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마디: 곁에 있는 행복으로 맛있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독립기념관에서의 울림 때문이었을까? 그 모두 때문이었을 것이다. 4월 때 이른 더위에도, 석갈비 집으로 가는 길의 교통 체증에도, 우리는 행복하고 감사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기쁨이 행복이라는 것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평온한 일상이 주는 행복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멀리 있는 행복을 좇기만 했는데 이제는 곁에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감사할 줄 안다. 석갈비 집으로 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천안 거리가 참 예쁘다. 가벼운 바람에도 벚꽃 잎이 흩날린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한겨울의 눈 같다. 시간의 지평선을 지나는 것마냥 흩날리는 눈을 맞았다. 황홀했다. 이 황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외부 풍경에서 오는 감정이지만, 오롯이 나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리라. 천안 독립기념관까지 오는 길에도 이런 황홀한 풍경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통 체증과 잘못된 선택, 배고픔으로 스멀스멀 짜증만 올라왔다. 이런 부정적 감정이 나의 마음을 차지했다. 그러니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질 리 만무했다. 마음이, 감정이 시각을 좌우하나 보다. 시각만 좌우하겠는가? 뇌를, 본체를, 우리 전부를 좌우하겠지.
차 안에서 즐거운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식당에 다다랐다. 석갈비로 워낙 유명한 집이고, 방송에도 여러 번 나와 기다림이 필수인 맛집이었다. 그러나 점심 식사 시간을 훌쩍 지난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다행히 기다림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주문은 자리에 있는 키오스크로 해야 했다. 요즘 부쩍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곳이 많아졌다. 아날로그형 인간인 나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들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석갈비 3인분이면 되겠지요?”
“3인분? 최소한 4인분은 시켜야지.”
“많지 않을까요? 그렇게 배고프지 않아요. 냉면도 먹으려면 많을 것 같아요.”
“군대에서 고생하는데 많이 먹어야지. 살도 많이 빠졌구먼.”
할머니의 애정 어린 눈에는 군대 간 아들이 한없이 안쓰러우신가 보다.
“하하. 살이 빠지지는 않았어요. 할머니와 엄마는 저를 돼지로 만들고 싶으신 거죠?”
“살이 안 빠지기는. 얼굴이 홀쭉하구먼.”
“냉면 먹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걸?”
“그래요. 석갈비 4인분을 우선 주문하고, 고기 나올 때 냉면도 시킬게요.”
○○돼지석갈비 특징
• 쪽갈비(우대갈비): 1번~4번 뼈의 갈비로서 기름기가 없고, 살이 많은 부분
• 통갈비(뼈삼겹살): 5~14번 뼈의 갈비로서 기름기가 많고 살이 적은 부분
○○돼지석갈비는 1~14번 모든 부위를 포 작업하여 사용하기에 쪽갈비 살 부위와 통갈비 기름기 부위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살 부위와 기름기 부위 중 한 가지만 드시고 싶다면 주문하실 때 직원에게 요청해 주세요.)
주문을 하자 바로 샐러드, 잡채, 양념게장, 은이버섯 냉채, 연근, 김치 등 밑반찬과 파채 명이나물 쌈채소가 나왔다. 다 구워져 나오는 고기를 기다리는 동안 샐러드와 잡채, 버섯냉채, 연근 등을 먹었다. 흑임자 소스가 맛있는 샐러드는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샐러드에 입맛이 터진 우리는 고기가 나오기 전에 잡채와 버섯냉채, 연근을 다 먹어 치웠다. 분명 아침 식사를 늦게 하고, 더위에 음료를 많이 마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런데 음식이 입에 들어가자 우리는 허기진 사람들이 되었다. 다 먹은 그릇이 음식으로 다시 채워졌다. 다시 젓가락질을 하면서 눈으로 고기를 찾았다. 드디어 고기가 나왔다.
