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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랏말싸미 May 13. 2024

복요리로 달래 보는 엄마의 시간

오늘의 한마디: 카네이션에 담기지 못한 죄송함... 감사함...

  현대인은 바쁘다. 평일에 가족 모두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목적은 무엇일까? 각자 자기만의 목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부귀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윤택한 삶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일하는 평일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기 어렵다. 부모님 생신도, 자식 생일도, 내 생일도 당일에 축하하지 못한다. 모든 집안 행사는 주말에 해야 한다. 아마,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겠지. 우리의 바쁨은 무엇을 위해서일까?      


  5월 8일 어버이날은 수요일. 수요일은 학생들의 각종 활동이 몰려 있는 요일이다. 당연히 엄마와 함께 식사할 수 없다. 주말에 엄마를 찾기로 했다. 연휴 때문이었을까? 삼 남매인 우리는 함께 모여 엄마와 식사할 수 없었다. 서로의 바쁨을 핑계로, 서로의 사정을 핑계로... 우리는 각자 엄마를 찾기로 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곳곳에 카네이션이다. 빨간 카네이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홍 주황 노란 카네이션도 있었다. 노란 카네이션은 처음 보았다. 올해는 노란 카네이션으로 준비해야겠다. 


  노란 카네이션을 들고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기다리셨는지 바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출발해요. 준비하고 계세요.”

  “그래. 준비는 벌써 다 하고 있지.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와.”


  혼자 계시는 엄마는 오늘 나의 방문을 오래전부터 기다리셨을 것이다. 일주일 만에 보는 딸내미인데도 그렇게 반가워하신다. 나의 방문만을 기다리시고, 반기는 것이 아니리라. 언니도, 오빠도 그러리라. 엄마께 출가한 자식들은 그리움과 반가움의 대상이리라. 


  가요 교실에서 단풍놀이 가시는 날이셨다. 엄마는 모처럼 맞이하는 나들이에 소녀처럼 설레셨다. 엄마의 설렘과 다르게 아빠는 기분이 안 좋으셨다. 10년 가까운 암 투병으로 외모가 상하신 아빠는 외출하시는 것을 꺼리셨다. 독하디 독한 항암제로 아빠의 육체는 왜소해지셨다. 누가 봐도 환자이신 것이 싫으셨는지 밖에 잘 나가시려 하지 않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러 나가는 것조차 꺼리셨다. 그러니 엄마께서 아빠의 삼시 세 끼를 도맡으실 수밖에..... 며칠 전부터 아빠의 식사를 준비하시면서 엄마는 오늘의 외출을 준비하셨다. 엄마께서 아빠께 점심 식사, 저녁 식사 메뉴를 꼼꼼하게 말씀하셔도 아빠는 대답이 영 시원찮으셨다. 엄마의 설레는 외출을 보시면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혼자 집에 있으셨던 아빠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다행히 엄마의 단풍놀이는 즐거우셨다. 그러나 엄마의 외출 이후 아빠는 며칠 동안 식사도 잘못하실 만큼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식사를 잘못하시니 저혈당이 오셔서 응급실에 가시기도 하셨다. 그렇게 2주일 가까이 고생하시고, 다행히 아빠는 조금씩 회복하셨다.


 “이제는 아빠 혼자 두고 놀러도 못 가겠다. 몇 년 만에 놀러 간 건데 이 난리가 난다. 에고 내 팔자야.”


  엄마의 탄식 어린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아빠의 암 투병을 오롯이 곁에서 묵묵하게 지켜주셨다. 그런 엄마께서 지친 신세 한탄을 하셨다. 엄마의 신세 한탄에는 쉼, 여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도 있으셨던 것 같다.


  지난번 모임에서 먹은 복요리가 좋아서였을까? 오늘 엄마와의 메뉴는 복어탕, 복어 튀김, 복어 무침이 함께 나오는 ‘복요리 세트’이다. 엄마네 근처 맛집으로 알아보았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지만, 가성비 맛집이어서 주말에 기다려야 한다는 문구에 선택하게 됐다.


참복: 자주복이라고 하며 얇게 회를 뜨거나, 매운탕으로 먹으며 복어류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아 고급 요리에 사용된다. 
까치복: 비타민, 무기질, 콜라겐 등이 풍부해서 숙취 해서, 다이어트, 노화 방지 등에 효과적인 건강식이다. 
밀복: 단백질과 비타민B가 많으며 근육강화와 혈액 순환에 도움을 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지난 모임 복어 전문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어버이날 방문하기에는 다소 소박한 식당 분위기에 나는 당황했다. 엄마 눈치를 봤다. 엄마는 자식 마음을 편히 해주고 싶으셨는지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어 무침이 먼저 나왔다. 


  “엄마, 매울지 모르니 밥에 비벼 드세요.”

  “예전에 아빠가 엄마 생일 때 복어 사주었어. 그때 참 맛있게 먹었는데.”


  엄마는 옛 기억을 말씀하시면서 빨간 복어 무침을 우선 한 젓가락 드셨다. 나도 엄마 따라 한 젓가락 먹었다. 매울 것 같은 빨간 양념의 복어 무침은 다행히 전혀 맵지 않았다. 새콤 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돋게 했다. 연달아 복어 무침을 먹었다. 꼬들꼬들한 복어 껍질과 미나리의 아삭한 식감이 좋았다. 엄마도 맛있게 잘 드셨다. 


  이어 복어 튀김과 지리로 선택한 복어탕이 나왔다. 엄마는 맑은 복어탕 국물을 먼저 드셨다. 깔끔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이 입에 맞으셨나 보다. 


  “엄마, 드실만하세요?”

  “아주 맛있어. 아빠가 사줬던 복어 요리처럼 아주 맛있어.”

  “탕에 있는 미나리와 콩나물을 이렇게 덜어서 복어 무침하고 같이 비벼 드세요. 이렇게 먹는 것이 이 집의 별미래요.”


  엄마는 나를 따라 반 공기를 덜어 큰 그릇에 더셨다. 탕에 있는 미나리와 콩나물을 건졌고, 복어 무침을 담뿍 넣었다. 이리저리 잘 비벼서 한 입 크게 먹었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아삭한 채소들이 더해져 비빔밥과는 다른 맛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맑은 국물을 먹으니 이런 별미가 없었다. 엄마께 복어 튀김을 드렸다. 엄마께서는 복어 튀김을 한 입 드셨다. 튀김을 싫어하시는 엄마도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복어 튀김을 좋아하셨다. 복어 튀김은 싫어할 수 없는 맛이다. 처음 가게를 들어왔을 때 들었던 실망감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엄마는 남은 밥 반 공기를 탕에 넣어 마저 다 드셨다. 


  “어휴, 이걸 다 먹었더니 너무 배 부르다. 오랜만에 잘 먹었어. 딸. 복어 먹었더니 네 아빠 생각이 나네.”

  “그때 엄마께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나만 고생했냐? 너희도 아빠도 다 고생했지. 지나고 나니 후회만 남아.”


  엄마와 함께 한 오늘의 복어 식사에는 아빠와의 추억이 진하게 묻어났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엄마네 가는 것을 힘들어했는데 오늘은 그런 나의 마음이 한없이 죄스럽다. 어느덧 80세가 넘으신 엄마.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 가시는 엄마를 보면서 무섭다. 언젠가 엄마도 우리 곁을 떠날 것을 알기에... 그 언젠가가 늦게 아주 늦게 오기를....


음식은 영혼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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