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랏말싸미 May 20. 2024

재래시장 어디까지 갔니?
일산시장 오일장으로 와

오늘의 한마디: 재래시장에서 추억을 더듬다.



  주문한 물건을 다음날 받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급한 것도 아닌데 굳이 로켓배송으로 주문한다. 급한 나의 성격 때문일까? 아날로그형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인간이어서 그럴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 시대는 이제 당일 배송도 낯설지 않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아니 따라가기는 고사하고, 적응하기도 쉽지 않다. 나의 아날로그형 인간이라는 외침은 이런 시대에 퇴물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치졸한 변명이리라. 이기적인 마음에 현대 문물의 편리함을 끝없이 추구하는 나. 옛것의 정취를 그리워하면서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또 다른 나. 이 모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태어난 곳은 엄마, 아빠의 고향인 충청남도 공주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 고향은 온통 배밭이었던 상계동이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만 있는 동네이지만, 어린 시절 그곳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동네였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딱지치기, 고무줄놀이를 하고, 배밭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했다. 아침부터 놀았을 텐데도 저녁에 엄마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왜 그리 싫던지. 다음날도 실컷 놀 것이면서 조금이라도 더 친구들과 놀려고 발버둥 쳤다. 그 시절 사진에는 새까맣고, 건장한 천방지축 아이인 내가 있다. 토실토실한 볼살과 볼록 나온 배를 가진 아이의 얼굴은 자신감이 충만하다. 건강하고, 자신감 넘쳤던 나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그리움은 또 다른 추억을 불러온다.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먹는 것 또한 엄청 좋아했다. 오빠와 언니는 입이 짧아 잘 먹지 않았다. 음식을 남기는 오빠와 언니가 신기했다. 음식을 남기면 엄마께 혼나니 엄마 눈치를 보면서 오빠와 언니가 내게 슬금슬금 음식을 넘겼다. 엄마께서 내 몫으로 주는 밥이 난 항상 부족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내가 가장 우람하니 엄마는 밥 양을 조절해서 주셨으리라. 밥상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오빠 밥과 내 밥을 비교했던 것 같다. 오빠 밥보다 적은 밥 양에 실망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오빠와 언니가 남긴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엄마도 분명 아셨을 텐데 삼 남매의 모략을 눈감아 주셨다.


  이렇게 식탐 많은 나는 엄마께서 시장가실 때마다 어김없이 따라갔다. 이렇게 엄마를 따라가면 엄마께서 간식을 사주셨다. 꼭 언니 손을 잡고 둘이 엄마를 잘 따라가야 하는 미션이 있었지만, 간식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언니와 손을 잡고 엄마를 따라갔던 기억. 그 기억은 아직도 뭉클함과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맑고 파란 봄 하늘 때문이었을까? 오늘따라 아무 걱정 없이 식탐만 많았던 어린 내가 그리워진다. 그 옛날 뻔한 살림에 삼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던 엄마의 젊음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애잔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일산 오일장을 이곳에 이사 온 지 8년 만에 처음 갔다. 


  공영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주차할 만한 곳을 찾았으나, 이미 그런 공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차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천천히 주차할 공간을 찾아 주변을 두 바퀴 맴돌았다. 아무리 하이에나처럼 빈 공간을 노려보아도, 전혀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고 갈까 하는 순간 드디어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 겨우 주차하고 내리자 거리는 온통 노점상들이었다. 

  싱싱한 과일이 펼쳐졌다. 한 바구니 가득 사과가 10,000원이면 싼 거 아닌가? 성주 참외가 알이 굵은 것이 실하다. 사과, 참외, 방울토마토를 샀다. 벌써 검은 비닐봉지가 주렁주렁했다. 과일 봉지를 차에 싣고, 다시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쫘악 펼쳐진 옛날 과자, 사탕들이 정겹다. 필요한 것은 다 있는 잡화점, 온통 바다 향기를 뽐내면서 전시되어 있는 싱싱한 생선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자꾸 내 발걸음을 잡았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으로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맥반석으로 김을 굽고 있었다. 세 봉지에 5,000원이란다. 요즘같이 고물가에 지갑이 저절로 열렸다. 이 고소한 냄새는 김을 구워서만 나는 냄새는 아니었나 보다. 꽈배기, 단팥 도넛, 크로켓 등이 기름이 맛있게 튀겨지고 있었다. 찹쌀 야채 크로켓을 그 자리에서 해치우고, 나머지는 포장했다. 

  찹쌀 야채 크로켓에 입맛이 제대로 터진 나는 핫바와 분식을 먹었다. 통통한 새우가 들어간 핫바는 케첩과 머스터드소스가 없어도 맛있었다. 부드러운 어묵살에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는 핫바는 순식간에 내 입에서 사라졌다. 매운 어묵을 먹고 싶었으나 떡볶이를 포기할 수 없는 맴찔이는 순한 어묵을 선택했다. 떡볶이 맛은 음.. 솔직히 평범했다. 그런데 오징어 튀김은 맛있었다. 제법 큼직만 한 오징어가 들어간 튀김은 떡볶이의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줄 만했다. 추운 겨울이 아닌데도 어묵 국물은 몸을 시원하게 달래주었다. 크로켓, 핫바, 떡볶이 삼총사까지 다 먹어치운 나는 어린 시절처럼 배가 볼록 나왔다. 볼록 나온 배를 어루만지는 나는 어느새 언니 손을 꼭 잡고 엄마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던 그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재래시장의 모든 풍경이 한없이 정겨웠다. 재래시장의 번잡함, 사람들로 인한 북적임, 그 사람들끼리의 흥정, 인심 그 모든 것들에는 이미 아련한 추억이 묻어났다. 


  일산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 돌아가려니 반찬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 김치에 젓갈류가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파김치를 자주 담그셨다. 엄마가 담그신 파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엄마의 손맛을 추억하면서 파김치를 샀다. 듬뿍 담아주시는 인심에 고들빼기, 겉절이도 샀다. 


 집에 가는 길에 엄마네 들려서 장 본 것들로 엄마와 함께 식사해야겠다. 오늘 엄마와 함께 식사하는 맛은 어떤 맛일까? 엄마는 오십이 넘은 막내딸을 아직도 그 옛날 식탐 많았던 아이로 보시겠지? 지금 내가 군대 간 장성한 아들을 한없이 어린아이로 보는 것처럼... 오늘은 엄마와 식사하면서 엄마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어야겠다. 결혼하시기 전 엄마의 삶, 꿈, 사랑... 삼 남매를 뺀 오롯이 엄마의 젊은 시절 얘기를.... 내가 이렇게 추억을 먹고 살 듯 엄마도 추억을 되새기시면서 살 것 같다.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젊은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늘은 엄마와 식사하면서 그 얘기를 듣고 싶다.


음식은 시간을 담은 마법이다.



이전 17화 복요리로 달래 보는 엄마의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