바닥에 양파가 깔려있고, 그 위에 영롱한 갈비가 있었다. 다 구워 나온 고기를 먹기 좋게 잘랐다. 가위를 들고 고기를 들자, 숯불향이 확 났다. 돼지고기와 갈비양념 거기에 더해진 숯불향.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고기 냄새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우선 상추를 들고 고기와 바닥에 놓여있는 양파를 얹어 한 입 먹었다. 아삭한 양파와 어우러진 숯불향이 짙게 베인 돼지갈비가 너무 맛있었다. 넉넉하게 시킨 4인분이 부족할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명이나물에 고기이다. 짭조름한 명이나물에 기름기가 많아 부드럽고 촉촉한 고기를 얹어 먹으니 진미였다. 고기에 무엇을 곁들여 먹은들 진미가 아니겠는가? 아니다. 굳이 곁들여 먹지 않아도 고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맛있다. 곁들임 없이 살만 가득한 쪽갈비를 먹었다. 기름기 없는 퍽퍽한 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쪽갈비가 입에 딱 맞았다. 이번엔 양념게장을 손으로 쭉 짜서 쪽갈비 위에 올렸다. 매콤한 양념게장살이 더해진 돼지갈비 맛은 매콤단짠이었다. 돼지갈비 맛에 홀딱 반한 나는 연거푸 고기를 먹었다. 파채에 싸서 먹고, 쌈을 싸서 먹고, 명이나물에 싸서 먹었다. 먹느라 정신이 팔린 우리는 냉면 시키는 타이밍을 놓쳤다. 고기가 반이나 없어지고 나서야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시켰다. 비빔냉면에 싸서 고기를 먹고 싶은 나는 냉면이 나올 동안 기다렸다. 아들도 냉면과 함께 먹고 싶은지 속도를 늦췄다. 고기 먹는데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없어졌다. 우리가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주변 모든 테이블이 식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들이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일어설 동안 우리는 아직도 식사 중이었던 것이다. 손님들이 없어서인지 우리가 주문한 냉면이 금방 나왔다.
얼마 남지 않은 고기를 냉면에 싸서 먹었다. 다 아시겠지만 냉면과 함께 먹는 고기 맛은 또 별미이지 않은가? 과하지 않게 달달하고, 맵지 않은 비빔냉면은 맴찔이인 나에게 딱이었다. 마지막 고기, 냉면 한 올까지 싹싹 다 먹고 나니 포만감이 말도 못 했다. 볼록한 배로 걸음이 뒤뚱거렸다. 이런 만족감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아들의 얼굴도, 엄마의 얼굴도 만족감으로 환했다. 천안에서의 모든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피날레만 망치지 않으면 천안은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이 깃든 도시로 남을 것이다. 천안에서의 마지막 코스는 당연히 호두과자이다. 천안 호두과자를 검색하니 유명한 곳들이 쭈욱 나왔다. 그중 우리가 있는 곳과 가까운 호두과자 가게를 선택했다. 옛날호두과자, 튀김소보로호두과자, 옛날호두단팥빵 3종이 있었다. 2종, 3종 세트로 구매할 수 있었다. 호두과자 종류가 3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옛날앙버터호두과자도 있었다. 반으로 잘린 호두과자 안에 두툼한 버터가 있는 자태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는 맛인 옛날호두과자를 선택했다.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까지 넉넉하게 호두과자를 구매했다. 계산을 끝내자 맛보기용 호두과자를 2개 주셨다. 차에서 맛보기용 호두과자를 먹었다. 와, 서울에서 먹던, 휴게소에서 먹던 호두과자 맛이 아니다. 실한 호두에 달지 않고 촉촉한 팥, 100% 국산 밀로 만든다는 자랑처럼 팥을 싸고 있는 빵이 너무 맛있었다. 고기와 냉면으로 포화 상태인 배인데도 맛보기만으로 호두과자를 멈출 수 없었다. 집에서 먹을 호두과자를 열어서 더 흡입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천안에서 행복했다. 천안이라는 도시에 흠뻑 빠졌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도 여지없이 막혔지만, 천안에서의 감흥에 피곤할 줄도 몰랐다. 천안 여행은 우리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맛난 음식에 행복을 되새기게 해주는 별미였다.
좋은 음식은 좋은 대화로 끝이 난다
-조프리 네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