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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땅 Nov 03. 2024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소년이 쓴 시집을 읽고 난 후

새벽녘의 기차는 차갑고 흑백사진처럼 보였다.

창 밖으로는 하얀 수증기가 밑에서부터 창문 위로 뿜어져 올라왔다.

초록색의 시트는 단단하고 어린아이가 기대어 앉기에 넓고 높은 좌석이었다.

사람들 틈 속에서 애써 창가석에 바짝 붙어 몸을 초록시트에 기대앉아서야 안도했다.


청량리역.

이른 새벽에 제천을 향해 떠나는 첫 차였다.

비둘기호. 완행열차는 천천히 그렇게 철로를 따라 움직였다. 이 기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 것은 해가 막 떠오르는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은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때였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 조금은 분주한 대합실을 나서는 순간 멘붕이 왔다.


낯선 곳에 혼자인 소년은 그 제천역 앞에 홀로 선 것이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야 하는데 머릿속은 하얗게 된 것이다. 주소를 머릿속에 다시 되새긴다.

'어상천면 석교리'


안내양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그곳엔 없었다.

정류장의 시간표는 있었지만 보기 힘들었다.

버스가 도착하면 기사님에게 소리쳤다.

" 어상천면 석교리 가나요?"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긴장감은 계속되었다.

정말 이 버스가 큰 아버지댁으로 가는 게 맞는 것일지, 혹시나 비슷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닐지 불안했다.


버스 안은 어수선했다. 타고 내리는 사람마다 사연이 가득했다. 이미 버스 기사님과는 오래된 가족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 뭘 그리 많이 사셨대요? "

" 이번 장마에 밭에..."

사실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강원도와 북한말이 중간즈음 섞인 사투리 탓이다.

그 사투리는 오히려 나를 안도하게 하였다.

' 그래, 이런 말이었어. '

소년이 기억하는 어른들의 대화에서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갑산이 보이고 그 고갯길을 넘어 버스가 1시간 가까이 달려왔을 즈음에 저 멀리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 산과 길을 따라 돌아가면 큰 아버지댁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길 따라 흐르는 실개천 위로 돌다리를 건너면 도착이었다.

그 마을의 이름을 돌다리라 부른 것은 집 집마다 그 앞에 작은 돌다리가 많아서 그런가 생각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소년은 홀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내가 '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라는 책을 읽어 나가고,  '봄'부터 '겨울'까지 함께 하면서 느끼는 감상은 잔잔한 기차 여행처럼 작가의 시선과 함께할 수 있었다.


시인의 글과 감성을 무엇으로 한정할 수도 없고,

정의 짓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 책의 작가가 만난 시골 풍경을  상상할 즈음 그 나이의 내가 기억하는 큰 아버지댁을 처음 혼자 찾아 나선 기억이 함께 떠 올랐다.


아주 잔잔하고 조용하게 나에게 말해주는 소년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도 남아 있었다.

과하거나 무리하지 않으며, 억지도 없었다.


무덤덤하게 읽어 나가다가 잠시 '쿵'하는 소리가 가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다.

길고 긴 여운이 내 주위에 가득했다.

' 그래, 그렇구나. '


혹여나 내가 쓰는 이 부족한 글 때문에 누군가 어떤 다른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기에 난 이렇게 표현만 해 놓는다.


어느 순간 고향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 '고향'같은 곳이 그립다 하다면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 해답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이 책을 전해 준 친구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늘 지금처럼 함께하며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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