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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May 06. 2024

그때는 몰랐다. 주꾸미 샤브에 담긴 아버지의 사랑을.

오늘의 한마디: 가장 맛있는 제철 음식은 가족의 사랑이 담긴 추억이다. 설령 그것이 아플지라도. 


  봄철이 되면 주꾸미 샤브 맛집을 탐색한다. 해산물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하는 나이지만, 주꾸미 샤브만은 예외다. 담백한 육수에 미나리, 배추, 청경채, 숙주 등 각종 야채를 끓여 주꾸미를 살짝 데쳐 먹는 맛. 쫄깃하고, 탱탱한 주꾸미는 그 어떤 고기 맛을 뛰어넘는 맛이다. 아들은 아직도 고기를 더 선호하지만, 그런 아들을 데리고 봄에는 여지없이 주꾸미 샤브를 먹으러 간다. 올해도 아들이 휴가 나올 때를 기다려 주꾸미 샤브를 먹으러 갔다. 항상 주꾸미만 먹었는데 이번에는 주꾸미와 새조개 세트를 시켰다. 새조개는 어떤 맛일지 기대됐다. 주문을 하자 오이, 당근, 오징어튀김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갓 튀긴 오동통한 오징어튀김을 먹었다. 기본 반찬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통통한 오징어튀김이 입맛을 제대로 자극했다. 뒤이어 버너가 세팅되고 육수가 담긴 냄비가 나왔다. 숙주, 청경채, 미나리, 배추, 버섯 등 각종 야채가 큰 접시에 가득 나왔다. 육수가 끓기도 전에 각종 야채를 다 넣었다. 그러자 바로 주인분이 가게 밖 수족관에서 열심히 수영하던 주꾸미를 잡아 주셨다. 그리고 주꾸미 한 마리를 집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육수에 넣으셨다. 


  “이렇게 주꾸미 머리를 육수에 먼저 넣으시면 주꾸미 꽃이 핍니다. 다리를 먼저 먹으시고, 머리를 나중에 드세요.”


  주인분의 시범을 보고 연달아 주꾸미를 넣었다. 정말 주꾸미 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는 사이 손질된 새조개도 나왔다. 

  가위로 주꾸미 머리를 분리했다. 다리를 먹기 좋게 잘라 아들 접시에 야채와 주꾸미를 주었다. 같이 먹자는 아들의 재촉에 주꾸미와 미나리를 집어 술잔 대신 주꾸미 건배를 했다. 입안 가득 담백하고 향긋한 봄맛이 가득했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데 쫄깃쫄깃한 주꾸미 다리가 너무 맛있었다. 이 달달한 맛은 또 뭘까? 주꾸미 자체 맛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 초장이나 고추냉이가 섞인 간장 소스를 찍지 않고 계속 야채와 주꾸미만을 먹었다. 역시 봄에는 주꾸미 샤브를 먹어야 한다. 


  “엄마는 아직도 주꾸미 샤브만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요?”

  “그럼, 엄마가 주꾸미 샤브를 처음 먹은 게 할아버지 덕분인데. 그런데 그때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그래서 주꾸미 샤브만 보면 할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면서요.”

  “... 응. 감사하면서도 너무 죄송하지.”

  “그때는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 거예요.”


  이 맛있는 주꾸미 샤브 맛을 알려주신 우리 아버지. 부모가 되었어도 그때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이 나였다. 


  아버지가 한 번의 폐암 수술을 실패하고, 두 번째만에 종양 절제 수술에 성공하셨다. 그렇지만 워낙 늦게 발견된 종양은 절제 수술에도 수도 없이 많은 항암 치료를 하게 만들었다. 항암 치료에 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하셨다. 그렇지만 꾸준히 운동도 하시고, 힘겹지만 식사도 하시면서 잘 버티고 있으셨다


  아들 돌을 앞두고 아버지와 남편의 암 소식을 통보받았던 절망의 시간. 연달아 닥친 불행에 힘들다는, 절망적이라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버틸 뿐이었다. 버티다 보니 다행히 시간이 잘도 흘러갔다. 아들이 네 살 되던 4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기분이 좋으셨다. 


  “이번 일요일에 언니네 오빠네 모두 불러서 함께 식사하자. 무창포에서 주꾸미를 주문했어. 다 같이 함께 식사하자.”


  언제 무창포에서 주꾸미를 시키셨을까? 그래서 오늘따라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신 것인가? 그렇지만 힘든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 나는 휴일이나마 집에서 쉬고 싶었다. 쉼을 갈망했던 나는 휴일에 온 가족이 출동하는 가족 모임이 싫었다. 무창포에서 배달되는 주꾸미는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일요일에 오빠네, 언니네가 모두 총출동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을 준비하시는 엄마를 나와 신랑이 도왔다. 시간이 갈수록 내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몸이 피곤하여 괜찮은 척 연기할 수가 없었다. 아니다. 짜증 난 나의 마음을 온 가족이 알게 하고 싶었나 보다. 말도 없이 뚱한 얼굴로 있는 나를 언니네도, 오빠네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되게 굴었다. 그렇게 불편한 분위기에서 온 가족이 식사하였다. 엄마께서 아침부터 준비하신 잡채와 전, 아버지께서 무창포에서 주문하신 주꾸미 샤브. 거하게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식탁의 산해진미와 다르게 가족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썰렁한 분위기를 감지한 신랑과 형부가 연신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신랑이 내게 잘 익은 주꾸미와 야채, 육수를 한 그릇 가득 담아 주었다. 우선 시원한 육수를 먹었다. 종일 불편했던 나의 마음을 따뜻하고, 담백하고, 시원한 육수가 싹 씻어주었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주꾸미 다리, 알이 꽉 찬 꼬들꼬들한 주꾸미 머리. 세상에 이런 맛이 있는가 싶었다. 처음 먹어보는 주꾸미 샤브의 맛은 그렇게 내게 강렬한 맛있는 맛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 맛에는 못되고, 불효한 나의 마음과 모습도 담겨있다.      


  “결국 엄마는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못 했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해.”

  “엄마와 저에게 주꾸미 샤브는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네요. 주꾸미 샤브 먹을 때 저도 할아버지가 생각나요.”

  “그때 할아버지께서 엄청 힘드셨을 텐데... 가족들을 위해 직접 주문하셨으니... 정말 감사하지.”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과도 같은 주꾸미 샤브 맛에 올해는 새조개 샤브 맛이 더해졌다. 처음 먹어보는 새조개 맛은 정말 달았다. 쫄깃한 식감은 기본이고, 잘 익은 새조개를 씹을수록 달디 단 맛이 계속 느껴졌다. 새부리 모양을 닮은 새조개는 쫄깃하고, 달았다. 연신 새조개와 주꾸미 샤브를 야채와 건져 먹다 보니 순식간에 다 먹었다. 배도 엄청 불렀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탄수화물을 먹지 않고 식사를 마칠 수 없다. 우리는 라면 사리를 추가해서 주꾸미와 새조개의 맛있는 맛이 다 농축된 육수에 보글보글 끓였다. 알맞게 익은 라면을 한 젓가락 들었다. 술이 없어도 캬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는 마지막 육수와 라면까지 야무지게 다 먹었다.      

  봄에 여지없이 찾아오는 제철 음식인 주꾸미 샤브.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천상의 맛이다. 주꾸미 샤브가 천상의 맛인 이유는 우리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선물해 주신 그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비록 아버지의 그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어리석은 자식이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주꾸미 샤브는 부모님의 사랑과 어리석은 자식의 마음이 담긴 맛이다. 


식탁은 가족과 함께할 때 가장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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