야 한다.

같은 카드만 던지다가는 상대에게 패를 읽히고,
결국 큰 홈런을 맞아서 마음에 날카로운 상처만 남길 테니 말이다.


오늘 나는 다행히 절대방어에 성공했다.
상대의 현란한 전술에도, 물량공세에도
작디작은 내 성을 지켜냈다.

마치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가 페르시아 대군을 막아낸 것처럼 기쁘다.


하지만 새벽 4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은,
내게 남은 것은 2시간 반의 수면 시간과
방전된 에너지, 그리고 혈관 속에서 춤추는 소주의 향기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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