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어제-
나의 삶은 고달팠다.
친정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부모님 댁의 생활비는 끊겼고, 한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던 우리는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면서 부모님 댁 생활비를 대기로 했다. 그 당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 돌보시기도 힘들었을 엄마께 갓난아기를 맡기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엄마는 얼굴에 고스란히 피곤이 묻어났다. 아무리 내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돌봐도 엄마의 노고를 더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당시 난 정시 퇴근도 하지 못했다. 보충수업, 석식 이후 실시하는 디딤돌 수업, 야간 자율 학습 감독 등으로 저녁 8시, 10시 이후에나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퇴근하면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고 자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집안일과 육아를 엄마께서 도맡으셨다.
그럼 나의 남편은 무엇을 했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그 당시 남편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루 종일 목소리 높여 수업하면서 몸이 고된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지친 몸으로 집에 오면 나보다 훨씬 지친 엄마 모습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종종거리면서 집안일을 거들고 아이를 돌봐야 했다. 집안일을 빨리 끝내야 비로소 쉴 수 있었던 나는 두 살도 안 된 아이를 윽박지르며 ‘빨리’, ‘그만’을 재촉했다.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아이와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하고 “빨리 씻자”, “그만 이야기해”, “엄마 피곤해. 동화책 그만 읽자”, “빨리 자야지”… 혹여 아이가 더 놀고 싶어 하면, 엄마랑 더 놀고 싶어 눈을 비비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하면 아이를 윽박지르면서 억지로 재웠다.
불안한 주변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정한 엄마 때문인지 아이는 밤에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자다가 두세 번은 깼고 무엇에 그리 놀랐는지 한도 끝도 없이 울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한데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내 품에서 서럽게 울었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마음 깊이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괜찮다고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 거라고… 엄마만 믿으라고…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한 번도 밤새 푹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울면서 지 엄마만 찾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버거웠다. 그래서 아이가 왜 이리 잠투성이 심한지 불평만 했던 것 같다. 울면서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를 안아주었지만 피곤한 육체와 피폐해진 정신으로 아이를 진심으로 꼭 안아주지 못했다.
그게 아직도 마음에 맺혔나 보다.
엄마, 엄마, 엄마 안아줘
5살 아이가 눈물로 범범이 된 얼굴로 애절하게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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